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쑈!사이어티]

당첨확률 14:1. 이것은 로또 당첨확률이 아니다. 서울 강남의 어느 공립유치원 입학확률이다. 이 유치원에서는 추첨일에 맞춰 휴가까지 쓰고 온 젊은 부부, 대신 나온 조부모들로 북적인다. 그들이 뽑을 작은 공에 쓰인 ‘합격’ 또는 ‘탈락’에 향후 아이의 운명이 달렸다. 탈락한 부모들은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하나, 플랜B를 찾아 정처없이 헤맨다.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다는 전업주부도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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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왜 한국 부모들은 애를 직접 키우지 않고 어린이집, 유치원만 찾아다닐까? 젊은 부모들이 이기적이거나, 자식사랑이 유난히 부족해서인가? 아니다. 잘못 설계된 육아복지 정책 탓이다. 한국의 육아복지는 ‘시설에 맡기는 부모만’ 60~80만원의 보육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육복지는 철저한 ‘시설복지주의’로 요약된다. 0~2세 유아의 위탁비용을 지원하는 ‘무상보육’, 3~5세 영아의 보육료를 지급하는 ‘누리과정’도 오직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맡겨야 제공된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애 키우고 싶어서 퇴직, 휴직한 부모들도 정작 보육료를 받으려면 육아시설을 찾아가야 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다. 대규모 탁아시설을 만들고 온 나라의 애들을 맡기라고 강요하던 20세기 구소련, 나치 독일을 연상케 한다.

물론 시설중심 복지는 한국 육아시스템의 양적팽창에는 크게 기여했다. 90년대 초만 해도 어린이집, 유치원이 부족했는데, 이제는 시설포화율이 70%에 불과할 정도로 시설은 넉넉하다. 보육교사 등 관련 일자리도 많이 생겼다. 사실상 보육시설에 운영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의 시스템 덕분에 많은 민간업자들이 어린이집-유치원 사업에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보육시스템은 ‘시설중심’과 ‘민간중심’이라는 큰 틀에서 성장했다.

문제는 보육의 품질과 다양성이다. 우선 민간사업자가 무차별적으로 진입하면서 보육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 보육교사의 처우·급식의 품질·교사와 부모의 소통 등 보육복지의 품질은 관리하지 못했고, 그 바람에 교사의 전문성 부족, 업무과중에 따른 스트레스, 이에 수반되는 영아학대와 저질급식 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또한 육아의 다양성도 붕괴하고 있다. 육아시설을 이용해야만 양육비를 주다보니 전업부모, 마을주민들의 공동육아, 조부모의 황혼육아 등 아이를 직접 키우려는 시도들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이는 세계적 추세와 완전 역행하는 것이다. 스웨덴과 덴마크 등 육아선진국들은 다양한 보육형태를 존중하면서 보육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한다. 이들 정부는 시설보육, 전업보육, 공동보육 등 많은 형태의 육아에 지원금, 교육, 품질관리를 제공한다.

심각한 저출산, 보육대란을 해소하려면 ‘시설육아’에 쏠린 정책 지원을 수혜자인 부모들로 이동하는 게 바람직하다. ©포커스뉴스

한국 육아의 무게중심이 ‘시설육아’에 쏠려있었다면 이제는 육아의 다양성을 챙길 때다. 전업부모, 공동보육 등 다양한 육아 욕구에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육아복지의 초점이 ‘시설지원’에서 수혜자인 부모들로 이동하는 게 바람직하다. 부모에게 직접 육아·출산·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유명무실한 육아휴직제도를 내실화하여 부모들에게 ‘시설위탁’을 할지 아니면 직접 키울지 선택권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래야 다양한 육아 시도가 이루어지고, 보육료 받으려고 울며 겨자 먹기로 맡겨지는 아이들을 볼모로 버티는 좀비 보육업체들이 퇴출될 수 있다.

아울러 민간 사업자 중심으로 덩치가 커진 공급시스템의 공적 관리도 필요하다. 문제는 ‘보육시설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갈 만한 보육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전국의 보육시설은 4만개가 넘는데도 부모들이 정부의 ‘보육시설 마련’을 요구하는 이유다. ‘서울시 어린이집 제도’처럼 인증된 민간업자에게 시설지원금을 제공하는 식으로 ‘준공영제’를 추진한다면 우수한 보육업자를 육성할 수 있다. 또한 보육교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대신 자격요건을 강화한다면 속 빈 강정 수준의 한국보육이 내실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한국의 부모들을 시설보육 경쟁에 내몰아서는 안 된다. 전업부모든 맞벌이 부부든 사랑하는 자식을 걱정 없이 키우고 싶을 뿐이다. 전업주부가 왜 애를 시설에 맡기냐는 식으로 야박한 싸움을 붙이는 ‘맞춤형 보육 논란’ 등도 따져보면 시설중심의 보육복지가 뿌리 깊은 탓이다. 심각한 저출산, 보육대란을 해소하려면 부모들의 다양한 육아시도를 장려하고, 육아서비스의 품질을 관리해야 한다. 그러자면 현행 GDP 1%(17조원) 남짓한 보육복지 예산도 확충해야 한다. 아이는 온 나라가 키우는 것이다. 육아의 책임을 시설에만 맡겨선 안 된다.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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