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갓 개업한 판‧검사 출신 전관들이 변호를 맡은 사건을 현직들이 잘 봐준다는 뜻의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표현은 사라져야 할 듯싶다. 예우의 사전적 의미는 ‘예의를 지키어 정중하게 대우함’이다. 전관예우는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선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제 멋대로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대다수 국민은 전관예우라는 표현이 나오면 법률에 저촉되는 짓을 하면서까지 봐주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관예우가 아니라 전관의 로비 효과나 로비 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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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전관예우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현직들이 머지않은 장래에 전관이 돼 같은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후 뇌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정운호(51)씨의 도박 사건을 둘러싼 법조 비리 의혹이 불거진 이후 그런 시각은 순진한 것이 되고 말았다. 정씨와 유사 수신업체 이숨투자자문 소유주 송모씨(40)에게서 보석(保釋)이나 집행유예 석방을 조건으로 각각 50억원씩 1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46) 변호사 사례를 살펴보면, 전관을 봐주는 것은 ‘사후 뇌물’이 아니라 사전 불법 로비 때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우선 그런 거액이 오갔다는 것은 보석 결정이나 집행유예 판결이 법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욱이 최 변호사는 자신은 의뢰인의 상황에 맞춰 전문 변호인단을 꾸려주고 수임료를 챙기는 ‘섭외 변호사’라고 밝혔다고 한다. 스스로 브로커 역할을 하며 다른 변호사들에게 수임료를 나눠주고 수사팀과 재판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주선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검찰은 최 변호사와 최 변호사에게 돈을 건네받은 변호사들이 전화 청탁 등 로비에 가담했는지는 물론 해당 사건 재판부가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았는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변호사법 110조는 변호사가 판사·검사에게 제공하거나 교제한다는 명목으로 의뢰인에게 금품이나 이익을 받거나 받기로 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도박 사건으로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를 받은 정운호씨를 변호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는 201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험료 상위 납부자 공개 때 연소득이 91억원인 것으로 드러나 법조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인사다. 모 일간지에 따르면 바로 그 전인 2011년 9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16개월 동안에도 매출 신고액이 110억원이었다고 한다. 검찰 수사팀은 현재 홍 변호사의 탈세 혐의, 즉 수임료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쪽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탈세뿐 아니라 최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변호사법 110조 위반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 다른 전관도 많은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액을 순수하게 전관예우만으로 벌어들였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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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후배들에게 자신이 맡은 사건에 대해 법률적 의견을 개진하고, 피의자와 피고인에 대해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선처를 부탁한 것으로 그런 매출을 올릴 수 있었을까. 변호사로 선임되는 과정에서 담당 경찰관이나 검사, 재판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거나, 교제 명목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은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을까.

세간에서는 300억원대 해외 상습 도박 혐의로 내사를 받던 정운호씨가 2014년 11월과 2015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데 대해 경찰과 검찰 관계자의 뇌물 수수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사 재개 끝에 정씨가 도박 혐의로 기소된 뒤에도 항소심에서 검찰이 구형량을 줄여준 것은 홍 변호사의 영향력 때문일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대법원과 법무부는 전관예우는 사실상 없어졌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하지만 정운호씨 사건은 전관예우를 넘어 전관들의 불법 로비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었다. 검찰은 일벌백계 차원에서 이번 사건의 전관로비를 파헤쳐야 한다.

지난해 9~10월 법무부 산하 형사정책연구원이 20세 이상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법원과 검찰의 신뢰는 경찰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경찰의 수사권 독립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다. 국민적 의혹을 풀지 못하면 대한변협의 주장대로 특검이 나설 수도 있다.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견제와 감시를 당하는 것은 물론 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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