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의 자유세상 3.0]

▲ 장대홍 한림대 금융경제학과 명예교수

[오피니언타임스]한국은 명색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도, 우리 사회에서 자유에 대한 걱정은 뒷전으로 밀리고, 민주 논쟁만 관심을 끈다. 정치적 대립, 지역갈등, 노사분규, 교육정책, 사회복지 정책, 등을 가릴 것 없이, 모든 논쟁이 민주냐 반민주냐를 문제 삼는다. 정부를 비난할 때나, 자신이 소속되지 않든지, 이해관계가 다르거나 싫어하는 집단을 비판할 때는 늘 비민주적이라고 공격한다. 근년에 들어 무더기로 도입된 경제민주화 입법들은 경제적 자유를 심각히 침해한다는 사실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위헌 정당으로 해산 판정을 받은 통진당의 지지자들은 이를 반민주적이라고 규탄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공연히 부정하거나 위협해온 세력임이 드러났는데도 그랬다.

이런 삐뚤어진 민주과잉 현상을 두고 '천민(賤民)민주주의’라는 지적까지 나오게 되었다. 천민이라는 경멸적 표현은 비이성적 대중 또는 군중(mob)을 의미하고, 천민민주주의에 가장 가까운 정치용어는 군중에 의한 지배(mob rule, or ochlocracy)일 터이다. 즉 비이성적 대중의 뜻이 매사를 결정하는 민주주의라는 의미다. 이런 절제 없는 정치상황은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언제나 옳고, 도덕적일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믿는 데서 나온다. 반면에 자유라는 말은 기본적인 권리가 아니며, 무(無)도덕적이라고 여긴다. 그렇기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조합용어를 어색하게 생각하고, 민주를 더욱 중히 여기는 경향도 드물지 않다. 실은 자유는 가치의 개념이고, 민주주의는 수단의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은 비교대상도 아니고, 절충의 대상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있지만, 민주적자유주의(democratic liberalism)는 없다. 그럼에도 민주가 최상위 개념처럼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건국하면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시작하였고, 이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외국에서 들여온 수입품이었지, 힘든 정치과정을 통해 체득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사회는 자유의 의미를 깊이 성찰해 보지도 않았고, 이를 얻기 위해 투쟁해온 경험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도, 대중적 인식은 말할 것도 없고, 지식층까지 자유의 원래 의미와 민주주의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미국이 대표적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자유주의 이상을 정치체제로 실현하려 한 최초의 국가이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건국의 기초가 된 독립선언서와 헌법은 지금도 미국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그 가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문서가 시민의 자유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쓰거나 언급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미국건국의 주역들은 18세기 유럽에서 태동한 계몽주의 사상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자유주의 정신과 정치사상을 두 문서에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인신보호,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 양원 의회제도, 삼권분립과 같은 정치제도를 도입하였고, 무엇보다도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애썼다. 그들은 또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민주정치, 공화정의 경험과 문제점을 꿰뚫고 있었으며, 민주주의가 다수의 독재(tyranny of majority), 우중(愚衆)의 정치로 타락하기 쉽다는 점을 특히 경계하였던 것이다.

근대적 의미의 자유는 원래 인간의 천부적 권리는 어떤 정치적 힘으로도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의 개념이다. 사람들이, 비록 흐릿하게나마 '자연적 권리(natural right)’로 여기던, 자유가 도덕적 가치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덕분이었다. 존 로크의 생명, 자유, 그리고, 재산에 대한 권리, 또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어떤 정치적 체제도 침범할 수 없는 보편적 권리라는 명제는 모두 자유의 정신에서 나오고, 이를 억압해온 전제군주 체제에 대한 저항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얻게 되었다. 그 과정을 이끈 정치적 사건이 바로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이었고, 소수의 세습적 특권층만 누리는 자유를 시민의 힘으로 되찾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의 모든 정치적 투쟁도 같은 목적을 가졌고, 이를 위해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원용하였다. 그 결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오늘날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정착된 것이다.

