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 中國이야기]

▲ 2011년 9월 18일(현지시각)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중국 경찰들이 일본 침략 제80주년을 맞아 ‘잊지말자 국치일 9·18’이라 쓰인 칠판에 자신들의 이름을 쓰고 있다.

[오피니언타임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캐나다는 오늘날 세계 경제의 방향과 정책 등을 좌지우지하는 8개 나라, 소위 G8 국가들이다. 이들 중 캐나다를 제외한 7개 국가들은 오스트리아와 함께 100여년 전 베이징에서 중국을 처절하게 짓밟았던 8개 나라, 소위 의화단의 난을 진압한 8개 연합국이다.

수많은 민란과 혁명으로 점철된 중국의 역사에서 의화단의 난은 가장 가슴 짠한 아쉬움을 남긴다. 이들은 몰락해가는 나라를 구하려고 조국을 유린하는 서구 제국주의에 맨주먹으로 대항한 순수 민간인들의 항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황비홍의 배경이 되는 이들은 우리의 동학 농민군을 연상케 한다.

의화단은 원나라 때부터 산둥지방에서 맥을 이어오던 비밀결사 단체이다. 그들은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온 신병이라 칭하며 권법, 봉술을 익히고 주문을 외우면 총탄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부분이 가난하고 약한 취약 계층이었지만 정의롭고 충성스러웠으며 일반백성들은 괴롭히지 않았다.

아편전쟁 이후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국의 자부심은, 철저하게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결국 의화단은 청나라를 구하고 서양인들을 몰아내자는 ‘부청멸양(扶淸滅洋)’을 주장하며 본격적으로 공개적 활동을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의화단 운동은, 서태후 정부의 지원 하에 1900년 5월경 텐진, 베이징으로 확대되고, 마침내 베이징의 외국 공사단을 포위하기에 이른다. 이에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8개국이 자국의 거류민과 외교관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연합군을 조직하여 베이징으로 진격하고, 최신예 총포로 무장한 이들에 의해 무자비한 의화단 진압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때 파견된 연합군은 영국 3만3450명을 비롯하여 8개 연합군 12만7000여명과 이와 별도로 만주 지역으로 들어온 러시아군 16만2000여명을 합하여 대략 29만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이 입성하면서 수도 베이징은 쉽게 점령되었고 서태후가 시안으로 도주하면서 수도 베이징의 혼란은 극에 달하게 된다.

연합군은 베이징을 점령한 뒤 3일 간, 의화단 색출을 명분으로 끔찍한 살인, 약탈, 강간 등 범죄를 자행하는데, 희생자의 대부분은 의화단과 전혀 무관한 민간인들이었다. 그들은 마구잡이로 민간인을 살해했으며 ‘중국인과 마주치면 무조건 발포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또 절과 주택에 마구 불을 질렀고 거리에는 시체가 넘쳐났다.

이는 자국의 외교관이 의화단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보복성까지 띄고 있어서 약탈과 폭행은 광분에 달할 정도로 심각했다. 독일 외교 공사관 케텔러 남작이 살해당한 이후 독일 원정대가 출정할 당시 황제 빌헬름 2세는 연설에서 청나라를 ‘야만국으로 취급하라’는 이른바 ‘훈족연설’을 남기기까지 한다. 베이징을 점령한 연합군은 1901년 9월 신축 조약, 소위 베이징 의정서가 체결되기까지 13개월간 주둔했다. 이 전쟁으로 인한 중국인 희생자는 수백 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기나라를 지키려던 맨주먹의 시신들 앞에서 청나라는, ‘전쟁 배상금 6750만 파운드를 연리 4%로 39년 동안 갚을 것이며, 황제와 대신을 독일과 일본에 파견하여 외교관 피살에 대해 사죄하고, 향후 베이징을 비롯한 12곳에 외국군대를 주둔시킬 것이며 앞으로 서양 열강에 반대하는 어떠한 행동도 용서하지 않고 이를 위반한 사람은 모두 사형에 처한다’라는 등의 굴욕적인 내용의 베이징 의정서에 서명하게 된다. 이때 청을 압박하여 서명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등 현재 G8 국가 중 7개국과 함께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벨기에까지 더하여 모두 11개국이나 되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서는 한(恨)을 맺힘과 풀림의 계기성과 대립의 묶음들로 정리할 수 있다고 풀었다. 한이 발생하고 생성되는 내부에는 맺힘과 맺음이 있다. 맺힘은 타인에 의한 것이고, 맺음은 스스로에 의한 것이다. 즉 한(恨)이란 남이 부여하는 경우와 스스로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남이 부여하는 상처와 아픔은 타(他)에 의한 것이기에 타상(他傷)이고 스스로 일으키는 상처와 아픔은 자상(自傷)이라고 한다.

한(恨)이란 임하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발생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한의 속성은 치유하거나 훌훌 털어 버리고 잊는 자세에는 원한이 발생하거나 생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슬픔이나 후회, 자책, 분함, 억울함, 원통함, 저주, 앙갚음 등을 계속 일으키면서, 이들 감정들을 치유하지도 망각하지도 못하고 집착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원한이 발생되고 생성된다는 것이다.

한(恨)은 응어리라고 한다. 보편적으로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상대방을 오래 관찰하며 원수를 갚을 때는 대를 이어서 갚는 집요함과 끈질김을 보여준다.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의 정치가들 손에는 언제나 역사책이 들려 있었다고 한다. ‘과거를 알고 현재를 보며 내일을 이끌 열린 사람들’ 중국 공산당 당교의 가르침이다. ‘과거를 아는’ 사람들의 중국몽(中國夢)은, 과연 치유의 대범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후회와 억울함, 저주가 남아 있을지는, 물론 그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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