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김영란법에 얽힌 중요한 수수께끼 하나가 풀렸다. 당초 국민권익위원회가 입안할 당시의 명칭이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이던 이 법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바뀌어 지난 해 3월 국회를 통과했다.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도 공직자가 주 대상이었으므로 이 법은 온전히 공직자를 상대로 한 뇌물 수수 금지와 인사 청탁과 같은 이해충돌 방지를 막기 위해 입안 된 법이었다.

가족채용 논란에 휩싸인 서영교 의원이 30일 당무감사원 회의에서 논란을 소명하기 위해 더민주 당사로 들어가고 있다. ©포커스뉴스

서영교 등 여야 의원들의 친인척 채용은 김영란법에서 빠진 이해충돌방지 대상

‘공직자의 이해충돌’이 빠진 자리에 엉뚱하게도 민간인인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처벌 대상에 포함시켰다. 민간 중에서도 극히 일부분을 공직자와 동일하게 규율함으로써 법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공직부패 처벌에 물타기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더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자신의 보좌관 비서관으로 친인척들을 대거 채용한 비리는 전형적인 이해충돌 대상에 해당된다. 서 의원의 경우 너무 지나쳤다 뿐이지 그런 친인척 채용 사례는 역대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의원들이 저질러 온 일이다.

서 의원 사건 이후 사표를 내는 의원 보좌관 비서관들이 줄을 잇고, 각 당은 뒤늦게 전체 의원의 전 보좌관 비서관들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선다고 하며, 의원들은 저마다 이해충돌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호들갑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역대 국회에서 친인척 채용을 금지하자는 내용의 법안들이 여러 건 발의 됐지만 심의를 하지 않고 미루다가 임기가 끝나 폐기됐다는 사실이 새삼 드러났다. 국회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이러고도 김영란법을 고치지 않을 것인가?

따지고 보면 국회의원의 이런 파렴치는 보좌진을 9명씩이나 두게 했을 때 이미 예고된 것이다. 국회는 2012년 2200억원을 들인 새 의원회관을 준공했는데, 면적을 종전의 25평에서 45평으로 늘렸다. 의원회관을 서민의 꿈인 25평의 국민주택보다 배 가까이 넓힌 주요 구실이 바로 보좌진 9명의 사무 공간 확보였다.

그러나 3000명에 가까운 보좌진들 중에 정작 의원의 입법 활동에 도움이 되는 인력이 얼마나 될까? 서 의원처럼 딸을 채용해 스펙을 쌓는 기회로 활용케 하고, 선거 때 신세진 사람들에게 신세 갚기로 채용하고, 태권도 유단자를 우대하고, 활용도가 없으니 그들이 받는 월급의 일부를 헌금하게 하는 일들이 모두 보좌관 비서관 수가 너무 많아 벌어지는 게 아닌가?

4·13 총선을 전후 해 스웨덴과 덴마크 의회를 취재한 KBS의 구수환 PD는 “스웨덴의 경우 1명의 보좌관이 의원 4명의 입법활동을 보좌하더라”면서 “우리도 입법조사처의 기능을 강화하면 보좌관 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했다.

29일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전국화훼협회 등 27개 단체 회원들이 김영란법 반대를 외치며 꽃상여를 메고 행진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원래의 김영란 법 되살리고 언론인과 교사 부패는 다른 법으로 처벌해야

구 PD는 “이들 나라에선 의원의 손수 운전은 기본이고 개인 비서도 없다”면서 “정치인들이 특권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에 정치가 불신 받는 게 아니겠냐”고 했다. 서 의원 사건 이후 여야는 불체포특권 포기와, 친인척 채용 금지 범위를 4촌 이내에서 8촌 이내로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보다 손쉽고 실효성 있는 처방은 보좌진을 소수 정예화 하는 것이다.

의원들마다 이해충돌 방지법을 새로 만든다고 수선을 피울 것도 아니라 원래의 김영란법으로 돌아가면 된다. 지금의 김영란법 논의는 식사 대접 3만원, 선물금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초과를 처벌 대상으로 한다는 지엽적인 논의에 매몰돼 있다.

대가성 없이 처벌할 수 있는 뇌물을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 이상으로 한 것이 적정한지도 더 논의해야 한다. 100만원, 300만원 이하의 뇌물이면 죄가 안 된다는 부패불감증을 유발할 우려도 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 등 민간인을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 공직자 부패 하나나마 제대로 규율토록 하는 것이다.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사의 부패는 김영란법보다 형량이 무거운 다른 법으로 다스리면 된다.[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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