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사람이 철이 들면 어른 앞에서는 다투지 않는다. 군인도 상관 앞에서는 싸우지 않는다. 싸움을 하다가는 양쪽 다 야단을 맞거나 얼차려를 받기 일쑤다. 무례한 짓이기 때문이다. 싸움을 하더라도 안 보이는 곳에 가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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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거리 공천은 지역감정에 편승하려는 것··· 유권자들에게도 큰 책임

철들 나이가 지났는데도 어른 앞에서 심한 패싸움을 한 곳이 있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다. '배신'을 응징하는 복수의 칼날이 번득였고 ‘옥새 쿠데타’도 있었다. 4년에 한 번씩 어른으로 모실 뿐이긴 하지만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공천(公薦) 아닌 패거리 사천(私薦)과 반격전이 벌어졌다. 여야 할 것 없이 역대 최악의 공천이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한데 패싸움 수준의 정치가 정치인들만의 탓일까. 그렇지 않다. 유권자들에게 오히려 큰 책임이 있을 수 있다. 사실상 패거리 정치를 용인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영·호남에서는 여당과 제1야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과 마찬가지였다. 정책, 공약, 인물 등을 따져 보지도 않고 여야의 공천을 받은 후보자에게 각각 표를 던졌다. ‘텃밭’이니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한다는 말들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예전에는 총선 후보가 지역감정에 편승하는 것도 모자라, 유세장에 나온 주민들에게 “우리가 남이가?”라고 연이어 외치게 해 몰표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제 4·13 총선 후보는 확정됐고 유권자의 선택만 남았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패거리 싸움을 방치하거나 용인할 것인가. 어른 앞에서 무례한 것에서 더 나아가 어른을 무시하는 행태를 바로 잡으려면 어른이 깨어나는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소개한 정의를 고민하는 올바른 방법은 투표를 앞둔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 롤스는 우리가 삶을 지배할 원칙, 즉 사회계약을 작성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 있다. 즉, 일시적으로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 뒤에서 자신이 현재 어떤 사회적 위치에 속해 있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자신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공부를 많이 했는지 적게 했는지, 어떤 인종이고 민족인지, 어떤 정치적 견해나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지 등을 알지 못한다. 롤스는 그런 상황에서 삶의 원칙을 선택하고 합의하면 그 원칙은 공정하다고 얘기한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를 14일 앞둔 30일 서울역에 마련된 사전투표 모의체험장에서 시민들이 모의투표를 하고 있다.©포커스뉴스

퇴행적인 지역·세대 감정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민심 보여 줄 수 있어

롤스의 정의를 고민하는 방법론을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가장 큰 폐해나 갈등의 근원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첫 번째는 지역감정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요즘에는 영호남뿐 아니라 충청도의 결집세도 만만치 않다. 두 번째는 세대간 의식 차이가 아닐까.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이후, 해가 갈수록 20·30대와 50·60대 이상 세대의 투표성향이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 번째는 빈부 격차의 확대를 꼽을 수 있겠다.

롤스는 원초적으로 완벽하게 평등한 위치를 가정했지만, 이 세 가지에서만 평등하다고 가정해도 정치권에 큰 변화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내가 영남 사람인지 호남 사람인지 모르고, 나이가 20대인지 60대인지도 모르고, 부자인지도 가난뱅이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총선 후보와 그들이 내세운 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적임자를 찾아 투표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즉 유권자가 자신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 모르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투표하기만 해도 여야가 국민 앞에서 벌이는 무례한 공천 싸움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또 어느 세대에 속하는지, 부자인지 가난한지를 배제하면 20대들의 취업난과 ‘금수저·흙수저론’을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표를 던질 당과 후보를 찾을 수 있다.

공천이 곧 당선이면 공천 경쟁에만 몰두할 뿐 국민을 위한 정책 경쟁과 개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선거 보름 전까지만 해도 각 당은 공천 싸움만 계속했다. 선거를 불과 열흘 남짓 앞두고서야 새누리당은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이용해 국정의 발목을 잡았다며 ‘야당 심판론’을,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의 경제정책 실패를 비판하며 ‘경제 심판론’을, 국민의당은 ‘양당 심판론’을 내세웠을 뿐이다.

무지의 장막 뒤에서 투표하자는 제안을 부질없는 짓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공천 과정을 지켜본 유권자 중 일부는 퇴행적 의식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야 민심의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 민심다운 민심이 된다. 최선이 안 보이면 차선에, 차선도 없으면 최악이 아닌 차악에 투표해야 한다.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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