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의 풍수지리]

▲ 강화도 석모도에 자리 잡은 보문사

[오피니언타임스 김정인 풍수지리]우리나라 4대 관음사찰로 석모도의 보문사(普門寺), 양양 홍련암(紅蓮庵), 남해의 보리암(菩提庵), 여수의 향일암(向日庵)이 꼽힌다. 관음사찰은 모두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닷가에 위치하는데, 관음이란 ‘소리를 보다’는 의미를 가진다. 바다의 파도소리, 해조음(海潮音)에 집중하면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관음(觀音)에서 유래한다.

보문사가 위치한 곳은 낙가산(洛迦山) 아래 서해바다가 잘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인데, 낙가산을 주산으로 하여 좌우의 능선들이 보문사를 겹겹이 감싸주고 앞으로는 서해안이 펼쳐지는데 섬들이 솟아 있어 안산조산을 잘 갖춘 곳이다.

강화도에는 1000년이 넘은 사찰이 보문사, 전등사, 백련사, 적석사, 정수사 등 5곳이 있다. 보통 바닷가 마을은 바다가 잘 보이지 않는 안쪽에 위치한다. 바닷바람을 잘 막아주고 바다의 해일과 폭풍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사람이 살기에 안전하기 때문이다. 전망이 좋아 앞이 트인 곳은 잠시 쉬어가기에는 좋지만 사람이 계속 거주하는 장소로는 맞지 않다. 풍수에서 생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추므로 사신사가 잘 갖추어져 바람으로부터 보호되고 산이 물을 만나는 산진처(山盡處)에 명당은 위치한다.

관음사찰은 관세음보살이 항상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이곳에서 기도발원하게 되면 그 어느 곳보다도 관세음보살의 가피(加被)를 잘 받는 것으로 알려져 항상 기도하러 오는 사람으로 붐빈다. 4대 관음사찰 중 가장 먼저 창건된 곳이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희정대사가 창건한 보문사이며, 선덕여왕 13년(644)에 원효대사에 의해 향일암이 창건되었고, 문무왕 12년(671년)에 의상대사에 의해 홍련암이 창건되고, 신문왕 3년(683년)에 원효대사가 보리암을 창건하여 1300여년이 넘는 관음성지가 되었다.

1300여년 이상 기도가 이루어진 곳, 깨달음의 도를 이루어 소원을 빌면 관음보살이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고 하는 곳, 자신을 위한 소원보다는 남을 위한 소원을 잘 들어준다고 하는데 130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의 소원은 무엇일까? 지척에 북녘의 땅을 앞두고 그리운 금강산을 노래한 강화 평화전망대가 있는 곳,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남북통일의 소원을 이곳 낙가산 아래 보문사에서 빌어본다.

▲ 낙가산에서 바라본 보문사 전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氣)가 센 곳이 강화도 마니산이라고 한다. 강화도 마니산은 기를 찾는 사람들이 해외에서도 많이 오는 곳인데 강화도는 김포 문수산 건너에 위치한 섬이다. 백두대간의 여러 정맥 중 아래에서 위로 뻗어 올라온 정맥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한남정맥이다. 이것을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남성의 성기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한남정맥의 끝이 김포의 문수산(376m)이요, 문수산 건너 높이 솟은 곳이 강화도의 마니산(472m), 강화도에 바로 붙어 있는 곳이 낙가산(235m)의 보문사다. 성기 모양의 지형에서는 그 끝부분에 가장 힘이 모이는데 강화도는 성기의 귀두부분이며, 마니산은 정액이 나오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석모도를 비롯한 여러 개의 섬들은 귀두에서 뿜어져 나온 엑기스인 정액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를 드리면 잘 들어준다고 하여 기도의 영험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석모도에 강화도에서 연결되는 다리가 놓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리를 놓게 되면 석모도가 섬의 기능이 줄어들고 육지로 연결되어 육지의 혼탁한 기운이 들어와서 기도의 효험이 떨어질 것이라는 염려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강화도는 강화대교에 이어 초지대교로 이어졌고 강화도의 교동에도 교동대교가 최근에 개통되어 교동의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석모도의 석모대교가 연결되면 하루 1000여대 이상의 차량들이 곧장 방문할 수 있으니 편리하게 석모도를 찾을 것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문사에 올라 각자의 소원을 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1335~1408)는 임금이 되기 전 금산의 보리암에 들어와서 임금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여 임금이 되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휘감겠다고 약속한 후 그 뜻을 이루고 산의 이름을 비단금자를 써서 금산(錦山)이라고 하였다. 석보도 보문사는 육영수 여사(1925~1974)가 자주 들려 남북통일의 소원을 빌었던 곳이다. 석모도 낙가산에서 통일기원 기도가 응답이 되어 낙가산이 통일산이 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원함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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