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50여년 전이니까, 벌써 옛날이야기다. 도시라고 가난이 너그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시골에는 먹을 것이 더 귀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보릿고개가 있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미국이 구호물자라고 보내준 요즘으로 말하면 가축사료인 강냉이가루와 우유가루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고, 점심을 굶는 게 예사인 시대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하루 종일 들판과 야산, 논과 밭, 개울과 시내에서 살았다. 그곳에 ‘먹을 것’이 있었다. 아직은 어려서 포획에 서툴렀던 나는 형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온갖 것들을 얻어먹었다. 장수풍뎅이, 메뚜기, 개구리에 가재, 붕어, 피라미까지. 심지어 장수잠자리와 물방개까지 잡아 구워서 먹었다. 동물성 단백질 섭취가 유독 부족했던 아이들은 그것을 어디에서 무엇으로 보충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산과 들은 농약과 화학비료에 신음하지 않았고, 그곳에 사는 ‘곤충’들은 건강하고 깨끗했다.

©픽사베이

인간은 곤충과 함께 해야만 산다

그때는 몰랐다. 그 곤충들이 인류의 소중한 미래 먹거리가 되리라는 사실을. 괜히 들판을 다니는 데 방해만 되어 고무신에 가두어 빙빙 돌려서는 죽여버린 벌, 여름방학이면 곤충채집을 위해 마구잡이로 잡아서는 핀으로 꼽아버린 나비들이 지구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10년 전에 개봉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꿀벌 대소동’에서 꿀벌들은 힘들게 만들어 놓은 꿀을 인간들이 공짜로 가져가 먹는다는 사실에 화가 나 파업을 벌인다. 벌들이 들판에서 꿀 모으기를 중단하자 꽃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산과 들에 이어 동물들도 차례로 죽어간다. 지구상의 식물 40%가 곤충들의 꽃받이로 수정을 하고, 그것의 80%를 꿀벌이 맡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허풍이 아니다. 그래서 이미 100년 전에 아인슈타인은 “지구에서 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그런 징후는 세계 곳곳에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꿀벌들이 20~30%씩 줄어들고, 우리나라 토종꿀벌도 대부분 사라졌다.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러 나간 일벌들이 신경계를 다쳐 기억을 잃어버린 탓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들판을 헤매다 죽는다. 낭충봉아부패병이란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꿀벌 유충을 전멸시킨다. 살충제, 곰팡이, 전자파, 대규모 단일작물재배, 열섬현상, 그 원인이 무엇이건 인간이 저지른 짓임은 분명하다.

인간은 벌과 나비뿐만 아니라, 불과 50년 전, 우리가 들판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었던 곤충들까지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그들을 다시 불러오지 못하고 미래의 ‘먹거리’를 되살리지 못하면 인류는 머지않아 재앙을 맞을 수 있다. 2100년이면 세계 인구는 지금의 2배인 112억 명이 되고, 그러면 먹거리도 2배 이상 많아야 한다. 축산단지를 지금의 2배로 늘리면 지구 육지의 76%를 소와 돼지와 닭이 차지한다. 그들이 먹을 사료생산을 위한 재배지도 두 배로 늘려야 한다. 그러면 인간과 자연이 살 땅은 어디에?

예천세계곤충엑스포 전시장에서 어린이들이 애벌레를 만지며 신기해하고 있다. ©예천세계곤충엑스포

‘추억’과 ‘미래의 먹거리’를 만나는 나의 고향

그래서 곤충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곤충 먹기’ 거부감은 사실 50년도 채 안된 고정관념이다. 통조림으로 먹는 번데기도 곤충이다. 곤충은 인류의 탄생 이전부터 왕성한 생명력과 번식력으로 지구에서 살아왔고, 그 종도 80만이 넘는다. 좁은 공간에 적은 먹이로 키울 수 있고, 단백질과 다른 영양분도 풍부해 미래의 먹거리로는 더 없이 좋다. 온실가스 배출양도 소, 돼지보다 100배 정도 적어 친환경적이어서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작은 가축’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미 벨기에가 곤충 10종을 식품원료로 인정하는 등 세계 곤충산업의 시장규모도 20조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3000여억원이다. 사육농가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영세하다. 정부가 ‘제2차 곤충산업육성 5개년계획’을 세워 5년 후 산업규모 5000억원으로 늘린다고 하지만 이런 목표도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가능하다.

나만 잘 먹고 살면 되고, 도덕이고 양심이고 책임이고 명예고 필요 없고,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돈만 두둑하게 내 주머니에 챙기면 그만이라는,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있는 사람들’의 온갖 천민자본주의적 인식과 이기주의적 가치관, 비뚤어진 신자유주의 숭배 등을 보면 쉬울 것 같지 않다. “징그러운 곤충을 왜 먹어, 우리는 아무리 비싸도 쇠고기, 돼지고기 먹을 거야”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50년 전에도, 그리고 50년 후에도 여전히 곤충은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이 먹는 것이어야 하는가. 그런 대한민국이라면 과거도 슬펐고, 미래에도 슬픈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7월30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세계최대곤충박람회인 ‘예천세계곤충엑스포’에 간다. 50년 전 너나없이 배고픔이 슬펐지만 들판을 뛰어다니면서 잡은 방아깨비를 구워 함께 나눠 먹으며 웃었던 어린 시절의 따뜻한 추억을, 어쩌면 50년 후에 내 가난한 손자가 다시 먹을지도 모르는 그 방아깨비를 다시 만나러. 더구나 예천은 나와 바로 그 방아깨비의 고향이 아닌가.[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14세 소년, 극장에 가다> 外 다수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