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탈모 치료로 유명한 삼성동 병원에 지인을 따라서 갔다. 기본적인 검사를 마치자 전문상담가가 브러시를 준다. 그 브러시는 솔이 굵고 삐죽삐죽 나온 것이 보기만 해도 공포스럽다. 머리털이 없는 사람에게는 털 한 올이 소중한데 그런 브러시를 쓰면, 우후! 그런데 그가 단호하게 말을 했다. “처음에는 털이 솔에 수북하게 뽑혀 나올 겁니다. 그래도 쫄지 말고 막 문지르세요. 어차피 곧 빠질 쓸모없는 털입니다. 빡빡 문질러야 털의 성장을 막는 찌끼가 제거되고 모공이 뚫립니다. 그래야 다음에 건강한 머리털이 제대로 납니다. 아시겠어요?” 신뢰감이 막 가는 말인데 탈모증 환자는 참으로 공포스럽다.

©픽사베이

더 이상 뭐가 나빠져요?

눈치 빠른 독자라면 전문상담가가 한 말이 지금 시국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알 것이다. 탄핵을 하면 국정 공백이 올 텐데 당장 시급한 경제는, 외교는, 안보는? 이런 공포에 빠지면서 국민들은 늘 약해진다. 기득권 지식인, 수구 꼴통들은 늘 이런 말로 국민들 분노를 삭였다. 그래서 탈모치료 전문상담가 화법을 빌자면 “브러시를 하다가 털이 막 뽑힌다 싶으면 그냥 멈추세요. 당장 사람들한테 머리가 휑하게 보일 텐데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요. 머리털이 더 빠지면 그때 또 오세요. 더 부드러운 브러시를 드릴 테니. 어차피 완전 탈모 치료는 없어요. 아시겠죠? 늘 대충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어야 한다. 나조차도 지난주 국립대 교수하고 말하다가 다음처럼 말을 했다. “더 이상 나빠질 공백과 침체가 뭐가 있다는 겁니까? 위기가 와도 이보다 더 나빠질 건 없습니다.” 당장 나부터 위기다. 이번 사태로 12월에 출간하기로 한 책이 잠정 보류됐다. 1년 반을 쓴 책이다. 내가 고문을 해주던 중소기업 3군데가 투자도 못 받고 인원도 줄이고 고사 상태라 컨설팅료, 고문료를 못 받고 있다. 그나마 출간될 책에 기대를 걸었더니 이 모양이다.

내 책뿐만 아니라 많은 책들이 출간 보류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기 때문이다. 왜 아니겠는가? 지금은 현실이 더 책보다 리얼하고 흥분되는 것을. 공연도 안 되고 심지어 김영란 법이 겹쳐 선술집도 안 된다고 한다. 분노를 해야 소주라도 먹는데 허탈해지면 사람들은 술을 먹을 기운도 없어진다는 것이 이번에 헌정 사상 최초로 증명되었다. 그러니 전부 거리로 나올 수밖에. 그래서 100만명이 광화문에 모였을 거다. 박근혜 최순실은 정말 위대하다. 100만명이나 거리로 나오게 하다니. 힐러리도 아마 그녀들 때문에 떨어졌을지 모른다. 트럼프가 전화를 받아준 것 보면 그녀들 고마움을 아는 것 같다.

13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원에서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놓아둔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포커스뉴스

3단계 전략을 말하다

페북에 한 주제로 5회 연속 글을 올렸다. 그전보다는 훨씬 장문으로. 내용은 이렇다. 치욕을 안다면 대통령은 하야하라. 최씨 일가가 40년간 부정 축재한 재물을 특별법을 제정하여 모두 환수하라. 그리고 국민 정풍 운동을 벌이자.

