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모든 일에는 징후가 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나려면 수백 번의 작은 사고가 앞서고, 심한 병을 앓기 전에 신체에 작은 이상들이 나타나듯이.

때론 영화의 상상이, 아니면 과거 사건에 대한 재조명이 현실의 징후를 일려주기도 한다. 하필이면 왜 지금 이 이야기를 영화가 하는 걸까. 그 상상과 재조명이 지금 아니면, 곧 다가올 미래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일종의 ‘예감’ 같은 것이기 때문일까.

©픽사베이

미국 경제붕괴 부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다뤄···우리 현실은?

지난달 국내에서도 개봉한 아담 맥케이 감독의 영화 ‘빅 쇼트’는 섬뜩하고 끔찍하다. 2008년 미국의 경제붕괴를 가져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루고 있는 영화의 결말이 끔찍하다. 미국 대형 은행들의 몰락, 5조 달러 증발, 800만 명의 실업자, 600만 가구의 주택 상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만든 미국 월가의 대형은행들과 신용평가사들, 정부의 부도덕과 불감증이 어쩌면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섬뜩하다.

‘빅 쇼트’는 금융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어렵다. ‘가치가 하락하는 쪽에 투자하는 거대한 매도’란 주식용어인 제목부터 그렇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중간 중간에 자막으로 용어를 풀어주고, 비유를 통해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요리사, 카지노딜러 등을 등장시키고, 연극처럼 배우가 직접 관객을 향해 설명도 하지만, 금융전문가가 아니면 한번 보고 모든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유명배우 출연만 보고, 도박 같은 분위기만 보고 재미있겠다며 무턱대고 선택할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 시대에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영화이다. 자칫 우리의 ‘징후’를 무시하고 지나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려운 용어에 신경 쓰기보다는,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로 시작하는 메시지에 주목하면 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도로 미국의 주택시장이 붕괴할 때 ‘빅 쇼트’로 대박을 터뜨린 캐피털 대표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 펀드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커렐), 도이치방크의 트레이더 제러드 배넷(라이언 고슬링), 전 트레이더 벤 리케르트(브래드 피트)와 그의 도움으로 떼돈을 버는 신참내기 자산관리사 찰리와 제이미이다.

물에 비쳐 흔들리는 주택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 영화처럼 대출로 집을 샀던 서민들은 하루아침에 쪽박을 찰지도 모른다. ©픽사베이

모두가 진실 외면하는 가운데 금융사기 꿰뚫은 ‘빅쇼트’의 대박 실화

그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을 예상하고, 역발상으로 은행과 CDO(주택담보부증권)에 대한 CDS(신용부도스와프)를 맺는다. 모두 어리석은 투자라고 비웃었다. 리먼 브라더스는 횡재 잡았다고 생각했다. 모두 주택시장은 안정적이고, 주택대출을 안 갚는 사람은 없다고 믿고 있었으며, 주택가격은 계속 상승했다. 신용평가사들은 CDO에 계속 최고등급(AAA)을 매기고, 튼튼한 월가의 채권부도지불능력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엄청난 자료 분석과 현장 확인을 통해 월가와 은행 신용평가사들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았으며, 주택구입을 부추기면서 국민을 속이고 있는 사회제도의 모순을 간파했다. 집주인이 개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집은 100채나 되는데 텅 비어 사는 사람은 겨우 네 명뿐이고, 무직장 무소득 대출이 판을 치고, 스트리퍼가 치료사로 신분을 속이고 담보대출로 집을 5채나 샀다.

그들은 알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대출이, 그것의 연체율이 600만 가구에 육박하는데도 등급가게로 전락한 신용평가사들이 경쟁사에 고객(은행)을 뺏기지 않으려 AAA등급을 고집해 오히려 CDO 채권가격이 상승하는 기현상을 만들고, 이미 서브프라임 손실이 5%를 넘어섰는데도 증권화포럼에서 은행들은 모기지사업 번창을 떠들고, 친구인 기자는 월가와 유착한 언론에 물들어 “예감에 인생을 걸 수 없다”며 진실보도를 외면한다는 사실을. 마크 바움이 “이건 사기야”라고 외치지만,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영화 ‘빅 쇼트’가 꼬집은 대로 사람들은 나쁜 일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리거나 그것을 축소한다. 진실은 시와 같은데 대부분 사람들은 시를 혐오한다. 불법과 사기로 징후가 명백히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불감증과 외면으로 재앙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들은 달랐다. 주택시장이 경제재앙으로 이어질 것을 확신한 마이클은 회사의 유동자금 13억달러 전부를 모기지채권 공매도에 투자한다. 엄청난 프리미엄 이자(연 8000~9000만 달러)를 내면서 회사가치가 갈수록 하락해 투자자들로부터 “제 정신 아니다”라는 비난을 듣지만 “미친 게 아니라, 합리적 결정”이라고 반박한다. 제러드 역시 사리사욕에 눈멀고 신용카드 이자놀음에 빠져 주택시장이 경제재앙이 될 것을 보지 않는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해 4분기 가계부채는 1207조원을 기록하며 사상최대치를 경신했다. ©포커스뉴스

재앙의 댓가로 서민들 집, 직장, 연금까지 잃어···우리 주택시장 징후 없나

이들은 ‘금융제도의 사기로 미국경제가 무너진다’에 올인했다. 맞으면 벤의 말처럼 사람들은 집, 직장, 은퇴자금, 연금까지 모두 잃게 된다. 실업률 1% 증가하면 4만 명이 죽는다. 2008년 그것은 미국의 현실이 됐다. CDO는 정부의 무관심과 국민의 어리석음과 은행의 사기로 핵폭탄이 되어 월가를 초토화시켰으며, 미국 금융시장 무너뜨렸고, 거리에는 은행에서 쫓겨난 실업자들로 넘치게 만들었다.

영화는 이렇게 빅 쇼트로 떼돈을 번, 그러면서 양심의 가책 한마디를 던진 주인공들을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보다 영화는 우리가 좀 더 똑똑해지길 원한다. 가치평가를 할 때 사실이나 결과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권위 있어 보이고 친숙한 사람을 선택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왜? 재앙의 댓가는 종국에는 아무런 힘없는 국민, 즉 우리 자신이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정부는 허둥지둥 국민 혈세로 쓰러져가는 은행을 되살렸고, 여전히 모럴 해저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간부들은 그 돈으로 배불리 먹고, 감방은 대표로 단 한 명만 갔다. 정부와 은행말만 믿고 집을 샀던 서민들은 하루아침에 거지가 됐다. 그런데도 정부와 은행은 신용평가사들과 한통속이 되어 이번에는 CDO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한 ‘맞춤형 트렌치’가 기회라고 떠들어댄다.

영화 빅 쇼트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끝나면 사람들은 현실로 돌아온다. ‘빅 쇼트’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주변에 새로 지은 아파트들이 넘쳐난다. 그 안에는 모두 주택담보대출이 있다.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노후생활을 위해 마지막 보루인 한 채 뿐인 아파트를 팔아야 할 날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경제와 일자리가 제자리걸음이고, 청년들은 역사상 처음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이니 그것을 살 사람도 없다. 게다가 가계부채가 1200조원에 육박하고 있고, 금리도 언제까지 안정적이란 보장이 없으니 우리의 주택시장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작은 징후도 무시하지 마라. 그리고 누구도 믿지 말고, 자신에게 닥칠 일은 자신이 미리미리 대비하라.[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14세 소년, 극장에 가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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