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 풍수지리]

▲ 왕곡마을, 야트막한 봉우리에 의지해 집들이 배치됐다.

[오피니언타임스]강원도 고성의 왕곡마을은 고려 말 조선건국에 반대해 은거한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의 집성촌이다. 양근 함씨의 입향조는 고려 말 두문동 72인(새로운 왕조 조선을 섬기는데 부끄러움을 느껴 두문동에 들어가 절개를 지켰던 고려의 충신들) 중 한사람인 함부열이다. 그의 형인 함부림은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 3등에 올랐지만 고려 말 예부상서와 홍문관 박사를 지낸 아우 함부열은 공양왕이 원주로 추방당하자 은밀히 뒤따라가 2년간을 모셨다. 그러다 왕이 다시 유배되자 간성으로 거처를 옮겨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손자인 함영근이 조선의 눈길을 피해 은둔한 자리가 지금의 고성 왕곡마을이다.

난리의 피해를 벗어나고자 자리 잡은 곳을 십승지지(十勝之地)라고 하는데 영월 정동(正東)쪽 상류, 풍기 금계촌(金鷄村), 합천 가야산 만수동(萬壽洞) 동북쪽, 부안 호암(壺巖) 아래, 보은 속리산 아래 증항(甑項) 근처, 남원 운봉 지리산 아래 동점촌(銅店村), 안동 화곡(華谷), 단양 영춘, 무주 무풍 북동쪽 등이다. 십승지지의 특징은 세상과 떨어져 있고, 하천을 끼고 있으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산간오지의 분지형 마을이다.

함부열의 손자 함영근이 최종적으로 은신처로 자리 잡은 왕곡마을도 오지중의 오지요 산으로 둘러싸인 오목한 분지형인 십승지지의 요건에 해당한다. 왕곡마을은 오음산(五音山, 285m)을 주산으로 오른쪽으로 진방산(唇防山), 제공산(濟孔山, 172m), 좌쪽으로 두백산(頭伯山, 251m), 공모산(拱帽山, 125m), 전면에 호근산(湖近山, 103m) 등 다섯 개의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형 마을이다.

송지호에서 바라본 왕곡마을은 유선형의 배모양이기 때문에 행주형 형국으로 보며, 우물을 파면 배가 가라앉는다고 하여 우물을 파지 않았다.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38선 접경지역이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포탄이 꺾여서 피해갔고, 최근 고성지역 산불이 났을 때도 화마가 피해갔다고 현지주민들은 전했다. 마을이 다섯 봉우리로 둘려져 있어 기운이 하늘로 뻗치기 때문에 포탄도 꺾이고 화마도 접근하지 못하였다고 주민들은 설명했다.

▲ 왕곡마을은 동해안과 마을 사이에 산과 송지호가 있어 바닷 바람을 순화시켜주며 생기가 응집될 수 있도록 자연환경이 만들어졌다.

풍수적으로 보면 분지형 마을은 최고 길지(吉地)에 속한다. 사방팔방 바람을 막아주고 주산과 안산, 청룡과 백호 사신팔장(四神八帳) 봉우리들이 서로 조응(照應)하며 생기(生氣)를 응축하고, 물이 마을을 가로 지르니 바람도 갈무리 되고 생기도 물을 만나 멎으며 음양이 조화된다. 6.25 한국전쟁 시 피해를 입지 않은 마을은 대부분 이러한 분지형 마을이다. 강원도 춘천 문배마을, 충북 동막골 벌랏마을, 영월 대아리 가재골마을, 경북 예천의 부푸실마을 등 대부분 산간오지 분지형 마을은 전쟁피해를 입지 않았다.

또한 바닷가에 위치한 마을은 바다로부터 안쪽으로 들어와 바닷바람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 앞에 섬이 있거나 산이 있어서 바다로부터 직접적인 해풍을 막아주어야 마을이 보존된다. 바닷가를 여행하다 보면 바다와 인접한 곳은 마을 앞에 섬이 있어 바람을 막아주고 있고 바다와 마을 사이에는 산이 있어야 바닷바람을 순화시켜 줄 수 있다. 백령도에 가면 마을이 위치한 곳은 바다로부터 안쪽으로 바다와 마을 사이에 산이 있어 마을을 포근한 기운으로 감 돌게 한다. 왕곡마을도 동해안 바닷가와 마을 사이에 산과 송지호가 있어 마을이 깊게 은폐되고 바다의 해풍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이러한 곳은 은둔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왕곡마을은 건물의 구조와 배치에 있어서도 본체 뒤편으로는 담장을 둘러 북서풍을 막아주고 여인의 공간으로 독립성을 두었으며, 전면을 개방하여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건물배치 및 구조를 형성했다. 굴뚝모양도 항아리를 엎어두어 온기가 집안으로 퍼지도록 보온에도 적합한 구조로 만들었다.

오늘날 집단주거단지를 개발할 때도 이러한 풍수적 원리가 적용되어 자연적으로 부족한 것을 인공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적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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