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검사의 임무는 범법자를 단죄하는 것이다. 범죄의 증거를 찾아 당사자를 법정에 세우고 치밀한 법리를 제시해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 요즘 우리 검찰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검찰의 사명은 거악(巨惡)이 발을 뻗고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다.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그래피티 아트. 검찰의 사명은 거악(巨惡)이 발을 뻗고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픽사베이

범죄자는 단죄해야 하지만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인권침해도 없어야

한데 범죄를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자금이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스스로 범행을 고백하는 피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검사는 대다수 피의자들이 범행을 부인하는 가운데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피의자들을 가혹하게 심문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를 폭행·고문하거나 쪼그려 뛰기, 팔굽혀 펴기 같은 ‘얼차려’를 시킨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악을 척결하는 것 못지 않게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검찰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법과 원칙을 지켜 피의자나 피고인의 법익과 인권보호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래야 형사 사법적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피의자가 수사 과정에서 억울하다고 느끼면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은 물론 검찰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이어진다. 요즘에는 진실 규명이 어려운 복잡다단한 범죄와 생계형 범죄가 적지 않아 자칫하면 잘못되거나 가혹한 법집행을 할 수도 있다. 폭행이나 얼차려는 없어졌지만 강압 막말 회유 욕설 등의 잘못된 관행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21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열린 ‘2015 검사평가제 최초 시행’ 기자회견에 참석한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포커스뉴스

올해 첫 실시된 검사평가제, 성찰과 신뢰 제고 계기 삼아야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19일 사법사상 처음으로 검사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우수 검사 10명의 명단은 공개하고, 낮은 평가를 받은 검사에게는 평가 결과를 전달했다. 유죄를 인정하면 처벌 수위를 낮춰주는 플리바게닝을 시도하거나 고소 취하 종용, 피의자 모욕 등 인권을 침해한 사례도 드러났다. 대부분 악을 단죄하는 ‘공익의 대변자’라는 의식의 과잉 또는 특권 의식 탓일 것이다. 

검찰 내부에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검사와 공방을 벌인 상대방인 변호사들이 공정한 평가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검사평가제에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의자의 권익과 적법절차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의에 비춰보면 그런 논거는 작은 일로 여겨진다. 검찰의 편법과 부당한 법익 침해를 방지해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들을 방치했다가는 자칫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2008년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처음 도입한 법관평가제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국의 지방변호사회에서 실시하고 있다. 이제 법관평가제에 대해서는 국민이나 법조계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변호사법 제1조에서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변호사들의 건전한 양식을 믿는 것이 옳다고 본다. 변호사들이 법관들에 대해 감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변호사의 주관이 개입되거나 공정을 해치는 평가를 배제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 단체는 검사평가제는 물론 법관평가제가 올바로 정착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평가에 참여하는 인원을 늘리는 것이다. 예전에는 ‘변호사 단체는 회원인 변호사들의 무관심으로 먹고 사는 곳’이라는 말이 있었다. 변호사들도 국민과 자신의 권익 침해를 방지하고 검찰과 사법부의 신뢰를 높인다는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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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척결과 범죄자 인권보호는 양립할 수 있어

범죄 척결과 범죄자 인권 보호는 양립하지 않는다는 말도 옳지 않다.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 라는 말을 듣기도 한 이명재 전 검찰총장(현 대통령비서실 민정특별보좌관)은 ‘특수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범법자들에게 원한을 사지 않았다. 오히려 ‘적(敵)이었지만 훌륭한 검사’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범법의 증거와 법리에 대해 끈질기게 설명하고 대화를 나눠 설복시켰다고 한다.

이 전 총장 이외에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특수수사통이 적지 않았지만 ‘강압 수사’ 탓에 이런저런 불신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 전 총장은 총장 퇴임사에서 “범죄에는 추상 같되 비록 중죄인이라 하더라도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연민을 가져달라”는 말을 남겼다. 검찰이 되새겨야 할 조언이다. 검찰 출신 원로 변호사 가운데 검사들의 수사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꽤 있다. 검찰은 수사가 어려워졌다는 말을 하기보다 수사력을 키우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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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범죄특별수사단, 불편부당하게 거악척결에 힘 모아야

최근 검찰총장 직속기구인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출범했지만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2013년 4월 폐지된 중앙수사부(중수부)가 2년9개월 만에 부활한 격이기 때문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신년사에서 “사회 곳곳의 부정부패를 단호하게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기존의 검찰 조직으로는 거악을 척결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5일 열린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부패척결 의지를 분명히 해 특별수사단의 첫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중수부 폐지는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야당은 물론 여당의 박근혜 후보까지 나서서 공약한 결과였다. 정치적 중립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별수사단 역시 정치적 중립을 지켜내지 못할 수 있다. 야권에서는 특별수사단을 최종적으로 지휘할 김 총장에 대해서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로 총장에 오른 사람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검찰은 중수부가 폐지된 경험을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특별수사단이 편파수사를 하게 되면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검찰의 신뢰는 더 추락할 것이다. 특별수사단의 수사력은 온전하게 거악척결에 모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립 의지가 중요하다. 검찰총장 역시 외풍을 막고 불편부당을 견지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검찰은 성역이 아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검사가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요즘엔 아주 흔해졌다. 10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는 영화 ‘내부자들’에서는 검사가 깡패와 힘을 합쳐 거악을 척결하지만 다른 데서는 좋은 이미지로만 나오지는 않는다. 검사들의 잘못이나 치부는 언제든지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검찰의 처신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검찰로서는 올해가 변화의 중요한 전기일지도 모르겠다. 대한변협은 올해부터는 검사평가제를 연중 실시한다고 한다. 검사평가제 실시와 부패범죄특별수사단 출범이 검찰의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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