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섬’은 고립과 단절, 배타와 폐쇄의 상징이다. 고립은 공간적이고, 단절은 심리적인 느낌을 갖는다. 배타는 자기집착과 피해의식에서 나오고, 폐쇄는 어둡고 독선적인 공동체 의식을 낳는다.

소설과 영화는 그런 섬에서의 폭력과 광기를 이야기한다. 물론 그 폭력과 광기의 대상이 ‘성’인 경우가 많다. 이문열의 1980년대 단편 ‘익명의 섬’은 섬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내의 성적 이탈을 알면서도 마을 사람 모두가 공범인 양 그 가해자를 ‘익명’으로 묻어버림으로써 섬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공동체 의식과도 같은 그 질서의 대상에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섬 바깥 세상의 사람이라고, 그가 비록 자신들의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할지라도 예외 없다. 거부하면 강제로라도 편입시키거나, 추방한다. 마을 여자들처럼 ‘익명’의 남자 깨철이에게 강제로 몸을 빼앗긴 소설의 여주인공처럼.

©포커스뉴스

아직도 남아있는 섬의 폐쇄성과 익명성

전남 신안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을 듣고 문뜩 소설 ‘익명의 섬’을 떠올렸다. 임권택 감독이 안성기와 당대 미녀 배우인 정윤희를 주연으로 ‘안개 마을’이란 영화로도 만들었던 작품이다.

외지에서 부임한 여교사를 주민 3명이 성폭행한 것에서 섬마을 전체가 공모한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바탕에 섬의 폐쇄성과 익명성이 깔려있었던 것은 아닐까.

교통과 인터넷의 발달로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섬이 더 이상 섬이 아닌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섬 사람들에 그곳은 ‘자신들만의 세계이고 공간’이란 인식은 남아있다. 그것은 오랜 역사와 관습, 정서와 문화이기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는 일종의 생존 본능으로, 때론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폭력과 광기, 비인간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섬마을로 팔려온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과 방관, 암묵도 그런 것이다.

아직도 곳곳에 섬마을의 배타성과 비뚤어진 생리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를 결코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어디 섬만 그런가. 섬이 아니면서 섬처럼 되어버린, 익명의 장막을 둘러친 곳 또한 얼마나 많은가. 학교, 군대, 회사, 심지어 종교시설에까지. 그곳에 폭력이 있고, 인권 유린이 있고, 성적 학대가 있으며, 노동착취가 있다.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치고 그것을 감싸주는 것은 온정주의도, 의리도, 공동체 문화도 아니다. 반도덕적, 반인륜적 범죄일 뿐이다.

이문열 소설 ‘익명의 섬’을 영화화한 ‘안개마을’ 포스터와 스틸컷.©네이버 영화

사회 곳곳의 섬과 같은 장막을 걷어내야

그것을 막는 방법은 그 울타리를 과감하게 걷어내 누구도 자유롭게 드나들고, 그 안을 훤히 들여다보고,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교육부가 허겁지겁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아무리 미봉책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여교사를 가급적 섬에 보내지 않고, 관사를 좀 더 번화가에 짓고, CCTV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섬사람들의 문화와 인습을 바꾸려 하기 보다는 그것들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섬의 울타리를 허물기보다는 그 안에 사람을 들여보내지 않고, 그들을 멀리서 감시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섬’의 배타성과 은밀한 공모 의식만 키워줄 것이다. 여교사의 비중을 감안하면 현실성도 없다. 섬이 불이익과 단절의 상징으로 계속 인식되는 한, 섬은 절대로 육지와 맞닿을 수 없다. 섬 사람들도 흉내만 낼 뿐, 자신들의 울타리를 절대 스스로 걷어내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소설 ‘익명의 섬’을 떠올리는 것으로 끝났지만, 다음에는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14세 소년, 극장에 가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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