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사법시험 존치를 둘러싼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3일 법무부가 사시 폐지 시한을 4년 더 연장해 2021년까지 유예하겠다고 발표해 타오르는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생들은 법조인 양성 단일화 약속을 깨고 ‘떼법’을 용인한 것이라며 수업을 거부하고 전원 자퇴를 결의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서울지방변호사회,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4년 유예안은 미봉책이라며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 사시를 영구적으로 존치토록 해야 한다고 맞섰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몇몇 수험생은 사시 존치를 요구하며 삭발까지 했다. 사시 준비생과 로스쿨생이 서로 ‘흙수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7일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고시생 김종근, 박원호, 박정민씨(왼쪽부터)가 사시 존치를 주장하며 삭발하고 있다.©포커스뉴스

법무부, 어설픈 여론조사 발표로 불신과 분란만 키워

법무부는 4년 유예안을 발표하면서 대법원과 로스쿨 관할 부처인 교육부와 협의조차 하지 않아 비난과 불신을 자초했다. 대법원이 “사법시험 존치 등 법조인 양성시스템에 관한 사항은 법무부가 단시간 내에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신중하고도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할 정도였다. 게다가 법무부가 사시 폐지 4년 유예의 근거로 제시한 ‘국민의 85.4%가 사시 존치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신뢰하기 어려운 것으로 밝혀졌다. 한 일간지의 사설에 따르면 여론 조사 문항이 ‘사시는 누구에게나 응시 기회가 부여되고, 수십 년간 공정한 운영을 통해 객관적인 기준으로 법조인을 선발해 왔기 때문에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느냐’는 식으로, 누가 봐도 사시 존치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 편파적인 내용이었다고 한다.

여론조사가 필요했다면 로스쿨 측과 협의해 공정하게 문항을 구성함으로써 여론 조작 시비가 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식이다. 법무부가 사시 존치 같은 예민하면서도 폭발력이 큰 사안을 이런 식으로 조정하려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시 출신인 법무부 간부들이 기수(期數) 문화나 전관예우 같은 기득권 유지에 동조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법무부는 사시 존치와 관련해 건전한 조정자의 역할은 할 수 없게 됐다. 앞으로는 국회가 대법원과 교육부, 법조 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사시 폐지와 존치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 국가가 어떤 제도를 도입하느냐 폐지하느냐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야 한다. 그 제도가 그 시대에 국민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1995년부터 10년도 넘게 논의한 끝에 2009년에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고 사법시험을 폐지하기로 한 것은 합격률이 5%에도 미치지 못해 ‘고시 낭인’을 양산하는 사법시험의 병폐를 해소하고,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기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판·검사 충원을 위한 성격이 강했던 사법시험보다는 로스쿨을 통한 법조인 양성제도가 사회의 발전에 따라 복잡다기하게 늘어나는 법률 수요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법학교육만 받은 사람보다는 다양한 전공을 갖추고 법학 이론을 공부한 전문 변호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로스쿨 학생들이 사시 폐지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포커스뉴스

기대 부응 못한 로스쿨··· 희망의 사다리 되도록 보완해야

하지만 로스쿨은 현재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부풀려진 장학 제도, 변호사시험 합격률만을 의식한 학사 일정, 입학 전형의 불투명성 등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다. 경험이 일천한 탓도 있겠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 법률가들의 배출도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비판은 ‘돈스쿨’, ‘현대판 음서제’라는 것이다. 사립 로스쿨을 졸업하기까지 1억원에 가까운 거액이 들 뿐 아니라 법조계를 포함해 전·현직 고위 관료나 기업가 같은 상류층의 자녀가 쉬운 변호사 시험을 통해 판·검사를 포함해 좋은 취직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맞물려 있는 비판이 사법시험을 존치해야 개천에서 용이 나고 ‘희망의 사다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 로스쿨 제도로는 제2의 노무현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사시 존치에 찬성토록 하는 결정적인 문항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10년 넘게 오랫동안 논의한 끝에 폐지하기로 한 약속을 파기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양한 법률수요에 부응한다는 로스쿨 도입 취지를 찬찬히 살펴보더라도 사시 존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한 것 같다. 법률가를 양성하는 길을 이원화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낭비다. 고시 낭인 양산 문제도 재현될 수 있다.

현 상황에서는 부족하지만 로스쿨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길이라고 생각한다. 로스쿨이 사시를 대신해서 희망의 사다리가 될 수 있도록 사시 준비생들을 포함해 취약 계층과 소수자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등록금은 내리는 대신 장학금은 확충해야 한다. 가난한 로스쿨생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방안도 강구해보자. 미국의 일부 주에서처럼 방송통신대학 로스쿨을 설립해 저렴한 학비로 공부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대판 음서제라는 목소리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를 금지한 변호사시험법 제18조 제1항은 위헌이라고 결정해 잦아들 것이다. 변시 성적이 공개되면 법원과 검찰, 로펌의 신규 변호사 채용의 불투명성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시 존치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과 대한변협 회장 선거의 영향도 크다고 본다. 전직뿐 아니라 현직 두 회장도 모두 사시 존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했다. 로스쿨 출신은 적고 사시 출신이 대부분인 재야 법조계에서 사시 존치 공약은 표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상당수 변호사들은 사시가 폐지되면 출신 학교나 연고지를 잃는 것 같은 박탈감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포커스뉴스

법률 수요에 맞게 변호사 배출 인력 조정도 필요

하지만 현 상황은 곧 역전될 수 있다. 1~2년만 지나면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숫자뿐 아니라 세력이 사시 출신 변호사 못지 않게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중심이 돼 변호사 단체장 후보 선거 공약으로 사시 폐지를 내걸어 당선한 뒤 법무부와 국회 등에 사시 폐지 입법을 압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갈등 양상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법조계 꼴은 도대체 뭐가 되고 국민은 어떻게 볼 것인가.

법조계가 최근 더 힘들어 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변호사가 급증해 일거리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법률 수요는 한정돼 있는데 변호사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니 서로 예민해지거나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사실 해마다 변호사가 2000명이나 배출되는 시대를 맞아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하기는 어렵게 됐다. 수요를 감안해 공급을 결정해야 한다.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변시 낭인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로스쿨 입학생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사시 폐지와 존치를 둘러싼 갈등의 해결은 이제 국회에 달렸다. 국회는 변호사 배출 숫자를 줄이는 것을 포함해 어느 쪽이 시대적 요청이고 국민을 위한 것인지 정확하게 분별했으면 한다.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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