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요의 미디어속으로]

지난 7월 12일, 중국 인민화보사 판정 기자로부터 인터뷰 요청 이메일이 왔다. ‘중국 기업의 한국 엔터테인먼트 사업 투자 현황과 전망’에 관한 내용이었다. 인민화보사는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중국외문출판발행사업국 소속으로, 중문판 ‘인민화보’, 영문판 ‘중국화보’, 러시아판 ‘중국’, 한국어판 ‘중국’, ‘중국시야(視野)’ 등의 정기간행물을 발간하고 있으며 영어, 불어, 러시아어, 한국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아랍어 등 9개 언어의 인터넷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곧 구체적인 질문 내용을 담은 이메일이 도착했다.

사드(THAAD) 배치 결정과 한류 콘텐츠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

7월 13일 오후 3시, 국방부는 사드(THAAD)를 경북 성주에 배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며칠 고민하다가 판정 기자에게 인터뷰를 연기하자고 답신을 보냈다. 성주군민을 비롯한 국내 반발은 차치하고라도 중국과 러시아의 즉각적인 반발이 이어졌고, 이는 우선적으로 한·중 엔터테인먼트 협력사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가 어느 정도 규모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한류 콘텐츠를 규제할지 추이를 지켜보아야 했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한류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왔다. 중국 내 한류 열풍으로 한국 방송·문화 콘텐츠들이 인기를 얻게 되자, 한류 콘텐츠가 자국 문화 육성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 이를 각종 규제책으로 묶기 시작했던 것이다. 편성 규제와 쿼터제를 실시해 프라임 타임에는 한국 방송을 금지하고, 1년 동안 20시간 이상 한국 콘텐츠를 방송할 수 없게 한 조치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오른쪽)과 토머스 벤달 주한미군 8군 사령관(왼쪽)이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 결정과 주한민국의 사드 배치 가능성에 대한 공식협의 개시를 발표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인터넷 콘텐츠도 규제하는 중국 정부

방송 쿼터제가 실시되자 민간 부문에서 한·중 콘텐츠 교류는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3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아이치이 인터넷동영상사이트 방영만으로 누적조회수 13억뷰를 기록했다. TV를 통하지 않고도 중국에서 한류 콘텐츠가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인터넷 동영상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시켰다. TV 방송에만 적용하던 사전심의제를 온라인 해외 드라마에도 적용해 광전총국 사전심의를 통과해야 온라인으로 유통시킬 수 있도록 했다. 중국 프로그램의 30% 미만으로 수량을 제한함과 동시에 실시간 방영도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국 드라마 제작 관행상 익숙하지 않은 사전전작제로 전환해야 했다. KBS와 NEW는 ‘태양의 후예’를 사전제작해 중국에서 유통시켰고, SBS ‘사임당, the Herstory’, tvN ‘치즈인더트랩’ 모두 사전제작한 뒤 양국 방영을 준비하고 있다.

SBS에서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 ©SBS 홈페이지

한류 콘텐츠를 사들이는 차이나머니

그럼에도 중국에서 한류 콘텐츠의 인기는 꾸준했다. 한국 가수나 배우, 드라마와 예능, 영화 모두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민호는 웨이보 팔로워가 2,800만 명에 이르고, 송중기는 45만 명에 이른다. KBS의 불후의 명곡, 1박2일, 개그콘서트, MBC의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SBS의 K팝스타, 런닝맨, EBS의 모여라 딩동댕, CJ E&M의 슈퍼스타 K, 꽃보다 할배 등의 예능 프로그램 포맷을 중국 위성TV에 수출했고, 이들 프로그램은 모두 시청률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미디어기업 DMG엔터테인먼트&미디어는 국내 드라마 제작사인 초록뱀을 인수했고, 쑤닝유니버셜은 국내 연예기획사 FNC엔터테인먼트에 330억 지분 투자를 했다. 홍콩기업 엠퍼러그룹은 드라마 ‘사임당, the Herstory’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티브리더스그룹에이트에 15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영화배급사 NEW는 중국 화책미디어와 손잡고 ‘화책합신’ 이라는 공동법인을 설립하고 강풀 원작 웹툰 ‘마녀’ 판권을 구입, 한국판과 중국판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리얼문화산업전문사는 알리바바픽쳐스와 투자 및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인터넷동영상사이트를 보유한 중국 기업들은 TV방송사를 제치고 드라마 방영권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한국 드라마 마케팅에 손을 대고 있다. 한국 콘텐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중국 자본의 대대적인 투자가 이어졌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대박 터뜨린 ‘태양의 후예’

