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석탑 그늘에서]

‘청와대 식탁’이 난타를 당하는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의 오찬에 최고급 요리 재료가 줄지어 등장했다는 뒷소식 때문이다. 캐비어와 송로버섯, 샥스핀(상어지느러미), 바닷가재, 한우 갈비로 만든 음식이 올랐다고 한다.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특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학원 골목의 ‘컵밥’조차 진수성찬으로 여기는 것이 현실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니 “청와대만 딴 세상이냐”는 비난을 들어도 크게 할 말은 없게 됐다.

개인적으로 송로버섯 요리는 아직 구경해 보지 못했다. 캐비어나 샥스핀을 먹어본 적은 있지만 왜 맛있다고 하는지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기사식당 돈까스가 더 맛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동네 아저씨 아줌마에 캐비어(caviar to the general)’라는 독백이 꼭 내 얘기다. 흔히 ‘돼지 목에 진주‘라고 번역하는데, ‘입맛을 모르는 자들이 캐비어를 먹어봐야 그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겠느냐’ 쯤의 뜻이 될 것이다.

청와대 오찬에 등장해 논란을 빚은 캐비어(왼쪽)와 송로버섯 ©픽사베이

최고 통치자들, 먹거리로 국민과 공감하려고 노력

청와대는 “송로버섯이나 캐비어는 음식 재료로 조금씩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것이 또 “그럼 송로버섯이 삼겹살 구울 때 새송이버섯 썰어놓듯 하는 음식 재료인 줄 아느냐”는 전문가들의 반박을 낳았다. 송로버섯은 원래부터가 음식의 맛과 향을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조금씩 쓴다는 것이다. 어쨌든 송로버섯 값은 호되다. 지난해 이탈리아 알바에서 열린 국제경매에서 1.2kg의 송로버섯이 우리돈 1억원가량에 낙찰된 적도 있다.

프랑스에서 미식가로 명성을 날리며 ‘미식예찬’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장 앙텔므 브리야-사바랭은 “그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친분이 있는 음식 전문가는 이 말을 “그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 보면 어떻게 통치하는 사람인지도 알 수 있다”고 살짝 비틀어 SNS에 올려놓았다. 하긴 역대 대통령 가운데도 먹거리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려 했던 분들도 있었다. 대통령의 서민적 취향을 강조하려 ‘언론 플레이’에 나선 것은 공통적이었다.

지난해 번역되어 나온 ‘대통령의 셰프’를 보면 최고 통치자가 국민과 먹거리로 공감하려는  노력은 전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은 송로버섯이 들어간 ‘스크럼블 에그’를 좋아한다고 했다가 평범한 시민과는 동떨어진 귀족 후손이라는 이미지에 갇혀버렸다고 한다. 이후 서민행보를 한다며 동네 가정집을 찾아 점심을 함께 먹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웃음거리가 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 시절 러시아에서는 캐비어가 아예 대통령궁 주방의 사용금지 품목이었다. 러시아는 캐비어의 최대 산지이기도 하다. 매드베데프는 평범함 재료를 만든 맛있는 요리를 원했다고 한다. 대통령 주방의 요리사들도 사치스러운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준 높은 음식을 만드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서민 행보를 강조하는 언론 플레이인지는 알 수 없다.

평소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으며 국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게티/포커스뉴스

정상회담에서 ‘셰프 외교’로 실마리 풀어간 사례도 많아

음식 분야 종사자들은 최고통치자의 부엌에서 벌어지는 일이 국가기밀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높이려는 과장일 수도 있지만 설명을 들어보면 그럴듯하다. 실제 최고 통치자의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보면 성향은 물론 건강 상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당뇨나 고혈압에 시달린다면 당연히 적절한 식이조절이 필요하다. 희귀 질환이 의심된다면 이 역시 며칠 동안의 식단만 관찰한다면 짐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셰프 외교’라는 표현이 일반화된지 오래다. 정상회담의 난제를 오찬에서 나온 음식에 대한 찬사가 실마리가 되어 풀어간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것이 아니라도 국빈(國賓)을 정성을 다해 모시는 출발점은 말할 것도 없이 만족스러운 먹거리다. 따라서 최고 통치자의 부엌은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청와대 주방은 지나치게 빈약하다. ‘셰프 외교’에 대한 기본 인식이 부재(不在)하다는 뜻이다.

청와대 셰프의 숫자는 한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대통령의 식사나 아주 작은 행사만 소화할 수 있을 뿐이다. 인원이 많은 행사는 외부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오랜만에 ‘부름’을 받은 호텔이 이익을 남기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계산이 나오지 않는 메뉴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을 것이다. 송로버섯 논란 역시 융숭하게 대접하고 싶다는 청와대의 뜻과 시장원리쯤은 개의치 않겠다는 업체의 과욕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일 수도 있겠다 싶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9월 서울 답십리 현대시장을 방문해 전을 시식하고 있다. ‘청와대 식탁’ 논란은 그간 대통령이 쌓아온 서민적 이미지를 무너뜨렸다. ©청와대

청와대 주방이 ‘한식 세계화’ 진원지 될 수도… 조선시대 사옹원 참고할 만

결국 대통령 식탁의 근본 문제는 주방 시스템에 있는 듯하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청와대를 찾은 손님에게 맛있으면서도 품위있는 음식을 대접할 수 있도록 조직의 확대 정비가 필요하다. ‘한식 세계화’를 외친 진원지이면서도, 정작 한국을 찾은 외국 정상에게 한식의 참맛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리고 있는 청와대가 아닌가.

조선시대는 사옹원이라는 독립 관청을 만들어 왕의 먹거리를 책임지도록 했다. 전국에서 진상하는 먹거리를 관리하고, 경기도 광주 일대에 왕실 전용 그릇공장인 분원을 운영하기도 했으니 조직은 수백명에 이르렀다. 왕조시대를 모델로 삼을 수는 없겠지만, 오래된 역사를 되살리는 것도 ‘셰프 외교’에 도움이 될 것이다. 청와대 주방 조직을 확대 개편하면서 ‘사옹원’이나 ‘사옹방’같은 별칭으로 부르면 정상회담의 화제거리도 되지 않겠는가. 새로운 청와대 주방이 식재료와 메뉴를 공개하면 송로버섯 파문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특히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식단이 동네 식당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용인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민은 그들의 지도자가 보통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인물이기를 원한다.’ 역시 ‘대통령의 셰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외국 귀빈에게는 한국 음식의 맛과 멋을 알리고, 국민들에게는 ‘같은 음식’으로 공감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면 청와대는 지금의 주방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서동철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문화재위원회 위원

 국립민속박물관 운영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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