[함기수 中國이야기]

▲ 중국 지린성의 창춘 세계 조각 공원에서 여행객들이 조각 옆을 지나가고 있다.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최근 대기업의 고문으로 1년간 베이징에서 생활하다가 막 귀국한 선배를 만났다. 그는 대만에서 공부를 마친 후, 한중 수교이전인 1980년대 말부터 늘 한중 교역의 선봉에 서 있던 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그간 중국에서의 활약상을 기대한 나에게, 그는 중국이 옛날의 중국이 아니더라는 말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사는 것이 인색해지고 매사에 정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없어도 인간미 넘치던 시절은 이젠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1988년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가 우리에게 대륙 방문을 허용하면서 홍콩의 주재원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간 화교나 미국 시민권자를 통해서 음성적으로 추진하던 대륙과의 직교역이 양성화되면서 각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대륙 공략에 나섰다. 따라서 중국 사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던 홍콩지사 주재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 본토 출장길에 나섰고, 당시 음식이나 통신, 교통 등 모든 것이 열악하던 생활환경은 우리를 지치게 했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우리는 바로 사우나로 직행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조금 전까지 만난 본토 사람들을 생각하며, ‘아~ 그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사우나도 못하고 얼마나 불행할까?’라는 말을 하곤 했다. 당시 중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각하기도 싫은 불행이었다.

그 무렵 나는 홍콩에서 어느 원양어선에서 일하던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중국으로 입항하려던 배의 선원이었는데 입항 수속을 밟던 중 건강 문제로 입국이 거절되었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는, 당시 한중간에 비행기편이 없었던 관계로 어쩔 수 없이 홍콩을 거쳐야만 했다. 본사 수산물 팀에서는 홍콩이 초행길인 이 선원의 안내를 나에게 부탁했고 나는 새벽에 도착하는 그를 맞기 위해 항구로 나갔다. 일견 피곤에 절은 그는 만나자마자 나에게 술 한 잔 할 수 없겠느냐고 했다. 아마 내가 술을 마시기 위해 새벽 5시에 술집을 찾은 건 그 때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독한 백주를 서너 잔 거푸 마신 후 그는 신세타령을 시작했다. 고향은 제주도이고 3년 동안 집에 못 갔다고 했다. 딸이 한 명 있는데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중국을 여러번 가봤는데 중국에서 살아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오후 5시만 되면 공원에 식구들 손잡고 산책하고, 한가롭게 브리지 게임을 하는 노인들을 보면 이곳이 지상낙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고 했다. 우리가 중국에서 사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그는 중국을 지상의 낙원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극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더 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이는 행복이 지극히 주관적임을 말해 준다. 똑같이 서 있는 상황이라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 있는 상황과 ‘엎드려 뻗쳐’ 있다가 막 일어난 상황은 근본적으로 느낌이 다르다. 이는 행복이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다가 옆집 사람이 고급 차를 산 순간부터 배가 아프고 내 처지가 형편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행복이 남과의 비교에 의해서 좌우됨을 말해준다.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중국 사람들은 그들의 살집과 연탄 등 제반 생필품까지 국가로부터 배급 받았다. 명절날이면 달걀과 콜라까지 속해 있는 회사로부터 지급됐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공평했다. 내가 있으면 남도 있고 내가 없으면 남도 없었다. 아침 9시쯤 출근해서 어슬렁거리다가 11시 정도면 점심 먹으로 나가고 점심 먹고 나면 낮잠을 자고 해가 중천에 있는 4시쯤이면 퇴근을 했다. TV나 위락시설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공원에 식구들과 나와 산책을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당시 유행하던 카드놀이를 했다. 효율을 따지고 비즈니스 성사에 노심초사하던 우리가 보기에는 기가 막힐 노릇이고, 3년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 선원의 입장에서는 가히 천국이었다.

최근 중국 사람들이 과거보다 훨씬 여유가 없어지고 인간미가 사라졌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80년 대 말과 90년 대 초 중국에서 살았던 우리들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들조차 흔히 하는 얘기이다. 눈부신 경제 성장과 G-2로 성장한 발전의 이면에 사람들의 생활은 더 팍팍해 졌다는 얘기이다.

90년대 말 내가 만난 조선족 중 한 사람이 자기는 서울에서 천금을 주더라도 못살겠더라는 말이 생생하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도무지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더라고 그는 얘기했다. 사람냄새도 나지 않고 그래서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더라고 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그가 서울을 다녀왔다고 하여, 발전된 조국의 모습에 감명받아 눈물을 흘렸다는 식의 얘기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전혀 뜻밖의 대답이었다.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당시 덩샤오핑은 창문을 열면 시원한 공기와 함께 파리도 들어 올 수 있다고 역설했다. 지금 중국은 눈부신 경제 성장이라는 시원한 공기와 함께, 공원에서 어슬렁거릴 수 있는 여유가 사라지고 삶이 지나치게 팍팍해지는 부작용도 함께 겪고 있는지 모른다. 이미 세계의 중심에 자리한 오늘날의 중국 사람들이 과거보다 행복해 할까라는 물음에는, 결국 행복은 느끼려고 하는 사람에게 온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고 결코 경제력과는 무관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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