KBS2에서 방영된 태양의 후예. ©KBS2 홈페이지

중국 콘텐츠 시장은 지상파 방송 채널만 3,000개, 시청자 수도 13억에 이르는 거대시장이다. 현재는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규모지만 가파른 성장세로 일본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여기에다 인터넷 보급 확대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가 콘텐츠의 주요 플랫폼으로 자리잡으면서 6억 명이 넘는 인구가 인터넷, 특히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유쿠투더우, 소후, 아이치이, 텐센트 등 중국의 4대 동영상 사이트는 중국 방송시장 뿐만 아니라, 광고, 영화, 애니메이션 등 중국의 콘텐츠 시장을 주도하는 매체로 부상했다.

문제는 이렇게 다양한 플랫폼과 채널을 채워줄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국 콘텐츠 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외부 수급에 의존해야 한다. 동영상 사이트들은 네티즌들의 동영상 콘텐츠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국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사들였고, 한국 드라마 판권 가격은 급등했다. 영화배급사 NEW가 130억을 들여 제작한 16부작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중국 동영상사이트 아이치이와 회당 3억원에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태양의 후예’는 중국에서 누적조회수 100억뷰를 돌파하는 전례없는 기록을 세웠다.

중국 콘텐츠 시장, 기회와 위기의 땅

한편, 국내 제작사들도 그동안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 미디어 이용방식이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지상파 콘텐츠의 시청률이 추락하고 수익률은 저조한 반면, 배우와 스타작가 출연료의 상승으로 제작비는 급등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가장 낮은 드라마 편당 제작비가 3억6000만원에 이른다. 주연급의 회당 출연료가 1억원에 가까운 경우도 있고, 스타 작가의 원고료는 회당 3000만~500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자본 유치로 재정을 확보하는 한편, 방송권의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중국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제작사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일어났다.

한국 콘텐츠 제작사들에게 중국 시장은 기회와 위기가 병존하는 땅이다. 최근 한중FTA 발효로 지상파 채널만 3,000개인 중국의 미디어 시장이 열리게 되었다. 국내 제작사와 엔터테인먼트사들의 중국 시장 진출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정부의 인터넷 사전 심의 발효로 판권 가격이 1/3 수준으로 급락하면서 국내 업체에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기도 했다. 중국 인터넷 동영상 사업자들도 미국의 OTT 사업자인 넷플릭스처럼 프로그램 자체 제작을 시도하면서 한류 콘텐츠 의존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픽사베이

이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사드(THAAD)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대응은 일차적으로 콘텐츠 사업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명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도 한국 콘텐츠에 대한 중국의 견제가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내 한류 콘텐츠가 결정적 타격을 맞게 된 것이다.

한·중 협력 콘텐츠, 헐리우드를 넘볼 수 있다

민간 차원에서는 그동안 서로의 필요에 따라 콘텐츠 제작과 유통 부문에서 활발한 윈-윈 게임을 펼쳐오고 있었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자본력, 거대한 시장, 풍부한 콘텐츠 소재와 한국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 기획력, 제작력, 마케팅력의 결합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서 한국과 중국의 결합은 헐리우드의 세계 콘텐츠 시장 지배력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이기도 하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한 걸음씩 물러서서 그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요]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분과 위원

  전 <KBS스페셜>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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