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의 자유세상 3.0]

▲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오피니언타임스]전제적인 왕들이 백성들의 관심과는 동떨어진 이유로 전쟁을 하기도 하고, 전쟁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과도한 조세를 부과하거나, 강제노역을 시키기도 하였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詩經)에는 천리타향 국경지역에 부역을 와서 성을 쌓으면서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을 그리는 것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백성들의 손으로 다수결로 직접 왕을 주기적으로 뽑는다면 어떨까? 전제왕권 아래에서 이런 불온한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가슴 떨리게 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전제적인 왕들은 대개 왕실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 소금과 같은 주요 생활필수품들의 독점영업권과 같은 다양한 특권들을 팔았고, 조세의 부과나 변경도 자의적인 부분이 많았으므로 왕에 의해 부여되는 각종 특권을 타파하고, 자의적인 조세를 철폐하려는 자유주의 운동은 민주주의 운동과 궤를 같이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갈등할 수 있는 요소가 있음을 잘 간파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아주 그럴듯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오류가 포함된 간단한 논리에 기초해 있다. 즉, “우리는 대표자를 우리 손으로 뽑는다. 따라서 그 대표자들은 당연히 우리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다시 투표로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사상가들은 자유주의 운동보다는 보편적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한 민주주의 운동에 전념했다. 대표적으로 J. S. 밀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이 그랬다. 그는 보편적 선거권제도가 도입되도록 하기 위해 심지어 여론의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보편적 선거권이 확립되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 것처럼 언론을 뒤에서 조종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의 공공부문에 대한 경제학에서 하나의 주제로 확립된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의 손으로 뽑았으므로 우리의 대표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가정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열린다. 여기에서 주인은 투표자들이고 대리인은 그 대표자이다. 대표자를 교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즉, 다른 대표자로 교체해도 그 사람도 역시 '주인-대리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선거를 할 당시에는 후보들이 그 지역주민들의 머슴을 자처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다시 주인행세를 시작한다. 대표자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더해 특정 지역 주민의 대표자가 그 지역주민의 이익을 위해 여타 지역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도 발생한다. '예산폭탄’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선거공약은 어떤 지역주민에게도 달콤한 것이다. 국민의 세금이라는 공동기금에서 자기 지역에 투자하거나 그 지역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들을 더 많이 하겠다고 하는데, 싫어할 주민들이 있을까? '예산폭탄’의 공약은 실제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서 지난 총선에서 좀체 극복되지 못하던 지역감정까지 극복해냈다.

최근 부패와 타락선거 조짐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3․11 농협, 수협, 축협, 산림조합장 선거도 비슷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세금의 공동재원으로부터 농업에 다양한 국고보조금이 지급되다보니, 이 재원을 둘러싼 이권을 행사하는 조합장이 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아직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벌써 6억 이상 쓰면 당선되고 3억원 이하를 쓰면 떨어진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을까?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농업에 대한 국고지원금을 결정했고, 다수결에 따라 농협조합장을 뽑고 있지만, 결과는 부패와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후보자를 매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장제도에서의 교환과는 다른 다수결 민주주의 결정에 따라 세금으로 거둔 공동기금의 사용을 결정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런 사태까지도 시장경제제도 탓으로 돌리는 어처구니없는 경향도 있다. 말하자면 돈을 주고받는 매표, 후보매수 행위가 돈과 관련되기에 시장경제 탓이라는 식이다.

사실 경제 살리기가 어느 정부 할 것 없이 강조되고 있지만,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돈과 사람의 노력이 헛된 것들을 하는 데 낭비되지 않도록 하면 그게 곧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그렇게 보면, 자유주의와 함께 전제왕권을 무너뜨린 민주주의가 타락하지 않도록 이를 길들이는 것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긴요한 일이다.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확립이고 법치의 확립이다.

여기에서 법치의 확립이란 단순히 국회에서 다수결 입법을 통해 정해진, 즉 적법 절차를 거친 법률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법치의 확립이란 다수결 법률을 통해 다른 사람의 재산을 자신에게로 그들의 동의 없이 자신에게로 이전시킬 수 없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양초제조업자들이 국회의원들을 움직여 태양과의 과도한 경쟁에 따른 피해를 보전한다는 핑계로 양초제조업에게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고 해보자. 그런 법률은 비록 적법한 절차를 거쳤더라도 타인의 재산으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을 자신에게로 이전하는 행위이다. 진정한 의미의 법치국가에서는 이런 법률의 제정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양초제조업자가 아니라 그 어떤 계층에게로 가는 국고보조금들도 대개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부패 가능성을 내재적으로 안고 있다.

물론 이런 법치국가의 확립, 혹은 그런 헌법의 제정이 현재의 민주주의 다수결 아래에서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는 쉽게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이런 다수결의 대상이 될 세금으로 거둘 기금의 규모를 제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작은 정부’다. 작은 정부는 민주주의가 타락할 수 있는 규모를 제한한다. 개인들의 선택의 범위를 넓혀주는 방향으로 꾸준히 제도들을 변화시켜 나간다면, 전체 국민소득 대비 공동결정의 대상이 될 기금의 규모를 계속 줄여나간다면 민주주의가 타락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작은 정부를 추구할 때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높아져 국민들의 부(富)가 증대된다. 우리들은 이 부를 수단으로 가족부양뿐 아니라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이석 아시아투데이 논설위원

이 글은 오피니언타임스과 자유경제원(www.cfe.org) 제휴를 통해 싣는 칼럼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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