한편 민주주의(democracy)란 말은 사람들(demos)과 통치(kratia)라는 그리스어 낱말을 조합한 용어다. 글자 그대로 군주나 귀족처럼 특권을 가진 소수의 통치(aristokratia, rule of elite)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에 의한 통치(demokratia, rule of people)를 의미한다. 가치개념이 아닌 통치방식, 권력의 사용방법 또는 권위가 어디에 있는가를 규정하는 말이고, 흔히 인민에 의한 지배라고도 정의된다. 최초로 이를 도입한 그리스에서, 전제군주제가 발달하기 어려운 지리적, 문화적 조건을 가졌던 탓에, 통치체제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체제이었다.

그러나 이런 민주적 체제가 대중의 편견과 변덕에 휘둘리는 중우(衆愚)정치, 소수의 정치선동가가 조종하는 군중에 의한 통치(mob rule)라는 역설적 상황으로 변질하기 쉽고, 오래 가기 힘든 불안정한 체제라는 사실은 당시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런 정치 체제를 극도로 싫어한 플라톤이 현인(賢人)정치를 옹호한 것도 자신이 사랑하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타락한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목격한 데 있었다고 전해진다. 점차 타락한 모습을 드러내는 한국의 민주정치가 천민민주주의란 지적을 받고 있는 것도 그런 인식을 보여준다. 천민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란 말도 처음부터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았음은 미국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사실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극도로 우려한 건국주역들의 의도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연권으로서의 개인자유를 정부가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치제도를 만들고자 하였지만, 군중의 힘이 다른 시민의 권리를 빼앗는 가능성도 크다는 사실을 경계하였다. 그렇기에 행정부, 법원, 의회로 구성되는 철저한 상호견제-권력분산 체제에다가, 오직 의회의 의원만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정치체제를 수립했던 것이다. 투표권은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재산과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에게만 주어졌고, 실제로 건국초기에는 전인구의 3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의회가 인구비례대로 선출하는 2년 임기의 하원과, 인구수와 상관없이, 주마다 2명씩 선출하는6년 임기의 상원으로 구성된 것도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거나, 단기적 민의(民意)가 장기적 국익을 해치는 정치상황을 막으려는 의도로 도입된 제도였다. 건국초기의 미국에서는 민주주의자(democrats)라는 말을 정치적 선동을 일삼는 사람이라는 경멸적 뜻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다.

이처럼 근대적 자유의 원래 의미는 인간의 타고난 권리를 존중한다는 가치의 개념이었고,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는 이를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한 방편의 개념이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자유가 개인적 권리이며, 자신에게만 적용되지 않는 보편적 가치라는 사실이다. 개인적 권리를 확대하면, 필연적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유의 범위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제한되어야 하는 소극적, 방어적 자유(negative or defensive liberty)를 의미한다. 이 자유는 개인의 사적(私的) 영역을 보호함으로써 인간이 도덕적 행위, 창조적 역량과 생산 의욕을 발휘하게 한다. 그런 사정은 사회를 개방적으로 만들고, 개방(된)적 사회(open society)는 사회적 부와 번영을 가져오게 하는 원동력임이 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 자유의 보호는 개방된 사회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반대로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의 개념은 개인의 권리를 사회의 힘으로 확대해 주어야 한다는 이념이다. 교육, 의료 서비스, 고용보장, 보육, 노후생계나 개인의 복지는 선택이나 거래의 대상이 아닌, 권리이고,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회정책은 평등사상, 복지국가 이념으로 발전하고, 국가 개입정책으로 실행된다. 즉, 국가가 강제로 세금을 거둬서, 이런 서비스를 배급해 주는 것이다. 자연히 사적(私的) 영역을 침해하는 무리가 따르고, 개인이 창의와 생산의욕을 발휘할 기회를 없앤다. 자유는 보편적 권리로 대체되고, 이들을 공급해주는 관료가 득세하며, 사회는 정체하고 폐쇄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국가)가 만들어 준 틀에 맞출 수밖에 없으므로, 진취적 사고가 억제되기 때문이다. 아세모글루는 '왜 국가가 실패하는가’라는 최근 저서에서 폐쇄(된) 사회, 즉 사회의 정체성, 폐쇄성이 가장 큰 원인이며, 오직 개방된 사회만이 번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회정책, 국가개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 복지주의자, 사회적 민주주의자, 케인즈주의자, 등으로 자처 하지만, 모두 사회주의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자유의 원래 의미를 모르거나, 무시한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편리한 수단이다. 대중의 지지를 받아 이런 정책을 결정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중의 선전, 선동을 공공연히 활용하고,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공성, 사회정의, 공동체 주의, 민족주의와 같이 좋게 들리지만 공허하고 애매한 용어로 대중을 혼란시키려 한다. 공산주의 혁명가 레닌의 선동전술의 핵심은 '먼저 용어의 개념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이런 선동에 앞장서는 '쓸모 있는 바보’들을 지원한다는 것이었음은 상기해 볼 일이다.

