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지방자치제가 완전히 정착된 어느 날 이런 일이 벌어진다. 제주도 의회가 독립적인 군사정책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전라북도청은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선언하며, 울산시장은 대통령 방문을 거부하며 홍콩으로 휴가를 떠난다. 이런 가상 시나리오는 한낱 우스갯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흔히 일어나는 것이 미국식 지방자치제이며 미국이 지닌 다양성의 독특한 양식이다.

철저한 지방분권에 의한 연방제를 따르는 미국 국기의 50개의 별은 현재 주의 숫자를 상징한다.©픽사베이

자치와 함께 조화를 이루는 미국의 지방자치제

어떤 집단이 자기들의 생활과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다스리는 것이 문자 그대로 자치(自治)이다. 스스로 다스리는 집단, 즉 대·중·소규모의 정부가 생성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어쩌면 미국의 서부극 장면이다. 개척시대에 총을 찬 몇몇 가족이 나무를 잘라 집을 짓고 돈을 거둬 학교를 세우고 보안관, 교사, 판사를 고용해 마을을 지키고 다져간다. 이렇게 지방자치제는 자연발생적인 것이다.

워싱턴DC 근교에 지방 정부의 독립성을 잘 설명해주는 마을이 하나 있다. 인구가 채 2만명이 안될 정도의 작은 독립행정구역인 타코마 파크(Tacoma Park)는 역사가 140년이나 되는 주택가 시(市)이다. 메릴랜드 대학이 근처에 있고 사실상 워싱턴DC와 연결되어 있어 독립행정구역으로서의 구별은 쉽지 않지만 자치, 자율의 엄연한 시정부다. 시장, 경찰, 청소부, 도서관 직원을 포함해서 모두 160여명이 시정부를 운영한다.

@플리커

1986년 타코마 파크 시의회 결의안은 세계적인 뉴스를 만들어 냈다. 타코마 파크 시구역은 핵무기 철폐지역이기 때문에 어떠한 핵차량의 통과도 시법(市法)으로 금지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밤중에 중무장한 헌병대 수백명의 호위를 받으며 연방정부의 군사이동이 감행될 때 M-16 자동소총과 38구경 권총으로 ‘무장’한 타코마 파크의 경찰 일곱명이 ‘무력으로 저지하겠노라’는 우스꽝스러운 결단이었다.

중산층 사무직원들이 태반을 이루는 이 동네에서 선거에 의해 당선된 시의원들이 독립된 외교·군사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 운동은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에 근무하던 밥 앨펀이란 사람이 타코마 파크로 이사오면서 시작돼 전국의 여러 도시로 확산되었다. 펜타곤과 군 수뇌부가 있는 버지니아가 인근에 있고, 연방정부까지 자리한 워싱톤DC 근처에서 이같은 애교 섞인 도전이 벌어진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마을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이 동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이슈를 제기한 것에 만족했다. 군사무기와 관련된 기업체는 무엇이든 시정부에 납품할 수 없다는 규정도 통과시켰다. 이 규정은 훗날 청소차와 경찰 순찰차를 구입할 때 곤경에 빠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가 여러 가지로 군수산업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도는 이렇게 이유 있는 뉴스를 만들어내면서도 충돌보다는 조화를 이룰 때 빛을 내는 것이다.

미국의 뉴잉글랜드 시골에는 100% 완전무결한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지방자치제의 천국이 여러 곳 있다. 이런 작은 동네가 화제가 되어 텔레비전에도 자주 방영되곤 한다. 온 마을의 성인들이 학교 강당에 모여 예산, 관리선출, 교육 방침, 공동회관 건립 같은 모든 공동체의 운명을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예산, 정책이나 지방 정부의 그것이 당연히 충돌할 것으로 보이나 이것은 잘못 운영되는 지방자치제이다. 미국에서도 연방 정부와 법무부, 주정부, 시정부가 서로를 상대로 고소하여 재판정까지 가게 되는 경우가 잦다. 주마다 서로 다른 헌법이 있고 시, 읍, 면, 마을 단위까지 법이 다르기 때문이지만, 신통하게도 큰 바퀴는 잘 굴러간다. 주정부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고 무역 관계를 조정하는 여러 개의 연방정부 산하 상설기관이 있고 지역단위로도 여러 개의 협의체가 있기 때문이다.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창문에 직접 그린 그림을 붙이고 있다. 최근 누리과정 예산 대립은 한국 지방자치의 후진성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포커스뉴스

한국 지방자치의 후진성 보여주는 누리과정 예산 대립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의 논의는 말단 동네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중앙정부의 분권작업이 필요 없었던 미국과는 전혀 사정이 달랐다. 이 때문에 선거구 규모 및 비례대표제 같은 문제들의 논의는 지극히 한국적인 것들이다. 서울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지방의 지방자치 정부나 행정에 관해 상의하는 모습은 중앙집권식 정치구조에 젖어 있는 전통사회로부터 서구식 민주주의로 탈바꿈하려는 (아직도) 과도기적인 한국적 특수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하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정부와 시도교육청이 핑퐁게임을 하는 것은 ‘정치적 모델’로 결정된 대통령 공약에서 파생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여야가 또다시 포퓰리즘이나 진영논리로 대립하며 치킨게임을 벌인다면 교육이든 보육이든, 정치에 볼모로 잡힌 인구정책은 더욱 빠른 속도로 산으로 올라갈 것이 뻔하다. 미래를 바라보기는커녕 역사의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아 지난 20여년 동안 그나마 이룩한 지방자치, 지방분권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영국식이 좋을지, 독일식이 좋을지, 프랑스식이 좋을지, 정치모델을 분석하고 국회와 대통령이 대립하는 것과 대통령과 총리가 대립하는 것 중, 어느 것이 갈등의 조정과 타협의 모델이 될지를 골똘히 생각해 본다. 그러나 집권 내내 대화와 소통에 큰 문제가 있다는 대통령이 ‘국회가 도통 말을 들어주질 않는다’며 무작정 거리로 나가 민간이 주도하는 입법촉구 서명운동에 사인을 하고, 입법하는 헌법기관 국회의원들과 각료들이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 받기 위해’ 거리에 나서는 걸 보고 있자니 우리의 정치는 ‘확실히 뒤로 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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