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의 풍수지리]

▲ 북촌마을에 입지한 구 경기고등학교 터(현재 정독도서관)

[오피니언타임스 김정인 풍수지리]조선시대 사대문안 한양의 땅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촌마을과 남촌마을로 구분됐다. 북촌마을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한 남향판의 땅이고, 남촌마을은 남산을 주산으로 한 북향판의 땅이다. 남향판의 땅은 북향판의 땅에 비해 햇빛을 많이 받고 특히 겨울에는 따뜻하니 누구나 이곳을 선호한다. 그러나 풍수에서는 햇빛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이 바람과 물이다.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을 더 우선시한다.

사람들은 풍수용어 중 무엇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배산임수(背山臨水: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형세)를 안다고 하면서도 막상 집을 지을 때는 배산임수보다 우선하는 게 남향으로 집을 짓는지 여부다. 남향판에서는 배산임수가 되지만 북향판에서 남향으로 집을 지으면 역배산임수가 되어 자연에 역행하는 좌향이 된다. 북향의 땅에서는 북향으로 건물을 지어야 배산임수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5대궁궐 중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3대 궁궐이 북촌마을에 위치했고 덕수궁, 경희궁 2개의 궁궐은 인왕산 밑에 자리 잡았다. 북촌마을은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이 살던 부촌마을이고, 남촌마을은 하류층이 살던 빈촌마을이다. 북촌마을은 북악산과 응봉아래 맥들에 의지한 남향판의 마을이고 인물이 중요시되던 조선시대 각광을 받던 곳이다. 남촌마을은 남산을 주산으로 하여 남출북류(南出北流)하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의 형국이다. 우리나라는 북쪽과 동쪽이 높고 남쪽과 서쪽이 낮아 남출북류하는 물길과 서출동류하는 물길이 관심을 받는다. 청계천의 북촌마을과 남촌마을은 청계천이 서출동류하고 남촌마을은 남산으로부터 청계천에 이르는 물길이 남출북류한다.

북촌마을의 대표적 명당은 구 경기고등학교(현재의 정독도서관)터다. 이곳은 조선조 초기에는 성삼문(1418~1456)이 살던 집터요, 조선조 후기에는 김옥균(1851~1894)이 살던 집터로 400년의 시차를 두고 두 거목이 거쳐 갔던 곳이다. 이 터는 1900년 고종황제(1852~1919)의 칙령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관립중등학교로 건립된 중등교육의 발상지이다. 현재의 구 경기고등학교 건물은 1938년에 건립됐고, 6.25동란 시 미군 통신부대가 사용, 1956년에 다시 고등학교로 반환, 1975년 강남 이전 후, 1977년 이후 정독도서관이 사용 중이다. 한국 최초의 공립고등교육기관, 경기고등학교 터, 북악산의 봉우리가 아름다운 목성체의 봉우리로 들어오는 곳, 북악산의 정기를 받아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곳이다.

북촌마을은 조선조가 끝나면서 5대 궁궐이 막을 내렸고 강남이 개발되면서 북촌마을의 명문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해 갔다. 그러나 그 빈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부족했다. 최고의 인재들을 배출한 경기고등학교는 북촌마을의 최고의 명당터에 자리 잡았지만 경기고가 강남으로 이전하여 간 후 도서관과 시민의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명당터, 어떠한 터로 활용할 것인가는 서울의 도심기능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곳은 서울의 으뜸 관공서가 위치하여야 할 곳이다. 서울시청이 입지하거나 종로구청이 입지한다면 서울시와 종로구의 위상이 달라질만한 자리이다. 북촌마을의 휘문고등학교 자리는 휘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고 이 자리를 현대그룹이 입주하여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였다. 땅은 누구나 받아들이지만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땅의 용도가 달라지고 그 땅의 위상이 달라진다.

▲ 남산아래 자리 잡은 신세계백화점

남산아래 자리 잡은 남촌마을은 기업과 은행들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부의 발상지로 탈바꿈했다.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모이는 곳이 남촌마을의 명동거리가 되었으며, 주요 금융기관의 본점들이 바로 이 남촌마을에 입지했고 우리나라 기업들의 발상지도 바로 남촌마을의 롯데호텔(구 반도호텔)자리다. 롯데호텔은 남산에서 용맥이 내려오며 신세계를 거쳐서 한국은행, 조선호텔, 롯데호텔로 이어지는 곳으로 북향판에 북향으로 건물이 들어선 북향명당이다. 회현동 1가에 자리 잡은 우리은행 본점 터는 조선시대 정광필의 집터요 동래정씨 400년 세거지다. 구한말 벨기에 영사관, 일제 강점기 해군 헌병대 청사, 해방 후 상업은행이 있던 곳으로 상업은행과 우리은행이 합쳐지면서 우리은행 본점이 된 곳이다. 또한 이곳은 1945년 노루표페인트가 이곳에서 창업하여 성공한 터이기도 하다.

요즈음 신도시가 생겨나면서 구도심이 공동화된다고 걱정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새로운 도시가 생기고 새로운 시설이 들어선다. 대전에 갔더니 대전의 명문고를 둔산 신도시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동문회에서 반대하여 못 옮겼는데 결국에는 명문고의 자리를 둔산 신시가지로 옮긴 서대전고에 넘겨줬다고 한다. 구도심, 거기에 걸맞는 용도를 개발함이 필요하다. 북촌마을의 명당터도 새로운 용도를 개발해야 하고, 남촌마을의 북향의 땅이라도 그 지형지세와 용도에 맞는 건물을 입향 한다면 명당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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