이처럼 민주적 정치체제에서 자신의 주장을 민중의 뜻으로 둔갑시키려는 세력은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주로 일부 정치인, 교회 지도자, 시민운동가, 교수, 언론인들이며, 원래 직업이 무엇이든, 늘 평등 지향적이고, 나누어 주기와 민주화를 주장하는 사회운동가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나누어주려 하고, 사회를 자신의 입맛대로 고치려 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들이다. 그들의 방식대로 설계된 사회는 자유로울 수 없고, 폐쇄사회가 된다. 그들과 그들의 선동을 쉽게 믿는 일반대중, 그리고, 그들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이 '천민민주주의’를 만들어 낸다. 그런 경우는 아르헨티나의 페로니즘, 베네주엘라의 사베스 정권,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남유럽 사태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났고, 영국과 미국에서도 수시로 찾아왔다. 모두 민주적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들이었고, 엄청난 후유증이 나타났거나, 국가 파산의 위기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점차 이들을 닮아가고 있다. 지난 십 수 년 간 우리 사회는 사실 왜곡, 허위사실 유포나, 정치적 선동으로 엄청난 진통과 정체를 겪고 있다. 여중생 사망사고, 병풍(兵風)사건, 광우병 괴담, 천안함 폭침 음모설, 총리후보자의 역사인식 조작, 세월호 파동, 등과 같은 비이성적 사태가 헤아리기도 힘들게 많았고, 촛불시위, 공공노조 파업, 항의와 규탄 시위로 조용할 틈이 없었다. 정치인들은 냉철한 국정토론 대신, 이런 국민정서를 득표 전략에 이용하기에 바빴다.

정치는 정치공학이 지배하는 무대가 되었고, 선심성 정책들을 남발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의 눈높이 맞춰야 한다’거나 '좌클릭’하자고 말하는 여당의원, 헌재의 판결을 두고 국민투표로 정할 문제라고 주장하는 몰상식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 결과가 불법 정치세력과 과격한 정치선동의 득세, 무책임한 대중인기영합 정책들의 양산이다. 국회선진화법이나, 청년의무고용할당제, 유통산업선진화법 , 보편적 무상 복지제도, 반값등록금, 특목고 폐지와 같은 시장 간섭 정책들은 그런 사례의 일부에 불과하다. 하나같이 우리사회에 큰 해악을 끼칠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일탈(逸脫)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최근에 일어난 '문창극 총리후보 사태’이었다. 여론이 그를 낙마시킨 것은 120년 전 조선의 정치사회상에 대한 언급이 식민사관을 반영한 한국인 비하(卑下)라는'역사 인식’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발언이나 그가 인용한 외국인 선교사의 언급들은 역사관과는 무관한 사실이었고, 한국인의 비참한 현실은 당시 대한제국 지도층의 무능과 부패를 지적한 것이었음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그랬다. 그가 인용한 이사벨라 비숍의 여행기를 보더라도 한국인이 더럽고, 게으르다는 비난이라기보다는, 번영을 이룰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살리고 있지 못하는 정치사회적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심경을 일관되게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연해주로 이민 간 한국인들이 부지런하고, 깨끗하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열심히 일해서 주변의 러시안인, 중국인들 보다 훨씬 잘 살고 있음을 들어, 한국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기까지 했다.

