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보는 세상]

‘가짜’ 하면 ‘짝퉁’으로 대변되는 중국이 아직도 으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못지않다. 오래 전에 신신애가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라고 노래로 풍자했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박찬욱 감독의 최근 영화 ‘아가씨’도 가짜에 대한 서늘한 풍자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스틸컷 ©네이버 영화

지금까지 들은 가장 놀라운 ‘가짜’는 중국의 경찰서다. 경찰도, 싸이카도, 조사실도, 입구에 보초와 영창까지, 경찰서 전체가 가짜라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많이 친다. 길거리에서 가짜 경찰이 연행해 경찰서로 끌고 가서는 죄를 뒤집어 씌워 협박하고는, 돈을 받고 풀어준다는 것이다. 물론 들은 얘기고, 확인해보지 않았으니 진짜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옆에 진짜 경찰이 있어도 전혀 눈치를 못 챈다고 하니 그 실력에 놀랄 뿐이다.

가짜는 어느 세상, 어느 시대에나 있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1960년대 미국의 전설적 위조지폐범인 프랭크 애버그네일이 주인공이다. 가짜도 갖가지다. ‘작퉁’처럼 아예 드러내놓고 만들기도 하고, 위조지폐나 위조문서처럼 세상을 속이기 위해 은밀히 교묘하게 만들기도 한다. 일본의 여류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벚꽃, 다시 벚꽃>에서 주인공 쇼노스케의 아버지는 자신도 구별 못할 만큼 정교하게 위조한 글씨로 쓴 문서 한 장으로 죽음을 당했다. 소설이 아닌 역사에서 수없이 있어왔고, 지금도 가짜 학위증, 가짜 증명서 등 수두룩하다.

위조는 말 그대로 거짓이다. 거짓말도 위조다. 그 거짓으로 남을 속이고, 나의 이익을 도모한다. 그래서, 위조는 진짜 같아야 하고, 진짜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야 한다. 가능한 바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십만 원 주고 다른 사람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서는 자기 이름으로 천만 원 주고 팔면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내놓았다면 진짜이지만, ‘자기 이름’으로 속였기에 가짜다.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 ©포커스뉴스

가짜 화가- ‘대작’ 논란의 가수 조영남

가수 조영남 씨의 그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확한 진위는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겠지만, 한 점에 많게는 수 천 만원씩 주고 팔아먹은 그림의 실제 작가(송기창)의 진술과 주고 받은 문자로 미루어 대작(代作)일 가능성이 높다. 연예인이 ‘공인’이라는 말에 동의하지도 않지만, 공인의 여부를 떠나 남이 그린 그림에 ‘이름 석 자만 올려’ 자기 작품이라고 했다면 ‘사기’이다. 하물며 그것이 사회적으로 얻은 이익인 인기(명성)를 이용해 개인의 상업적 이익을 얻었다면, 처벌 이전에 사회적 비난을 받을 천박한 짓이다.

처음 그는 자신의 그림 소재에 빗대 “어른들이 화투 가지고 놀면 안 된다고 했는데, 너무 오래 가지고 놀다가 쫄딱 망했다”는 사과도, 반박도 아닌 한마디를 했다. 그리고는 앤디 워홀까지 거론하며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대작(代作)이 관행”이라고 하자. 그의 행위는 조수가 그림을 그리는(혹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 자체를 예술의 핵심개념으로 여기는 앤디 워홀의 작업과는 전혀 다르며, 그것을 숨겼다. 밝히고, 숨기고가 그림 자체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니 차이 없는 것이라고. 천만에 숨김은 가짜이고, 위조이고, 가짜 화가가 된다.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 누가 그렸건, 그림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남이 그린 그림을 내 것으로 속이거나, 내 그림을 남의 것으로 위장하는 것은 그림의 가치를 ‘쓰레기’로 만드는 짓이다.

