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2015년이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한해가 될 것이라고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난 11월25일 발표했다. 올해가 저물기까지 한 달 이상 남은 시점에서 WMO가 10월까지의 통계만 가지고 이 같은 발표를 서두른 것은 지난달 30일 파리에서 개막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1)를 의식한 때문이다. COP21 회의가 시작되기 전 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단에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 북극곰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플리커

‘매년 가장 더웠던 해’ 기록 갱신

WMO의 발표대로라면 2011년 이후 매년 가장 더웠던 한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 지구의 기온 관측이 시작된 이후 134년의 기간 동안 가장 더웠던 10년 중 9년이 2000년 이후이다. 그나마 20세기에서 유일하게 가장 더웠던 10년에 포함된 것도 1998년이다. 지구 온난화를 막을 획기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매년 가장 더웠던 한해의 기록은 갱신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온난화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WMO의 발표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올해 전 세계 연간 평균 기온이 섭씨 14도에 달해 산업혁명이 시작됐던 19세기 후반과 비교해 섭씨 1도 이상 올랐다는 부분이다. WMO의 이번 발표 전까지만 해도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기온 상승은 0.85도 정도로 1도 상승에는 못미치는 것으로 추산됐었다. 이는 금세기 말까지 지구의 기온 상승을 섭씨 2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COP21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앞으로의 기온 상승을 1도 미만으로 묶어야만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번 COP21 회의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하여 전세계에서 150개에 가까운 나라 정상들이 참석했다.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회의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돌 만큼 이번 회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처럼 중요한 이번 회의에서 인류의 미래를 구할 합의를 이루는 것은 가능할까?

모든 나라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이야기하지만 이를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겠다고 밝힌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플리커

강제성 없는 온실가스 감축 합의, 말로만 끝날 가능성 커

불행하게도 그럴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우선 기온 상승을 섭씨 2도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목표 자체부터 잘못됐다. COP21 개막을 앞두고 195개의 당사국 가운데 184개국이 자발적인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북한을 비롯해 전란을 겪고 있는 시리아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리비아, 지구 온난화의 원인은 서방 선진국들이 제공했으므로 해결 책임도 서방 선진국들이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니카라과와 베네수엘라 같은 중남미의 일부 사회주의 국가 등 11개국만이 감축 목표를 제출하지 않았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제시한 184개국이 모두 자신의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한다고 가정하더라도 2100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2.7도 상승할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나라가 바닷물에 잠길 위험에 처한 일부 도서 국가들은 기온 상승이 2도에 달하면 국토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겨 대규모 난민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면서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감축 목표를 제시한 184개국이 모두 약속을 지킬 것인지도 의문이다. 지난달 30일 회의 개막 이후 1주일 간 실무 논의를 계속해온 협상단은 지난 5일 파리 협약 합의안 초안을 마련했다. 이 초안을 놓고 좀더 고위층인 환경장관과 외무장관들이 협상을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말만 합의안이지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내용들을 모두 포함시켜 협상의 책임을 떠넘겼을 뿐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이견을 보이는 것은 개발도상국가들의 지구 온난화 대처를 위한 자금 지원과 합의안에 법적 강제력을 부여할 것인지 여부이다. 선진국들은 오는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를 빈국들에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반면 빈국들은 이러한 지원이 2020년 이후에도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법적 구속력을 갖추지 못한 합의는 약속 이행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나라에 대한 제재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제재 조항이 포함될 경우 의회에서의 비준이 어려운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은 법적 구속력 부여에 반대한다. 결국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말뿐인 합의로 끝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온난화로 메마른 땅에선 생명이 살아갈 수 없다. @픽사베이

합의가 이뤄지면 그대로 이행하는 것은 가능할까? 모든 나라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위해 필수적인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겠다고 밝힌 나라는 하나도 없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는 경제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축 목표는 있지만 이를 이룰 수단은 없는 실정이다.

강제성을 갖추지 못한 합의는 결국 약속 이행을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방임주의를 내세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떠올리게 한다. 스미스는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 결정을 하면 이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결정이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유방임주의는 시장실패를 불러 정부의 개입이라는 수정자본주의를 낳게 했다. 기후변화의 위험이 아무리 크다 해도 당장 눈 앞의 이익이라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한 COP21의 성공은 요원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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