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딸이 자기 옷들을 세탁소에 맡긴 후 찾아 달라기에 갖다 주면서 ‘드라이크리닝 값’을 요구했다가 “심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옷 한 벌당 세탁비가 수 천원에서 수 만원까지 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실상을 알려주며, 일종의 경제 교육을 하려는 어미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직장 초년생으로서 세탁비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아야 옷을 살 때 물빨래가 가능한 소재인지도 챙겨보고 돈 쓰는 씀씀이가 규모 있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는데 말이다.

그런 바람과 달리 딸과 남편은 물론 주변 지인들도 “뭐 그렇게까지”라며 나를 나무랐다. 공무원 남편 사이에 장성한 아이 셋을 둔 친구만이 내 의견에 동조했을 뿐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우리의 앞세대 같지는 않더라도 자식이 건실하고 알뜰하기 바라는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씁쓸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과잉보호는 난감할 때가 많다. ©픽사베이

부모가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부모들은 자신이 덜 먹고 덜 입어도 자식만은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키고 싶고, 가능하면 자식들이 의식주를 잘 갖추고 살기를 바란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무한 사랑, 배려와 지원하는 행태는 자녀가 한둘로 단출해지고 부모들이 여유가 생기면서 심화되고 때로 이기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헬리콥터 부모’라는 용어가 있다. 성인이 된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참견하는 부모를 일컫는 말이다. 부모의 과잉보호가 얼마나 심하면 신속하게 움직이며 자식 머리 위를 맴도는 헬리콥터를 떠올릴까. 이전에 극성스런 학부모를 상징하던 ‘치맛바람’은 학교, 학원가에 불었을 뿐이지만, 공간 이동이 수월한 요즘 헬리콥터 부모의 넘쳐나는 관심은 20대를 넘어선 성인 자녀의 군대 생활, 직장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식이 군에 입대한 뒤 부모들이 전화, 단체 카톡방으로 군에 연락해 아들의 사진을 올려 달라거나 식사 메뉴를 묻기도 한다. 심하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보직 변경을 요청해 군 관계자를 난감하게 만든단다.

©픽사베이

직장에도 헬리콥터 부모들의 빛과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파견 나간 근무지의 화장실이 지저분해 이용이 힘들다는 딸을 위해 엄마가 그곳을 직접 청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가 고위층에 연락해 제 자식 챙기느라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금수저 사례에 견주면,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한 그 모성에 대해 뭐라 지적하기도 힘들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하겠다”고 거드는 지인도 있다. 그래도 부모가 언제까지 자식의 ‘진 자리 마른 자리를 갈아 뉘일 수’ 있겠는가. 나로선 생각하지도 못한 자식 사랑의 일화들이 놀랍기만 하다.

오래 전 읽은 성공한 인물의 일대기에서 마음에 남는 내용이 있다. 그분의 부모가 주변에 늘 많이 베풀며 이웃까지 넓게 돌봤다는 대목이다. ‘돈을 모아 자손에게 남겨 줄지라도 자손이 능히 지킨다고 할 수 없으며, 책을 모아 자손에게 남겨 줄지라도 반드시 자손이 능히 다 읽지 못할 것이니,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음덕을 쌓아 자손계(子孫計 자손을 위해 세운 계획)로 삼은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이 5월에, 선조들의 자녀교육관을 담은 ‘명심보감’ 계선편(繼善篇)을 떠올려 본다.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퇴직 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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