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의 동서남북]

홍만표 변호사법 위반, 진경준 뇌물 비리,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이 잇달아 터지자 야(野) 3당이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자는 데 3당이 공조키로 합의한 것이다. 7월21일 정의당의 노회찬 의원(창원 성산)이 3당을 대표해서 ‘공수처 설치에 관한 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부동산 매입 의혹으로 논란에 휩싸인 서울 강남구 건물. ©포커스뉴스

홍만표, 진경준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공직 기강 해이, 우병우는?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가 박근혜 정부 하에서만 나온 건 아니다. 문민정부 이후에도 간단없이 터져 나왔다. 그 중 법조비리만 해도 1998~99년 잇달아 터진 의정부와 대전 법조비리 사건, 2005년의 용산게이트, 2010년 그랜저검사와 2011년 벤츠검사, 2012년 조희팔 뇌물검사 사건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올 들어서도 홍만표-진경준-우병우로 이어지는 이른바 ‘홍·진·우 사건’에서 검찰 비리는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다수의 민중을 ‘개·돼지’로 비유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나 취임 4개월 만에 휴직계를 내고 잠적, 한국 몫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을 맥없이 날려 버리고 국제적 망신까지 당한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등의 행태는 건국 이래 최악의 공직기강 해이로 기록돼야 할 것이다.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는 것도 68년 검찰 역사상 처음이고,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선 청와대 민정수석을 대통령이 감싸고 도는 모습 또한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몽골에서 돌아와 가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말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지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나(박 대통령)는 우 수석을 경질하지 않을 것이니 우 수석도 사퇴하지 말라는 뜻으로 언론은 해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수 백 억의 재산을 가진 우 수석이 자신의 아내를 시켜서 농지 몇 백 평을 불법으로 산 파렴치한 행위를 우리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며 우 수석 경질을 거듭 촉구했다.

장정숙 원내 대변인도 “홍만표-진경준-우병우 파문으로 이어지는 굵직한 검사장급 인사들의 파렴치한 돈 잔치 행각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고 말하고 “공수처와 검찰개혁 없이는 어떤 정의도 이 땅에 바로 세울 수 없다는 확신을 안겨 주었다”며 공수처 설치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공수처 설치 문제는 ‘추진’과 ‘무산’을 반복해왔다. 이번엔 성사될 수 있을까? ©픽사베이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한 공수처, 야당과 검찰의 반대로 도입 못해

공수처 설치문제는 노무현 정부(18대 국회) 때 야당인 한나라당과 검찰의 끈질긴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 후 이명박 대통령 후보도 다분히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공수처 신설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당선 후엔 전혀 이행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공수처 도입 실패 책임에서는 국회도 자유로울 수 없다. 수사 대상에서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판·검사와 고위 공무원 등으로만 한정하자고 주장해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이번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관련 법률안에는 국회의원도 수사대상에 들어 있었다.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대통령·국무총리·국회의원·행정각부의 장차관급 이상 공무원과 대통령실 소속 대통령실장·정책실장·수석비서관·기획관·보좌관·비서관·선임행정관·경호처장과 차장 등이다.

또 법관과 검사는 물론 감사원·국가정보원·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기관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과 함께 수사 대상자 본인은 물론 그 배우자·직계 존비속·형제자매도 모두 수사대상에 포함된다. 이들에 대해서는 △직무에 관한 죄 △수뢰죄 △직권남용죄 △직무관련 횡령·배임죄 △알선수재 등 부당행위 △김영란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죄 등을 상시로 수사하도록 규정했다.

공수처는 또 독립적인 기구로 중립성을 지켜야 하고 △수사 대상의 범죄행위를 인지한 때 △범죄행위에 대한 고소고발이 있을 때 △국회·감사원·대검찰청·국방부의 수사의뢰가 있을 때 등은 반드시 수사에 착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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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벗 삼으라는 대통령

이번 홍·진·우 사건으로 실체가 드러난 권력형 비리는 지난해 4월의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 때 이미 예고된 것 아니었을까? 박근혜 정부는 당시 지지율이 떨어지자 MB(이명박) 시절 경남기업의 성완종 대표를 자원외교 비리의 타깃으로 삼았고, 이에 본인이 여권 실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그만 자살을 택했다.

그 뒤 사건은 흐지부지 돼 버렸다. 성완종씨는 죽기 전 자신의 수첩에 현직 국무총리(이완구)와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허태열·김기춘·이병기)등 권력 핵심 인사들의 이름과 금액을 빼곡이 적어놓았다. 정권의 존폐가 걸린 대형 뇌물사건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미동(微動)도 하지 않았다. 이완구 당시 총리만 검찰의 조사를 받던 중 사의를 표명했을 뿐 누구 하나 대통령에 의해 경질된 경우는 없었다. 그 때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일벌백계(一罰百戒)를 택했더라면 오늘날 홍·진·우 사건 같은 참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응방식은 작년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지난해 보다 한 차원 높게 관련 당사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비난을 피해가지 말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나가라”는 발언은 자못 시적(詩的)이기까지 하다. 그만큼 의미심장하게 들려온다. ‘고난’이라는 단어는 1994년 김일성 사후(死後) 극심한 식량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던 시절을 ‘고난의 행군 시절’이라고 명명한 뒤 유명해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역대 어느 대통령도 ‘고난을 벗 삼아’ 같은 표현은 사용한 적이 없다.

공수처 신설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통제받지 않는 검찰 권력을 합법적으로 견제하려는 데 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언제나 부패하고 독단으로 흐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검찰은 분명 시대 변화에 맞게 고쳐져야 한다.

공수처가 도입되고 기소독점주의 같은 특권이 조정되면 검찰도 ‘권력의 시녀’란 의혹을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포커스뉴스

20대 국회는 특권 내려놓기 추진··· 검찰도 성난 민심 읽어야

우리나라 검찰만큼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진 나라도 드물다. 기소(起訴)독점주의는 가장 대표적인 검찰 권력이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력이 오직 검찰에만 주어져 있다는 것, 특권도 이런 특권이 없다. 이런 나라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검찰에는 또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모든 검사들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도록 돼 있다. 판사는 각자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데 반해 검찰은 아직도 군조직처럼 상명하복의 단일체를 자랑스런 전통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또한 공수처 신설과 함께 손 봐야 할 대상 중의 하나다.

공수처 신설은 현실적으로 새누리당에서 지지표가 나와야만 가능한 일이다. 야 3당이 똘똘 뭉쳐도 안 된다. 국회 선진화법이 과반을 넘더라도 강행 처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현재 불가론을 표방하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 때 공수처 신설을 안 한다는 조건으로 상설 특검법과 특별 감찰관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새누리당 의원 중에는 개혁성향의 지지자들도 분명 있는 게 사실이다. 표결에 붙여질 경우 기대를 버릴 수만은 없는 이유다. 실제로 공수처가 도입되고 기소독점주의 같은 특권이 조정되고 나면 검찰도 권력의 시녀역할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위상을 회복할 수 것이다.

20대 국회는 지금 특권 내려놓기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4·13 총선에서 성난 민심을 읽었기 때문이다. 21세기 한국의 검찰은, 비록 선출직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도의 윤리의식 수준은 갖출 것을 요구받고 있다. 국민을 분노케 하는 공직자는 더 이상 연명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오피니언타임스=김준범]

 

 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전 중앙일보 통일외교팀장,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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