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시청 앞 거리에서 50대 남자가 걸어간다. 그 옆엔 30대 비즈니스맨들이 이어폰을 꼽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빠르게 걸어간다. 마침 초등학생들이 걸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얼핏 보면 일상적인 풍경인데 그 3대의 행렬 안엔 어떤 징조가 보였다. 세대교체 주기 징조다. 그들 세대교체 주기는 같을까?

할아버지와 손자, 아버지와 아들 @플리커

지금 50대들은 민주화와 정보화를 이루면서 80년대 이후 사회 주도층이었다. 지금 30대들은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친숙했고 셀카, 모바일게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하고 해외여행에 익숙하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들을 3포 세대라고 비하한다. 컴퓨터가 보급되던 1990년대에 사회로 진출한 세대가 ‘신인류’라고 불렸던 것과는 대비된다. 그들이 주도적 역할을 할 기간은 얼마나 될까? 내 판단으로는 앞 세대들처럼 오래 리드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들은 앞 세대에 눌려 리더십을 배울 기회가 없었고 또한 앞 세대가 수명 연장이 되면서 리더십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미디어와 사물화 기술의 발달 ‘속도’ 때문이다. 지금 초등학생들의 엄마는 어려서부터 첨단기기를 제공하고, 해외로 데리고 다니는 이른바 헬리콥터 맘들이고 아이들은 스마트 네이티브 세대다. 게다가 사물인터넷(IoT), 3D프린터, 드론, 무인차와 생활로봇들이 이들 세대가 20대가 될 무렵에 상용화될 것이다. 지금 50~60대가 네트워크와 스마트 시대에는 이빨 빠진 사자가 된 것처럼, 지금 30대들도 10년 후 무렵에는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울 것이다. 슬로우 컬처, 친 소비자(User Friendly)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수용 능력을 넘는 기술 속도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니 지금 30대가 중년이 되는 시점이면 지금 10대들 세대에 뒤질 것이다. 물론 이대로의 기술 속도와 교육열이라면 지금 10대들은 그 아랫세대에 의해서 더 빠른 속도로 주도권을 놓게 될 것이다. 노령화가 변수는 되겠지만.

할머니와 딸, 손녀의 손. 세대교체와 함께 기술의 진화가 빨라지면서 인사이트 능력은 퇴화되고 있다. ©픽사베이

사이트 vs 인사이트

그날 3세대 행렬에서 내가 본 것은 일종의 편집이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보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나는 그 풍경을 조합해서 그렇게 행렬의 의미를 들여다보았다. 그것을 우리는 인사이트라고 부른다. 겉으로 보이는 것(Sight)만 본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의미와 연결 내용을 보는 것이 인사이트(Insight)다. 스마트 환경은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이런 사이트-인사이트 능력은 오히려 퇴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빠른 속도로 세상에 적응해야 하니 본질과 의미, 연결되는 내용을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을 보는 인사이트는 어느 시대나 필요하다. 의사들은 청진기, 내시경,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쓰고 한의사들은 맥을 짚고 심리학자는 환자의 정신 속으로 들어간다. 요즘 대기업들은 빅 데이터로 소비자의 속을 들여다본다. 도시 건축가들도 도시 작동에 문제가 생기면 설계도를 보고 하수구, 전선줄, 지하 등 도시 속으로 들어가 해법을 쉽게 찾는다.

속을 보며 문제를 푸는 이것을 ‘청진기 리더십’이라고 불러보자. 청진기(stethoscope)는 그리스어로 ‘가슴’을 뜻하는 스테토스(stethos)와 ‘본다’의 스코포스(skopos)를 합친 것이다. 폐와 심장, 장이나 혈관이 운동하면서 생기는 소리를 듣기 위해 사용하는데 그전에는 직접적 청진, 두드려서 듣는 타진(打診)법이 쓰이다가 1816년에 프랑스 의사 르네 라에네크가 종이를 말아 환자 가슴에 대고 듣기 시작하면서 발명되었다. 그를 찾아온 젊은 여인이 너무 가슴이 비대해서 귀나 타진으로는 불가능하자 즉석에서 만든 것이 원통의 종이 청진기다. 이 청진기를 가슴에 대면 속이 보이고 징후가 포착되며 어디가 문제고 어디를 뚫어 연결하면 되는지를 알 수 있다.

@픽사베이

 


청진기를 발바닥에 대는 것은 아닌가

청진기는 가슴에 대는 것이다. 거기는 심장의 박동이 있다. 문화가 중요해진 이 시대, 문화에도 청진기를 대면 속의 박동을 보고 의미 있는 징후들을 찾아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요즘 지역문화 콘텐츠 활성화가 화두이니 일례로 하동군 평사리 최 참판 댁 마을을 보자. 이 마을은 드라마 ‘토지’ 방송촬영이 수차례 이뤄지면서 명소가 되었다. 배경이 된 소설 ‘토지’는 한국의 아픈 근대사를 다룬 걸작이다. 아픈 근대사, 그동안은 여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니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 속에 성장했고 글로벌 테마에 더 친숙한 20~30대 젊은이들은 쉽게 공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토지에 청진기를 제대로 대면 그 시대를 살았던 남과 여의 욕망과 못 이룬 사랑이 보이고 그러면 미국 남북전쟁 당시를 묘사한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도 사랑과 욕망의 박동이 같이 들린다. 이 테마는 젊은이들도 쉽게 공감하는 테마다. 욕망과 사랑이란 ‘인사이트 포인트’에 초점을 맞추면 여자 주인공 스칼렛과 서희는 서로 겹치는 주인공들이다. 그럼 토지 마을은 의미와 연결이 더 넓어질 수 있고(예를 들어 토지 촬영지 마을에서 ‘토지, 사랑으로의 여행’로 의미 확장), 한국인만의 토지를 넘는 보편성을 확보하면서 관광 사업 스펙트럼도 넓어지게 된다.

청진기를 사회에도 대보자. 그럼 한국은 뭔가 막힌 환자 같을 것이다. 정치가 언론인, 전문가 등은 혹시 귀가 막힌 청진기를 대거나 발바닥에 대는 것은 아닌가? 국민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았던 세월호, 메르스 대책 그리고 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국정화 국사 교과서 추진 등은 국민들 속을 들여다보는 인사이트가 과연 있는가? 2018년 인구절벽 경고음들이 들리고 정보에 민감한 1%들은 현금을 꽉 틀어쥐고 풀지 않는데, 분양 증가 뉴스 따위로 서민들을 현혹시키는 것은 무슨 발바닥 인사이트인가. 가난한 지자체에서 수백억짜리 생색내기 문화회관, 박물관, 문화공원을 다투어 짓고 있는데 생색내는 지자체장과 특수를 누리는 건설업자, 땅을 가진 토호들은 당장은 좋겠지만 쥐꼬리 예산과 인력으로 어떻게 100년을 설계하는 문화 콘텐츠를 만든단 말인가.

이들 공간을 전국 문화콘텐츠들과 연결해서 통합적으로 관리할 문화공간 재생회사가 필요한 시점은 아닌가.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금 어디에 청진기를 대고 있는가. 홍수 때는 실체가 보이지 않지만 홍수가 끝나면 더러운 실체가 드러나는 법이다. 더러운 실체를 남기지 않으려면 위정자들은 청진기를 제대로 대라, 국민들은 속을 보는 인사이트를 키워라.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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