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요의 미디어속으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통화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21일과 30일 통화 내용이다. 소위 ‘김시곤 비망록’도 유출됐다. 2013년 1월 11일부터 11월 17일까지 청와대와 길환영 전 KBS 사장이 KBS 뉴스에 개입하고 지시한 정황이 나타나 있다.

녹취록을 꼼꼼히 들어보면 수석과 국장은 친밀한 사이인 듯하다. 국장은 수석을 ‘선배’라 부르고, 수석은 통화 끝 부분에서 국장에게 “그래 한번만 도와줘 진짜 요거. 하필이면 또 세상에 KBS를 오늘 봤네. 아이~ 한번만 도와주시오. 자~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 진짜로”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이런 부분도 있다. 국장이 “아니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하니까 수석은 “아이 지금 이렇게 중요할 땐 극적으로 좀 도와주십시오 극적으로, 이렇게 지금 일적으로 어려울 때 말이요”라고 답한다. 이런 통화 내용을 보면 그 전에도 많이 통화하고 도와주기도 하고 한 모양이다.

5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KBS 보도통제 녹취록’ 논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녹취록’과 ‘비망록’에 담긴 정황

‘비망록’에는 길 전 사장이 KBS 보도에 개입한 흔적으로 가득하다. 김 전 국장을 비롯한 KBS 보도 간부들에게 ‘기계적 중립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경향성을 드러내서 여론을 주도해야 한다’고 한 발언, 대통령 관련 리포트 순서를 앞쪽으로 배치하라는 요구,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 비판을 자제하라고 했다는 지시 등등 많은 내용을 폭로하고 있다. 하나같이 정부·여당에 유리하도록 보도 내용에 개입하고 지시한 것들이다.

이런 내용을 폭로한 탓으로 김 전 국장은 2014년 11월 정직 4월의 중징계를 받는다. 이에 반발해 김 전 국장은 징계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서울남부지원은 지난 4월 1심 판결에서 징계무효는 인정할 수 없지만, 보도 개입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증거자료로 제출한 ‘비망록’과 녹취록을 근거로 법원은 보도개입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자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노조 KBS본부는 길 전 사장과 이 전 홍보수석을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규정한 방송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당시 김 전 국장 해임이 청와대 지시를 받은 길 전 사장의 조치라는 주장도 현재 진위를 놓고 공방 중이다.

‘보도통제’ 논란에 휩싸인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눈을 감고 있다. ©포커스뉴스

BBC 신뢰도는 대법원보다 높다

2003년 영국이 미국과 함께 이라크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했을 때, BBC는 후세인의 위협을 과장하기 위해 블레어 총리실이 2002년 9월에 이라크에 관한 정보를 각색했다고 보도했다. 50쪽에 이르는 정부 서류에 ‘후세인이 명령만 하면 이라크는 45분 이내에 생화학무기를 배치할 수 있다’는 문장을 총리실의 정치적 압력으로 삽입했다는 보도였다.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 결정 과정을 조사 중이던 의회 외교위원회 답변에서 총리실 캠벨 대변인은 BBC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BBC에 대해 정부가 정보를 각색했다는 자사 보도를 지지하는지 당일 자정까지 대답하라고 요구했다.

BBC 그렉 다이크 사장은 당일 자정까지 대답하라는 캠벨 대변인의 요구를 거부하고, 이것이 정부의 ‘전례 없는 압력’이라며 격렬한 개인 성명을 발표했다. 샘브룩 BBC 보도국장도 “내 경험으로 볼 때 BBC에 대한 총리실의 전례 없는 수준의 압력”이라면서 자신은 자사 기자의 보도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상호 공방 속에서 의회는 허튼위원회를 구성해서 BBC 보도의 진상을 조사하게 했다. 위원회의 결론은 “BBC 보도는 근거 없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허튼위원회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영국인들은 위원회의 조사보다 BBC를 더 믿는다고 답했다. 영국인들은 BBC를 ‘아줌마(Auntie)’, ‘빕(Beeb)’이란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영국인들에게 BBC의 신뢰도는 대법원의 신뢰도보다 높다는 조사보고서도 있다. BBC에 대한 영국인들의 이런 신뢰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영국 공영방송 BBC 홈페이지. 이 방송국의 신뢰도는 대법원보다 높다. ©BBC 홈페이지 캡처.

보도국에 내재화된 거버넌스 구조

우리나라에서는 왜 BBC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길 전 사장이나 김 전 보도국장은 왜 외압이 있을 때 과감하게 대응하지 않은 것일까? 결국 문제는 거버넌스 구조에 있다.

‘KBS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경우 사장은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방송법 제50조 제2항의 규정이다. KBS 사장을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권한을 가진 KBS이사회 구성 근거는 방송법 제46조다. ‘공사는 공사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사 경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으로 이사회를 두고’, ‘이사회는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11인으로 구성하며’,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통위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1인의 이사 중 7명은 정부·여당이 추천하고, 4명은 야권이 추천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정치권이 제시한 인사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구조로 관례화되었다. 이사장도 여권 이사가 맡는다. 7 대 4 구조 속에서 KBS 사장을 선임할 때마다 청와대 낙점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여권 이사들은 ‘거수기’노릇만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구조가 보도국 내부 조직에도 내재화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KBS의 독립과 자율성은 확보할 수 없다. 여야의 이사 추천 비율을 5 대 5로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지 않으면 사장 추천과 같은 주요 사안은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한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동안 무수히 많이 제시되어왔던 주장들이다. 국회가 시급히 이를 해결해야 한다.

지난 2월26일 발행된 KBS 노동조합 노보 1면. ‘위기의 KBS 얼마나 버틸까’ 등의 기획기사가 눈에 띈다. ©KBS 노동조합

KBS는 침묵을 지킬 때가 아니다

녹취록과 비망록이 연일 국회와 언론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KBS는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이 사태에 대한 보도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노조 KBS 본부가 이 전 홍보수석과 길 전 사장을 고발하고, 기자들이 이 사안에 대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공식적으로는 묵묵부답인 것이다.

KBS가 독립과 자율성을 짓밟힌 증거가 명명백백한데도 말이다. 뭔가 입장을 정리하고 국민에게도 KBS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하지 않는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국민들에게 수신료를 내라고 할 염치가 있는가?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요]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분과 위원

  전 <KBS스페셜> CP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