근거는 이렇다. 지금 대통령과 측근(병신5적)은 쓸모없이 머리 위에 앉은 털임이 확인되었다. 기능이 없는 위장 털이었다. 그러니 전문상담사 충고대로 브러시로 빡빡 문질러 찌끼까지 뽑아버려야 국민 모발에 숨통이 트인다. 누구는 부정축재한 사람이 최씨 일가 하나뿐이 아니므로 환수는 법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교통경찰이 교통신호 위반 차량을 다 잡고 어부가 물고기를 다 잡나? 전두환 때도 특별법 제정해서 환수를 했는데 그건 뭐냐? 지금 청와대 언저리에 겉절이들은 형평에 입각해서 축재를 하고 자리를 차지했나? 민주주의의 목적은 형평이 아니라 사회질서를 세우고 정의를 구축하는 거 아니냐? 일벌백계는 하나를 벌하여 백이 준엄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럼 왜 국민적 정풍 운동을 벌이자는 건가. 그것은 과거 독재자들이 쓰는 상투적 수법 아니냐? 맞다. 과거에 그랬다. 그런데 과연 이런 병신5적, 위장모를 털어버린다고 한국이 다시 날 것인가가 문제다. 검찰, 청와대 참모진, 정부 공무원, 7대 재벌, 스포츠계에 불의한 권력에 맞서 대항한 사람이 너무 소수라는 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권력 빨대들은 일이 터지니 비루하게도 ‘모른다.’, ‘설마 했다’,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한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자를 괴뢰라고 부른다고 초등학교 때 배웠다. 그들을 믿고 세금을 냈고 내일은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나온 것이 머리 위에 뿌리 없이 앉은 위장 괴뢰모들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어릴 때부터 출세 지향만을 가르친 불구 교육 때문이냐, 친일파를 처단하지 않아서 민족정기가 뿌리부터 썩은 거냐, 부모부터 새치기하고 횡단보도 무시하고 어떻게 벌었든 벤츠 타면 위대한가. 선생님이 촌지 받고 교수가 성추행하고 사외이사는 거수기하고 정의에는 입 닫고 이익에만 입 열고 선량한 국민을 지키라 했더니 부정한 권력자만 지키는, 머리와 엉덩이가 뒤바뀐 권력수호 엘리트들 때문 아니냐? 그러니 국민들이 스스로 정풍운동, 도덕 재무장 운동을 해야 한다. 단, 위장 괴뢰모 다 처분한 후에 10년에 걸쳐서.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회를 방문한 가운데, 국민의당 당직자들이 퇴진 촉구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안 되겠니

새치기 하지 마라, 남 속이지 마라, 나쁜 놈 보면 나쁜 놈이라고 해라, 공부는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 선을 위한 것이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 아무리 나빠져도 60~70년대 보릿고개 시대로 가지는 않으니 쫄지 마라, 민생 전에 정의 있는 것 아니냐. 한국 국민의 오뚝이 같은 모공 저력을 믿어라, 위기에 강한 한국인을 믿어라. 쫄지 말고 브러시를 빡빡 문지르세요. 아시겠어요.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은 가장 저질스러운 자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 해서 그나마 정치에 관심을 갖고 야당을 밀어주면 판판이 골문 앞에서 이렇게 헛발질이니 이를 어쩌나. 제1야당 대표가 혼자 영수회담 하겠다고 했다. 사리당욕의 결과다. 미워도 다시 한 번 밀어줬는데 또 5~6명 잠룡들이 닭치다 나오고 숨 고르다 나오고 뒤로 빠졌다 나와서는 광화문 촛불숫자를 20만, 100만 세면서 뒤늦게 각각 사리당욕의 해법을 내놓는다. 잠룡인지 잡룡인지 모를 일이다.

붕어들도 아니고 어쩌면 그렇게 과거를 잘 잊는 건지. 말 좀 맞추면 안 되겠니, 이번엔 좀 한 명으로 밀어주면 안 되겠니. 그 한 명이 최소한 새누리 무속환자들보다는 낫지 않겠니. 그건 차별화가 아니라 분열이라고 하는 거다. 적들이 가장 바라는. 그대들, 이 나라를 밑에서부터 다시 세우려는 국민들 무서운 줄 알면 안 되겠니. 브러시를 들고 한 쪽으로 힘 모아 빡빡 문지르면 안 되겠니.[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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