이런 그의 교회강연 내용을 역사관의 문제로 매도한 언론과 여론, 이를 두둔한 정치권이야 말로 그릇된 역사관에 갇혀서 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를 두고 민주적 언론의 소임을 다했다는 격려가 나오기도 하였다. 비록 그의 후보 지명과 사퇴라는 일과성 사건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대중정서와 정치의 타락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불편한 진실을 부정하는 선동가들,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여론과 정치는 타락한 민주주의를 만들 뿐이다.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절대선이라거나 민주주의가 자유를 의미한다고 믿거나 믿고 싶어 한다. 아마도 민주주의가 대다수 사람, 즉 대중의 뜻을 반영한다는 사실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다수가 도덕적이거나 정의, 진실, 자유를 의미하지도 않을 뿐더러,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래야 할 당위성도 없고, 역사적으로 비도덕적 결과, 불의, 허위와 자유침해로 드러난 경우는 비일비재하였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대다수 사람의 뜻이기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역으로 도덕, 정의, 진실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서는 얻기 어려운 가치들이다.

사실 대중이란 인격체는 없다. 그것은 다수 사람들이라는 의미일 뿐이고, 사회라는 말처럼 뚜렷한 실체가 없고 허황된 개념이다. 대중의 뜻(will of people)이란 말도 마찬가지로 공허할 뿐 아니라, 실은 특정 개인이나 소집단의 뜻이기 쉽다. 극단적 좌파이념을 가졌거나 큰 이해관계를 가진 소집단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선전, 선동과 사실 왜곡을 통해 대중정서를 자극하고, 정치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한다. 그들에게 대중의 뜻이나 민주주의는 자신들의 극단적 이념이나 집단이득을 실현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자유와 민주주의는 동격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고, 가져서도 안 된다. 원래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도입된 장치였지, 자유를 지배하거나 억압하는 수단으로 도입되지 않았다. 자유주의는 자유라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념이지만, 민주주의는 다수 대중의 정치적 결정을 받아들인다는 정치제도의 한 형태일 뿐, 이념도 아니다. 자유는 민주주의에 우선하는 가치개념이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있지만, 민주적 자유주의(democratic liberalism)는 없다. 후자에 가까운 개념을 굳이 찾는다면 비자유적 또는 반자유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가 될 터이다. 그것은, 전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관계를 분석한 자카라이어 가 보여준 대로, 민주주의의 과잉 또는 오남용으로 자유가 훼손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자유민주 체제에서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왜곡된 민주주의가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다. 하이에크는 민주주의 문제점은 대중의 뜻은 늘 옳다는 잘못된 인식에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맹신이 위험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사실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자유에 커다란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데 크게 주목하지 않는 경향을 보여 왔다. 미제스는 유럽에서 사회주의의 실패와 자유주의의 우월성을 논증함으로써 커다란 명성을 얻었던 학자였다. 그는, 나치즘의 핍박을 피해 미국에 온 직후, 이를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자유가 우선적 가치이고, 이를 한껏 늘려 주어야만 개인이나 사회의 번영이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또한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켜주는 원래의 임무에 보다 충실히 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 헌법 조항의 대부분이 정치적 결정으로 시민의 자유가 침해하는 경우를 금지한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가 보다 자유로워지려면,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절제하도록 감시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헌법을 고쳐서라도, 민주주의가 자유를 억압할 여지를 없애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같은 독소조항을 개정하고, 정부간섭과 규제, 정부부문의 확대, 국가채무의 크기를 제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능한 한 작은 정부, 민치(民治)가 아닌 법치(法治)가 이루어지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도입하는 일이 시급하다.

장대홍 한림대 금융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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