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참패가 공천파동 때문이었음은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 되었다. 과반 의석의 거대 여당을 제2당으로 추락케 한 공천파동은 축구로 말하면 무수한 헛발질 끝의 자살골이라고 할만 했다.

자살골은 정부 여당의 합작품이었다. 후보등록 1시간 전까지, 무소속 등록 후엔 대통령 존영 회수 소동까지 이어진 공천 막장극이 유권자들에게 준 분노는 너무 컸다. 그래서 헛발질에 대한 개탄은 자살골에 묻혀버린 느낌이지만, 민감한 유권자들은 헛발질할 때마다 새누리당에 등을 돌렸을 것이다.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윤상현 의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박근혜 대통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유승민 의원. ©포커스뉴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선거를 1주일 앞두고 밝혀진 공시생에 의한 서울 세종로 정부1청사 보안 유린 사건이다. 공시생은 훔친 공무원신분증을 이용, 청사 출입문을 통과한 뒤 행자부 산하 인사혁신처 사무실에 수차례 침입해 컴퓨터 비밀번호까지 알아내 인사자료를 조작했다. 정부의 기강 해이가 이 정도까지냐는 의구심을 누구나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북한 TV는 한미합동 키 리졸브 훈련의 참수작전에 대한 대응으로 청와대와 정부청사를 폭파하는 동영상을 연일 방영하고 있었다. 1968년의 1·21사태 때 북한의 특공대는 청와대 서쪽 담벼락 밑에까지 왔었다. 생포된 특공대원 김신조는 개구일성으로 “박정희 목을 따러 왔수다”라고 했다. 그런 결기와 치밀함으로 테러를 감행한다면 정부청사에 대한 테러가 실재상황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헛발질은 정부 측이 중국 등에서 일하던 북한 식당의 여종업원 13명과 북한군 정찰총국 대좌의 망명입국 사실을 각각 투표 닷새 전과 이틀 전에 공개 및 확인해 북풍의심을 산 일이다. 여종업원의 망명은 숫자도 많은 데다 북한 측의 비난공세가 예상돼 공개가 불가피했겠지만, 대좌의 망명은 2014년도의 일을 뒤늦게 확인해 그 저의에 대한 의심을 자초했다.

선거에서 북풍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1987년 12월 15일 13대 대선 투표 하루 전날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으로 바레인에서 체포된 김현희를 국내로 송환해 온 사건이 꼽힌다. 1노3김이 겨루었던 그 해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근소한 표차로 승리하는데 이 사건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었다.

그 영향 때문이었던지 그 후 여러 선거에서 북풍 논란이 일었으나 선거결과에 별 영향은 없었고, 15,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겐 역풍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5대 대선 때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이 북측에게 휴전선에서 남한을 향해 총을 몇 방 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른바 총풍 사건도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제는 선거철에 흘러나오는 북한 관련 사건에 대해 유권자들은 ‘또 북풍이냐?’는 반응을 보이게 됐다. 탈북자가 3만 명에 이르는 지금, 웬만한 북한인의 망명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그것을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면 시대착오다.

‘122석의 제2당’ 굴욕은 4년 동안 새누리당이 와신상담하며 되씹어야 할 쓴 약이다. ©포커스뉴스

셋째는 대통령 존영 회수 소동이다. 공천 자살골의 진원지인 대구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의 선거사무소에 걸린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새누리당 측에서 못 쓰게 한 사건이다.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그런 비열한 짓을 능사로 하겠구나 하는 인식을 심기에 충분했다.

‘사진’ 회수라고 하면 될 것을 존귀한 사진이라는 뜻의 ‘존영(尊影)’ 회수로 표현한 것에 대해 한심해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충성 과잉의 용어 탓이었던지 어느 언론은 이 사건에 대해 ‘영정’ 회수라고 어처구니없는 오보를 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헛발질과 자살골은 근본적으로는 무능한 감독과 헝클어진 팀 분위기에서 비롯됐다. 추락하는 한국 경제와 늘어나는 실업자, 대책 없는 안보불안, 국회선진화법만 탓하는 여당, 국회 탓만 하는 대통령 등, 이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막장 드라마가 공천 파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새누리당은 불원간 잘못된 공천으로 인한 무소속 당선자들을 받아들여 원내 제1당의 위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국회직, 국고보조금이나 챙기려 든다면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122석의 제2당’, 앞으로 4년 동안 새누리당이 와신상담하며 되씹어야 할 쓴 약이다.[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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