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발언대]

[오피니언타임스] 내 월급은 230만원이다. 소득세, 주민세, 4대 보험 등 18만4430원을 떼고 나면 211만5570원이 통장에 꽂힌다. 연봉으로 따지면 2760만원, 평범한 월급쟁이의 딱 중간치다. 전경련이 지난해 임금근로자 평균연봉을 분석한 결과 100명 중 소득 상위 50번째 근로자의 연봉(중위임금)은 2465만원이었다.

여자 몸무게 들추기처럼 민감한 연봉 정보를 굳이 공개하는 까닭은 내가 결혼적령기 끝물인 34살에도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를 함께 고민해보기 위해서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이 없어지고 삶에 쫓겨 가는 일상이 반복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일부만 맞는 소리다. 일자리뿐 아니라 주거, 육아, 교육 등 ‘젊은이들의 사랑이 없어지는’ 이유는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34살 직장인의 급여명세서.

평균 월급을 받는 평범한 30대는 왜 결혼을 못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두가 안 나서다. 내 집 마련부터 아이 낳아 기르고 대학 보낼 자신이 없다.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하지?’라며 지레 겁부터 먹게 된다. 결혼한 30대들과 얘기하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난다. 돈 나갈 걱정에 어깨는 움츠러들고 애 셋 나으려던 계획이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로, ‘차라리 낳지 말고 즐기며 살자’로, ‘결혼하지 말까’라는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혼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진실한 사랑과 굳건한 믿음?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 물론 이것들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시급한 것은 ‘집’이다. 집이 있어야 예비 장인·장모에게 “따님을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혼수도 채워넣을 게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만만찮다. 평범한 30대인 필자의 월급을 살펴보자. 세후월급 211만5570원 중 교통비, 통신비 등 매달 나가는 고정비용은 최소 50만원이다. 여기에 각종 경조사나 모임, 최소 품위유지비를 더하면 80만원쯤 깨진다. 남은 돈은 130만원인데 이걸 모두 저축해도 내 집 마련은 하늘의 별따기다. KB국민은행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서울 주택 평균 전세가격은 3억원을 넘어섰다. 인천, 경기로 눈을 돌려도 최소 1억5000만원은 있어야 내 집에 한 발 걸칠 수 있다.

주택 구매까지 시간을 계산해보자. 인천에서 집을 사려면 130만원을 115개월 동안 저금해야 한다. 무려 9년7개월이다. 서울 진입 장벽은 더 높다. 전셋값 3억원을 모으려면 130만원씩 19년3개월을 저축해야 한다. 결혼적령기 안에 결혼하고 싶다면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그동안 모은 돈에서 부족한 만큼 은행에 손을 벌려야 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신용도에 따라 다르지만 약 3.3% 정도다. 1억원을 빌리면 매달 30만원을 이자로 내야 한다. 온전한 내 집 마련의 꿈은 더 멀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해도 험난한 육아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자녀가 생기면 일단 맞벌이냐, 외벌이냐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어느 쪽이든 돈 나갈 일이 천지삐까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주가 40대(40∼49세)인 가구의 교육비 지출은 월 50만737원으로 나타났다. 자녀가 고등학생쯤 되면 이쯤 나간다는 소리다. 대학 등록금은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난다. 웬만한 사립대학교는 한 학기 등록금만 500만원이 넘는다. 예체능은 800만원 넘는 곳도 있다. 자녀가 음악이나 미술에 재능이 없길 남몰래 비는 수밖에 없다.

서울 송파구 신천역 인근 부동산에 붙은 전세 매매 광고. 평범한 월급쟁이가 대출 없이 집사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포커스뉴스

2015 한국사회동향에 따르면 에코세대(1979∼1992년생) 두 명 중 한 명은 ‘결혼이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과 동시에 생기는 각종 책임이 부담되고, 능력도 안 되니까 안 하겠다는 것이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에 이어 주택구매와 희망까지 포기한 7포 세대란 용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청년들의 고민은 심각하다.

이에 비해 정부 대책은 느긋하다. 정부는 10일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을 통해 5년 동안 200여개 대책에 약 20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1.21명인 출산율을 1.5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다. 그러나 신혼부부 전용 행복주택 5만3000가구를 공급한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어 보인다.

예컨대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내세운 ‘남성 육아 활성화’는 현재 한달인 아빠의 육아휴직 인센티브를 석달로 늘리겠다는 것인데, 육아휴직 쓰기가 영 눈치보이는 현실에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저출산 대책 중 임산부 진료비 무료 등은 지엽적이다. 지원해주면 좋지만 진료비 공짜라고 아이 낳을 사람은 없다.

청년들의 가슴에는 이미 사랑이 없어지고 있다. 삶에 쫓기는 일상도 현실이다. “열심히 사는데 먹고살기 참 힘들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애 때문에 때려치울 수가 없다”는 식의 하소연이 주변에서 종종 들린다. 정부가 결혼, 출산 대책을 내놨지만 이 정도론 부족하다. 장기적으로 가족친화적 기업문화, 자녀 양육과 사교육 부담 완화 등 구조 개혁을 종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것이 청년을 절망에서 구하는 길이다.

 

 쉬뿡

 오줌도 잘 누고 방구도 잘 뀌는 평범한 34살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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