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지난 5일과 6일 이틀 연속 미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와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흑인 남성 2명이 연이어 백인 경관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미국 내 흑인 사회는 경찰의 시각이 “흑인의 목숨은 하찮지 않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5일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경찰을 노린 총격 사건이 발생해 최소 3명이 사망했다. ©CNN 영상 캡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25살의 마이카 존슨이라는 흑인 남성은 지난 7일 흑인들의 잇딴 사망에 항의하는 미 텍사스주 댈러스에서의 시위에서 질서 유지를 위해 투입된 백인 경찰들을 겨냥한 조준 사격으로 5명을 살해하고 7명을 부상시켰다. 존슨은 백인 경찰들에게 흑인들의 목숨이 하찮게 여겨지는 것에 분노했지만 그 역시 경찰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겼다.

존슨의 총격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불렀다. 흑인들의 생명이 값싸게 취급된다는 불만에 따라 시작된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운동이 미국 사회에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존슨의 총격으로 '경찰들의 목숨도 소중하다'(Blue Lives Matter)는 운동도 미국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구호로 떠올랐다. 블루(Blue)는 경찰 제복의 색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경찰에 대한 불신은 뿌리 깊은 일이다.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경찰에 대한 흑인들의 불만이 이처럼 경찰을 향한 저격 살해로 표출된 것은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 사건이다. 경찰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 표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이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 발생을 초래했던 로드니 킹은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잘 지낼 수는 없는 것일까”라고 물었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똑같은 물음을 다시 던지고 있다. 댈러스에서 숨진 5명의 백인 경관 가운데 한 명인 패트릭 자마리파의 부친 릭 자마리파는 아들의 장례식에서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잘 지낼 수 있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다 함께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것은 미국뿐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든 보편적으로 바라는 것이다. 로드니 킹에 대한 백인 경관들의 무차별 폭행으로 촉발된 흑인 폭동 이후 25년이 흘렀는데도 미국 사회 내 흑백 갈등은 치유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25년 전에는 폭행으로 그쳤지만 이제는 많은 흑인들이 목숨을 잃고 있으며 급기야 경관들에 대한 저격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지난 17일 호주 멜버른에서 ‘흑인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열리고 있다. ©게티이미지/포커스뉴스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미국은 흑백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며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8년 간 미국 내 흑백 갈등은 오히려 한층 더 격화됐다. 전문가들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 그동안 잠잠했던 백인들의 인종주의를 다시 되살렸다며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 흑백 갈등을 재점화시킨 원인이 됐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댈러스에서 5명의 경찰이 목숨을 잃을 때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유럽을 순방 중이던 오바마 대통령은 스페인에서의 일정을 단축하고 급거 귀국했다. 그는 “미국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분열돼 있지 않다”면서 “슬픔과 분노, 혼란이 미국을 사로잡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미국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오바마는 일리노이주의 초선 상원의원이었던 자신을 미국의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만들어준 지난 2004년 미 민주당 전국위 연설에서 “흑인들의 미국이나 백인들의 미국, 히스패닉이나 아시아인들의 미국은 없다. 우리에겐 오직 단합된 미국만이 있다”라고 말해 갈채를 받았었다.

오바마의 이 같은 발언은 지금 미국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희망사항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1991년 로드니 킹이나 얼마 전 릭 자마리파가 꿈꾼 “모두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미국 내 흑백 갈등은 지금 무시할 수도 없고 부인할 수도 없는 미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게다가 이러한 갈등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요원하다. 전문가들은 흑인 사회와 경찰이 서로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상호 신뢰를 회복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말로는 쉬울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백인 경관들을 겨냥한 댈러스 총격 배후에 미국 내 흑인들의 뿌리 깊은 불만이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헬조선’으로 비하되는 우리 사회에도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는 청년층을 비롯해 커다란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총기 소지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총기 사고가 원척적으로 차단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혈적인 우리 기질에 비춰볼 때 얼마나 많은 사고가 발생할 것인지 상상하면 보통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도 이제는 더이상 지킬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도 미국처럼 점점 다문화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런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는 정말 다 함께 잘 지낼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지 물어보아야만 할 것이다.[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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