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부산·경남 일원에서 9명을 잇달아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인 연쇄살인범 정두영(47)이 지난달 28일 탈옥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그는 교도소 작업장 내에서 몰래 만든 4m 높이의 사다리를 이용해 삼중 구조로 된 교도소 담을 넘다가 세 번째 담에서 탈옥 직전에 발각됐다.

정씨는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부산과 경남, 대전, 천안 등지에서 23건의 강도·살인 행각을 벌였다. 철강회사 회장 부부 등 9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등 잔혹한 범행으로 밀레니엄에 들떠있던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그는 2000년 12월 부산고법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상고를 포기하고 현재 사형수로 수감 중이었다.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인 연쇄살인범 정두영이 지난달 28일 탈옥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그는 2000년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아직까지 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게티이미지/포커스뉴스

정씨의 탈옥미수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가장 먼저 그가 저지른 사건의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살아 있을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했다. 그다음으로는 탈옥 동기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탈옥에 성공했더라면 십중팔구는 같은 범죄로 인한 무고한 인명의 희생이 되풀이되지 않았을까를 생각했다.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흉악범 유영철을 떠올린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2003년 9월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마사지사 등 21명을 죽이고 사체 11구를 암매장했던 유영철은 검찰조사에서 “2000년 강간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정두영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한 월간지를 보고 범행에 착안하게 됐다”고 진술했었다.

이 사건은 또 사형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해묵은 논란을 생각하게도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사형제를 두고 있는 56개 나라 중의 하나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12월 흉악범 23명에 대한 일제 집행 이후 김대중 정부이후 현재까지 사형집행은 없었다. 국제사면위는 10년 동안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나라를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95개 유엔 회원국 중 56개국이 사형제를 두고, 집행도 하고 있고, 31개국은 사실상 폐지국가, 6개국은 전범 등 예외적인 범죄에 적용하고, 102개국은 완전 폐지국이다. 한국은 지난 20년 가까이 집행이 없는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으로 간주된다.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 중 선진국으로는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이 꼽힌다. 나머지는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의 제3세계 국가들이다. 미국은 서방세계 유일의 사형집행국이다. 2015년에만도 28명이 처형됐다. 워낙 흉악범죄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집행이 불가피하겠지만, 사형제가 없는 주도 있고, 집행 대신 종신형에 몇 십 년을 추가해 응징 효과를 올리기도 한다.

한국 국회는 1999년 이후 올해까지 사형제 폐지를 위한 특별법을 일곱 번이나 발의했지만 통과되지는 못했다. 사형제가 존속되는 가장 큰 원인은 국민여론이다.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83%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국민의 절대다수는 늘 사형제 유지에 찬성하고 있다. 지난 7월 갤럽조사에 의하면 63%가 찬성했고, 27%가 반대, 10%가 유보 입장이었다.

©픽사베이

사형제를 존속케 하는 다른 하나의 배경은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합헌결정이다. 헌재의 거듭된 판단은 ‘사형은 일반국민에 대한 심리적 위하(威嚇 , 위압감)를 통해 범죄 발생을 예방하고 이를 집행함으로써 극악한 범죄에 대한 정당한 응보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범죄인 자신에 의한 재범 가능성을 영구히 차단함으로써 사회를 방어한다는 공익상의 목적을 가진 형벌’이다.

헌재의 결정은 그러나 사형의 집행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반쪽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다. 사형제가 있다고 흉악범죄가 막아지지 않듯이, 또 사형제 없앤다고 흉악범죄가 줄어든다고 보기는 더욱 어렵듯이, 사형제와 흉악범죄의 상관관계는 영원한 논쟁거리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정당한 응보를 통한 정의 실현과, 재범 가능성의 영구차단 효과이다.

정씨 사건은 참회하지도 않고, 틈만 나면 재범을 위한 탈옥을 꿈꾸는 흉악범에 대한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 것이 응보를 통한 정의실현이냐는 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 흉악범을 살려둔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억울함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의 고통, 국민정서에 미치는 해악을 크게 할 뿐이라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가 사형집행을 보류한 것은 김대통령 스스로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경험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본다. 군사정부 시절 정치적으로 억울하게 사법 살인을 당했거나 일반 형사범 가운데 오심으로 인한 억울한 사형수도 있었다. 지금은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이라 한들 사형이 어려운 판에, 내부의 사상범이나 확신범에게 사형선고는 꿈도 꿀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이제 사형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흉악범뿐이다. 필리핀에서는 흉악범에게 사살명령을 내린 대통령이 국민의 박수를 받고 있다. 국민을 몸서리치게 한 흉악범들이 살아서 범죄를 꿈꾸고 있다면 우리의 사형제는 잘못 운영되고 있다 할 것이다.[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