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의 풍수지리]

▲ 퇴촌마을 전경, 퇴촌면사무소 뒤 별장에서 바라본 조안산.

[오피니언타임스 김정인 풍수지리]경기도 광주에 있는 퇴촌은 조선의 개국공신 조영무(趙英茂, 1338~1414)가 정계를 은퇴하고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그의 호 퇴촌을 따서 이름 붙여졌다. 고려말 왕씨와 백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의 상서가 조정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살면서 퇴촌이라는 고을이 생겼다는 ‘중정남한지’의 기록도 전해진다. 지금도 퇴촌은 서울의 많은 부호들이 별장을 두고 주말이면 와서 쉬어가는 별장마을이 됐다.

퇴촌의 별장촌 인근은 낮은 산이 주위를 감싸주고 앞으로는 삼봉이 안산으로 들어온다. 그 뒤로는 반듯한 큰 봉우리가 받쳐준다. 별장 안에서 밖을 보면 사면이 산으로 둘러주고 사방에서 물들이 모여드는 명당이다.

마을을 볼 때 먼저 수구(水口, 물 나가는 곳)가 닫혀있는지를 보고, 넓고 평평한 명당이 펼쳐졌는지를 보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곳 퇴촌마을이 이러한 풍수지리적 조건을 갖추었다. 좌측으로는 경안천이 흘러 들어오고 경안천 너머로는 일자문성의 토성체가 둘러있다. 마을의 백호산 능선이 역관하고 수구는 좁게 닫혀 어디로 물이 나가는지 보이지 않는다. 백호능선 너머로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되어 두물머리를 형성하고 팔당호로 물을 가두어준다. 조선의 3대 석학중의 하나인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생가지가 바로 한강 넘어 두물머리 능원리고 천주교의 발상지 또한 이곳 퇴촌마을이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이곳에 한민족 100년 계획 천주교 대성전을 건축 중이다.

▲ 한국천주교 발상지, 퇴촌 천진암 입구

퇴촌은 경안천이 남출북류하여 흘러들고 천주교 성지 천진암 뒷산 앵자산(667m)에서 발원한 우산천(牛山川)이 우산리 관음리 협곡을 거쳐 도수리, 광동리를 거쳐 경안천과 합수한다. 산은 수려하고 단정하며 청량하고 아담한 것이 제일이요, 맥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이어지고 들을 지나면서 봉우리가 솟구치고 지맥이 감싸돌면서 양기의 터를 만드는 곳이 좋은 곳이라고 하였다. 앵자산에서 출맥한 용이 끊어지지 않고 봉긋봉긋 솟았다가 퇴촌의 평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방이 산들로 병풍처럼 둘러주고 물길이 모여들어 분지형지모(盆地形之貌)가 되었다. 밖으로는 남한강이 궁수(弓水)로 감싸주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되어 팔당호를 이루니 경관도 뛰어나다.

퇴촌에 별장을 둔 사람에게 퇴촌하면 생각나는 것 10개를 말해보라 하니 공기, 물, 경치, 늪지, 갈대밭, 강, 수질, 별장, 붕어찜, 토마토 등이 생각난다고 한다.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가축을 사육할 수 없고 농약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청정지역이다. 늪지의 조성 등 수질관리도 철저히 하니 산수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이 살만한 곳은 지리(地理)가 기본이지만 생리(生理), 인심(人心), 산수(山水)도 갖추어야 한다. 퇴촌은 산수가 잘 갖춰져 겨울이 되면 철새가 찾아들고, 주변의 산들이 낮게 병풍처럼 산과 물이 감싸줘 지리적으로 훌륭하다. 서울에서 가까와 고려시대부터 임직을 마치고 퇴촌하여 살던 곳으로 생리의 조건도 충족한다. 이것이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별장지로 각광 받는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심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는 퇴촌주민의 숙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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