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너무 덥다. ‘이 더위는 가장 더운 섬 제주도에서 왔을 것이니 혹시 제주도 여신들이 내린 재앙은 아닌가!’……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다니 드디어 내가 더위를 먹은 게 틀림없다. 이참에 제주도 설문대할망과 자청비 그리고 슬픈 두 여신 이야기를 알아보자. 현실을 잊는 신화적 피서 방법으로.

제주 서귀포시 신풍리 설문대할망 테마공원에 조성된 돌미로공원 항공사진. 테마공원은 제주도를 창조한 여신 설문대할망 설화와 오백장군의 이야기 등으로 구성됐다. ©설문대할망공원

설문대할망

태초에 탐라에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센 설문대할망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할망이 벌떡 일어나 방귀를 뀌면서 하늘과 땅 천지가 창조되기 시작했다. 할망은 바닷물과 흙을 삽으로 퍼서 불을 끄고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날라 부지런히 한라산을 만들었다. 한 치마폭의 흙으로 한라산을 이루고 치맛자락 터진 구멍으로 흘러내린 흙들이 모여서 오름들이 생겼다. 할망 오줌발에 성산포 땅이 뜯겨 나가 소섬이 되었다.

할망은 몸 속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탐라백성들은 할망의 부드러운 살 위에 밭을 갈았다. 할망의 털은 풀과 나무였고, 힘찬 오줌 줄기에서는 온갖 해초와 문어, 전복, 소라, 물고기들이 나와 바다를 풍성하게 하였다. 할망은 키가 너무 커서 옷을 제대로 입을 수가 없었다. 할망은 백성들에게 자신의 속옷 한 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했다. 할머니의 속옷을 만드는 데는 명주 100통이 필요했다. 탐라 백성들이 명주를 다 모아도 99통밖에 안 되었다. 할머니는 음문이 살며시 드러난 미완성의 속옷에 부끄럽고 화가 나 육지까지 다리 놓는 걸 포기해 버렸다.

할망은 오백장군을 낳아 한라산에서 살았다. 식구는 많고 가난한데다 마침 흉년까지 겹쳤다. 아들들에게 양식을 구해 오라고 했다. 오백 형제들이 나가고, 할망은 백록담에 큰 가마솥을 걸고 불을 지핀 다음 솥전 위를 걸어 돌아다니며 죽을 끓였다. 그러다가 발을 잘못 디디어 죽 솥에 빠져죽었다. 오백 형제는 돌아와서 죽을 먹기 시작했다. 맨 마지막에 돌아온 막내가 죽을 뜨려고 솥을 젓다가 이상한 뼈다귀를 발견했다. 어멍의 뼈가 틀림없었다. 동생은 어멍의 고기를 먹은 불효한 형들을 통탄하며 산방산 앞 차귀섬으로 달려가 한없이 울다가 바위가 되어 버렸다. 형들도 그제야 사실을 알고 여기저기 늘어서서 한없이 통곡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졌다. 한라산 남서쪽 영실에는 499장군이 있고, 차귀섬에 막내 하나가 외롭게 있다. 제주도 돌문화공원에는 이 신화가 설치 전시되어 있다.

©픽사베이

자청비

이 이야기는 세경본풀이에 나오는 무속신화다. 주년국 주년뜰 김진국 부부는 절에 불공을 드려 딸을 얻고 이름을 자청비라고 했다. 자청비가 십 오세에 냇가로 빨래를 갔다가 공부하러 가는 하늘옥황 문곡성 문 도령을 만났다. 자청비는 남장을 하고 문 도령을 따라 함께 동문수학을 했다. 삼년 공부를 마친 자청비는 문 도령에게 자신이 여자임을 알리는 편지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뒤쫓아 온 문 도령과 삼 개월을 함께 보내고 문 도령이 하늘 옥황으로 올라갔다.

