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 보다]

예전에 지역 방송국 외주 제작 PD로 일할 때 경남 진례라는 곳에 이주 노동자 관련 취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취재를 마치고 촬영감독은 편집 때 필요한 인서트 컷을 찍으러 가고 나는 양쪽으로 공장이 늘어선 길을 산책하듯 천천히 걷고 있었다. 어느 공장 앞을 지나는데 마침 앞에 나와 있던 공장 경비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니는 어데서 일하노?”
순간 무슨 말인가 싶어 머뭇거리자 그 경비원이 다시 말했다.
“아직 우리 말이 서툰갑네. 여서 일할라믄 얼렁 우리말부텀 배워야된대이”

그 분은 내가 이주 노동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편이라 동남아시아 사람이라는 오해를 종종 받은 적이 있어 멋쩍게 웃으며 지나가려는데 마침 촬영 감독과, 우리가 취재했던 공장 사장이 나에게 아는 체를 했다.

“PD님 여기 계셨네요?”
“아… 예 ”

©픽사베이

우리의 대화를 들은 그 경비원은 황급히 내게 뛰어와서는 모자를 벗고 꾸벅 인사를 하며 못 알아봐서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괜히 민망한 마음에 아니라고 괜찮다고 몇 번이나 손사래를 치는데도 그분은 우리의 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연방 허리를 숙이며 미안해했다.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이 에피소드를 가끔씩 들려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다들 즐거워하며 웃었다. 그 얘기를 들려줄 때면 그 경비원이 나를 오해한 부분까지만 말하고 나에게 거듭 사과한 부분은 굳이 얘기하진 않는데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내 기분이 괜히 씁쓸해지기 때문이다.

가끔 어르신들이 처음 보는 나에게 대뜸 반말을 할 때 속으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그 경비원은 내가 당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이주 노동자라 생각하고 반말을 한 것이었다. 그 분은 내게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사과했는데 반말이 미안한 것일까? 아니면 이주 노동자로 오해한 게 미안한 것일까? 그 분에게 방송국 PD는 나이가 어려도 극존칭을 해야 되는 사람이고 이주 노동자는 초면에 편하게 반말해도 되는 사람인 것이다.

얼마 전 임금을 제때 주지 않는다며 항의하는 건설현장 이주 노동자들에게 동전으로 임금을 지급한 건축업자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약속된 날짜에 임금을 주지 않고 차일피일 지급을 미루자 노동자들은 항의의 뜻으로 현장에 나가지 않았고, 그 업자는 3시간 동안 은행 6곳을 돌며 교환한 500원짜리와 100원짜리 동전 2만 여개를 사무실 바닥에 뿌린 것도 모자라 발로 동전을 밟아대며 마구 섞어버렸다고 한다.

그 업자는 건축주의 공사 대금 결제가 미뤄지면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지급도 늦어질 수 있는데 그렇다고 현장 출근을 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나서 그랬다고 한다. 어쩌면 그도 건축주로부터 제때 대금을 결제 받은 적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직까지도 건설업계에서 대금 결제일을 일방적으로 미루거나 대금을 약속어음으로 주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업자 입장에서는 자신도 돈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부린 노동자들에게 약속한 날짜에 임금을 지불해야 되는데 그런 사정을 모른 체하는 노동자들이 야속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한국인 노동자였다면 3시간 동안 은행 6곳을 도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동전을 교환해 바닥에 뿌리고 발로 마구 뒤섞을 수 있었을까?

SNS에서 화제가 된 ‘편의점 절대 수칙’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가 이주 노동자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생각에 이주 노동자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니까. 그들은 그런 대우를 받더라도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도 마땅치 않고, 또 다른 일자리를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 정도쯤은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단 이주 노동자의 일만은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됐던 유해성분이 들어간 치약을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선물하는 입주민들, 매장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제지하는 직원의 뺨을 때리는 고객, 여자기숙사에 들어온 외부인 남자를 제지하는 경비원에게 막말과 욕설을 날리는 교수 등 소위 갑질하는 사람들의 태도 속에는 나는 그 사람에게 그래도 된다는 우월감이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편의점 사장이 알바생들을 위해 작성했다는 <편의점의 절대 수칙>이 SNS에서 화제를 모았다. 절대수칙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부당한 고객에겐 절대 머리를 숙이지 말 것.
손님이 왕인 시간은 사장인 내가 근무할 때뿐임.
고객보다 위가 근무자님들이라는 걸 절대 잊지 마세요!
정말 노답인 경우는 경찰 신고 + 맞쌍욕을 허락합니다.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손님도 직원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다. 세상 어떤 사람도 자기 기분에 따라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세상 어디에도 내가 당연히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이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자.[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김동진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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