위작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 화백이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포커스뉴스

가짜 그림- 이우환·천경자의 작품의 위작 논란

프랑스 파리에서 돌아와 직접 확인한 이우환 화백은 “전부 내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화백은 “나만의 호흡과 리듬, 색채로 그린 작품으로 틀림없이 내 그림들이다. 호흡과 리듬은 지문과 같다. 이것은 베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경찰이 가짜라고 압수한 ‘점으로부터 No 780217’등 13점은 모두 진짜일까.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정반대다. 오래 전에 이미 작가 스스로 가짜라고 했다. 오히려 그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현대미술관이 몇 차례 전문가의 감정을 거쳐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장만 상반될 뿐, 화가의 말도 비슷하다. 당시 천경자 화백 역시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면서 가짜를 진품으로 오도하는 화단 풍토에서는 창작행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붓까지 꺾었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점으로부터 No 780217’은 진짜이고, 천경자의 ‘미인도’는 가짜다. 반대로 전문감정가와 국과수의 조사를 근거로 하면 정반대이다. 진실은 어느 쪽일까. “그림은 그린 사람이 가장 잘 안다”는 말을 믿어야 할까. 아니면 “정교한 위작은 작가와 같은 재료를 쓴다. 재료만 보고 위작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전문가와 국과수의 감정을 믿어야 할까.

정말 화가 자신의 판단, 기억, 관찰은 정확한가. 혹시 착각이나 실수는 없는가. 그들의 ‘양심’은 또 100% 진실인가. 외국에서도 실수로 위작을 진짜라고 해 망신당한 화가, 위작임을 알면서도 진짜라고 말한 화가들이 있었다. 전문감정가들이 말하는 안료의 성분 분석값이 다르다는 것 외에도 캔버스의 인위적 노후화, 헌 나무틀 같은 것들이 위작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단서라는 것도 그렇다. 그들의 판단과 양심은 100% 믿을 수 있는가. 다른 배경은 없는가.

작품의 이력,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현재로는 진짜를 입증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도 그렇다. 프랑스처럼 미술품 거래 시 판매자는 작품의 유형, 특성, 판매 조건 등에 상관없이 진위와 소장 이력, 제작 연도, 기법 등 작품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구매자에게 제공해야 하며, 관련 법률에 따라 구매자에게 꼭 감정보증서를 발급하도록 한다고 가짜가 사라질까. 이것조차 완벽하게 가짜를 만든다면. 결국 ‘양심’의 문제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림이 아니라 이름과 돈을 벽에 걸어놓는 사람들. ©픽사베이

가짜 수준 - 그림은 예술이 아니라 돈

조영남 대작과 두 화가의 위작 논란은 그림, 나아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우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가수 조영남의 그림을 비싼 가격에 사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가 그렇게 열심히 작품을 내고, 전시회까지 열었을까. 거액을 주고 그의 그림을 산 사람들은 정말 예술적 안목과 그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을까. 아니면 단지 조영남이 그렸다기에 산 것일까. 사람이 유명하면 그림까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유명해지면 그것을 그린 화가도 유명해지는 것이 바른 이치이다.

단지 그린 사람만 보고 작품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적 취향과 수준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림이 아니라 이름과 돈을 벽에 걸어놓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그림은 자기과시, 아니면 투기와 탈세의 대상이기에 누구의, 얼마를 주고 산 그림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유명 화가들의 그림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뛰고, 위작이 끊이질 않은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그림은 시’라고 했다. 유명하고 희귀한 작품도 있고, 한 장에 수 천 만원 하는 큰 그림도 있지만, 혼신을 다해 자신의 영혼과 예술세계를 담은 작지만 살아있는 그림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무수히 많다. 허영심으로 무조건 값비싼 그림만 사들인 것을 자랑하는 어느 영국 부호가 버나드 쇼에게 그것들을 기증할 곳을 묻자, 버나드 쇼는 이렇게 답했다. “맹아학교에나 기증해라.”

예술적 진실이 없으면 그림은 백지나 마찬가지다. 허영이 있는 곳에 가짜가 자라고, 진실과 마주하기를 꺼리는 인간들이 거짓 세상을 만든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위폐범들>의 등장인물들처럼.[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14세 소년, 극장에 가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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