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 中國이야기]

▲ 서울 명동 거리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환전소로 들어서고 있다.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2000년대 초 나는 모 기업 중국 산둥성(山東省) 칭다오(靑島) 지사장으로 있었다. 칭다오 지사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한국의 석유화학제품을 중국 시장에 파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지사는 본사로부터 합성섬유의 원료가 되는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의 판매처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원료를 사용해 실을 뽑아 직물을 짜는 중합(重合)공장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우연히 산둥성의 한 시골에서 막 신설 중인 공장을 발견하게 됐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들어간 그 공장이 향후 나와 칭다오 지사에게 얼마나 보물 같은 존재였는지 당시로서는 알 턱이 없었다.

보통 직물 공장의 규모는 그 공장이 가동하는 직기가 몇 대나 되는지로 가름한다. 보통 몇 십대, 100대만 되면 대규모 직물 공장이고,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500대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신설 중인 중국 시골 공장의 초라한 공장장의 무심한 말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는 공장의 규모가 워터제트 4000대라고 했다. 산둥성 시골의 중합 공장에 최신 직기인 워터제트 4000대라… 우리는 고정관념의 한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중국의 한 중견 기업 인센티브 관광단 1만1200명이 제주도를 방문했다. 1996년 설립 이래 주로 건강, 피부 미용과 일상 생활용품을 생산 판매해 연 매출 30억 위안 (약 5000억원) 정도를 올리는 바오젠(寶健) 그룹이 그들인데, 동시에 1만명이 넘는 인원을 해외 관광단으로 결성한 그들의 발상 자체가 우리로서는 놀라웠다.

1만1200명은 중형 비행기인 보잉 737정도로는 100여대가 동시에 필요하고 점보 제트기인 보잉 747로 환산하더라도 동시에 2~30대가 실어 날라야 할 인원이다. 이들이 제주에서 사용하는 숙박시설은 16개 호텔의 객실 1만6560실이고 음식점 14곳을 예약했으며 관광버스만 해도 하루 35대씩 총 490여대를 동원했다고 한다. 추산되는 경제 효과만 하더라도 914억여원에 이른다고 언론들이 전한 바 있다.

산둥(山東)성 내 칭다오(靑島)에서 옌타이(烟台)까지는 보통 승용차로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두 군데 다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서 한국에서 오는 출장자들이 칭다오에 들렀다가 옌타이로 많이 가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3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그렇게 많이 걸리냐고 놀란다. 같은 산둥성이고 바로 이웃한 도시로 알았던 그들로서는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KTX로 가면 2시간 남짓 걸리는 생활권의 사람들에게 3시간이라면 그렇게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에게 3시간이 길다고 한다면 이는 사치이다. 중국에서 보통 버스로 여행을 하거나 출장을 다니는 경우 10시간에서 20시간을 계속 타야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버스 안에 침대가 있어 버스 안에서 잠을 자고, 생리 현상도 버스 안에서 해결한다. 같은 거리, 같은 시간이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 느낌이 다르다. 중국 사람들과 우리들의 거리 개념, 시간 개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생각의 폭은 어쩔 수 없이 커온 환경과 보고 들은 삶의 경험, 지식에 의해 결정된다. 호남평야의 아이들에게 풍경화를 그리하고 하면 평평한 들판을, 강원도 산중의 아이들은 아무래도 산을 그릴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바야흐로 ‘세계화’의 시대다. 세계화 시대에는 세계화에 걸 맞는 세계인으로서의 자질이 요구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머리속에 자기만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지도가 편협하게 치우친 자기만의 지도라면 그 폭을 넓혀야 한다.

현재 국제법상으로 인정된 나라의 수는 대략 242여 개라고 한다. 세계 지도상에 나오는 국가가 237개, 우리나라 국정원에서 인정한 나라가 225개이다. 유엔에 가입한 회원국이 193개이고 코카콜라가 팔리는 나라가 199개이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물건이 팔리는 나라는 국정원에서 인정한 나라보다 많은 227개 국가이다.

내가 서 있는 이 땅만이 머리 속에 있는 아이와 242개 국가가 나의 운동장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생각의 폭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진정한 애국심은 세계를 아우르는 생각의 폭과 거기에서 나온 균형 감각에 의한 것임을 나는 믿는다. 내 머리 속의 지도를 다시 한 번 들여다 보고 그 지도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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