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시리아의 알레포 시민들은 지금도 러시아 공군의 공습 지원을 받은 시리아 정부군의 공세로 고립돼 있다. 식량과 의약품 등의 부족에 시달리던 알레포 시민들은 정부군의 공격을 피해 탈출, 터키 국경으로 밀려들고 있다. 시리아 내전이 끝나지 않는 한 지난해 유럽을 강타했던 난민 위기는 올해도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내전으로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시리아에서는 급진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IS 추종자들이 벌이는 테러는 국제사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다.

시리아 등지에서 탈출한 난민들이 유럽으로 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철조망을 넘고 있다. ⓒ게티이미지·멀티비츠/ 포커스뉴스

세계안보회의 합의, 시리아 내전종식 기대 모았지만 美·러 대립으로 무산될 듯

지난 11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안보회의에서 국제시리아지원그룹(ISSG)은 1주일 이내에 시리아 전역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모든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고립된 지역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며 장기적 휴전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5년 간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중대한 진전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러한 합의 발표는 불과 이틀이 못돼 다시 비관으로 바뀌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3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시리아의 내전 당사자들이 실제로 1주일 이내에 모든 적대 행위를 중단할 가능성은 50%도 못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적대 행위 중단을 위해서는 미국과 러시아 간 협력이 필수적인데 러시아는 여전히 미국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양국 간 군사적 협력 없이는 아무 것도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함께 회의에 참석했던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은 “라브로프 장관의 말은 적대 행위 중단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라고 말했다.

시리아 내전이 5년이나 계속되며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의 거취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가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사드의 축출을 희망하는 반군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아사드 대통령이 계속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리아 정부군을 돕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 내전 발발 초기부터 “아사드가 물러나야만 시리아에 평화가 회복될 것”이라는 방침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 정책은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킬 평화회담의 가능성을 애초부터 배제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시리아 정책은 실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IS 분쇄라는 공통된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할 처지이다. 난민 유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이 난민 발생의 원천 차단을 위해 시리아 내전 종식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과 러시아는 모두 국제사회의 최대 불안 요인인 IS 테러 차단을 위해 이라크와 시리아를 거점으로 세력을 확대하는 IS 분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11일 세계안보회의에서 “시리아에서 적대 행위를 중지하는 것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르게이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는 여전히 미국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포커스뉴스

아사드 정권에 대한 상반된 입장 고집, 애꿎은 시리아 국민들만 희생

IS 분쇄라는 공통 목표에 비하면 아사드 대통령의 거취는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는 자신들만의 입장을 고수하며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시리아 국민들의 희생만 늘어나고 있다. 지난 5년 간의 내전에서 25만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1300만명이 넘는 시리아 국민들이 조국을 떠나 난민 신세가 됐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시리아 내전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되고 얼마나 많은 사망자를 추가로 발생시킬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난민은 또 얼마나 더 나올 것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는 시리아 내 IS 격퇴를 위해 지상군을 파병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내전 종식은 커녕 확산 방지도 어려운 지경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이와 관련, 지난 11일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시리아 내전에 어느 한 나라라도 지상군을 파견할 경우 모든 관련 당사국들 역시 지상군 파견에 나설 것이라며 시리아 내전에 외국 지상군이 투입될 경우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전 종식은 커녕 내전 확산 방지조차 확실치 않은 것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2일 “사드가 중국을 겨냥할 수 있다”며 “미국은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반대로 진전 없는 북한 제재도 국제사회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게티이미지·멀티비츠/ 포커스뉴스

중국의 반대로 진전 없는 북한 제재도 국제사회의 한계 드러낸 것

미국과 러시아의 태도는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냉전 시대의 사고방식이 부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입장이라도 공통된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하는데 미국과 러시아 모두 사소한 이익에 매달려 큰 이익을 놓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총리는 13일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 합병 이후 러시아에 부과된 제재 조치와 나토의 최근 새로운 조치들은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뿐이라며 서방 국가들이 냉전을 부활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러시아에 대한 나토의 정책이 비우호적이고 불투명해 서방과 러시아가 새로운 냉전에 돌입했다며 우리가 지금 2016년에 살고 있는 것인지 1962년에 살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미국과 러시아 간 대립은 말뿐인 평화를 내세우는 국제사회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핵실험을 강행하고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국제사회에 불안을 야기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에 대한 제재안이 중국의 반대로 진전을 보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한계를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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