어느 날 나무하러 간 정수남(김진국이 종에게서 난 노비)이 말과 소를 다 잡아먹고 문 도령이 선녀들과 노는 것을 보느라고 그랬다며 핑계를 댔다. 자청비는 문도령을 만나려고 정수남이와 산으로 갔다. 정수남이 자청비를 범하려 하자 정수남을 죽여 버렸다. 이 일로 집에서 쫓겨난 자청비는 사라대왕의 딸과 거짓 혼인한 후 사람을 살리는 꽃을 구해 정수남이를 살려주고 집을 떠났다. 온갖 고생을 겪지만 기어이 하늘 옥황의 문도령을 찾아갔다. 그리고 문도령과 혼례를 올렸는데 하늘 옥황의 선비들이 반란을 일으켜 문도령을 죽였다. 자청비는 서천 꽃밭으로 가서 환생 꽃과 멸망 꽃을 얻어다 문 도령을 살리고 멸망 꽃으로 선비들을 죽였다. 자청비는 오곡씨를 가지고 지상으로 내려와 중세경이 되었다. 문도령은 상세경, 정수남이는 가축을 돌보는 하세경이 되었다.

‘스스로 청하여 낳은 자식’이라는 자청비는 미모뿐 아니라 지혜도 뛰어난 여신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남자로 변장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고 서천 꽃밭으로 가는 담력과 돌파력이 있다. 두 개의 나라를 세운 소서노와 함께 한국 최강의 여자 캐릭터다.

제주도 주상절리 ©픽사베이

슬픈 두 여신

이 두 이야기는 제주도 생태여행 프로젝트를 하시는 Y 대표에게 들은 이야기다. 한라산에 남신이 있었다. 산을 내려와 마을의 여자와 혼례를 치렀다. 여자가 임신을 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여자는 돼지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러나 가난한 그녀는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큰 비가 온 어느 날 돼지들이 지나간 자리에 웅덩이가 파였다. 여자는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셨다. 남신이 그를 알고 더럽다 욕하며 다시 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여자는 혼자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커서 아이들을 낳고 부락을 이루었다. 자손들은 자신들의 불쌍한 할머니를 위해 신당을 세우고 여신으로 모셨다.

또 다른 여신. 북쪽 바닷가에 살던 처녀가 조개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 날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멀리서 배들이 보였다. 그 배들이 왜구들의 배임을 알게 되자 마을에 알리려 뛰기 시작했다. 바위에 부딪치고 돌에 채이고 심장은 놀라움에 요동치는 가운데 마을에 다다른 처녀는 왜구들의 침입을 알리고는 기진하여 그 자리에서 죽었다. 처녀 덕에 살아난 마을 사람들은 처녀를 기려 신당을 지어주고 바다에 나갈 때면 제를 지내고 절을 했다.

제주시 조천읍과 서귀포시 남원읍 경계에 있는 오름전경. 제주도 여신들은 가난하고 핍박받던 제주 민중들의 삶을 투영해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신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제주도는 모시는 신만 1만8000명에 달한다. 육지에는 설문대할망 같은 창세신화는 없다. 자청비 같이 강한 (무속)여신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제주도 여신들은 대체로 가난하고 슬펐다. 그 여신들은 가난하고 핍박받던 제주 민중들의 바람을 담은 인간신이기 때문이다. 지금 제주도는 부자 자치도가 되었다. 이제 설문대할망의 창세 노력을 고마워하고 슬픈 두 여신을 위로하며 자청비 같이 강한 신의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혹시 전국에 내려진 이 폭염을 신화적으로 해석한다면, 후안무치하고 부패한 육지의 권력자들에 분노한 제주도 설문대할망, 자청비 여신이 내리는 폭염탄 재앙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여신들이여, 서민들이 에어컨도 못 틀고 밤잠 못 이뤄 아침이면 몸은 뻐근하고 눈이 토끼눈이 되니 이제 분노의 대상을 칼끝처럼 가리시어 벌할 자 벌하시고 서민에게는 시원한 가을을 내리소서.[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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