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석탑 그늘에서]

경북 안동 하회마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반가(班家)의 하나인 풍산 류(柳)씨 집성촌이다. 북촌의 양진당과 남촌의 충효당은 그 역사와 집 됨됨이에서 쌍벽을 이루는 양반 가옥이다. 큼지막한 대청을 가진 본채에 사랑방·서실·별당 같은 문화적 공간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변의 서민 가옥과는 확연히 다르다. 두 집을 비롯해 마을 중심부 류씨들이 사는 기와집 주변에는 각성(各姓)바지의 초가가 원형을 이루어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양반 마을에 별신굿 탈놀이라는 일종의 서민 축제가 이어져 내려오고, 마을 입구에는 전수관이 지어져 정기적으로 공연과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탈춤이란 지배계층에 대한 피지배계층의 풍자와 해학을 생명으로 하는 조선 후기 대표적 민중예술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봉건적 신분질서가 어느 동네보다 완고했을 하회마을이 탈놀이 본산으로 자리잡은 데는 이유가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중 파계승마당 모습. ©문화재청

1970년대 대학가에는 탈춤 열풍이 불었다. 학교마다 탈춤반은 성황이었고, 교정에서 장단에 맞추어 탈춤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 탈춤 바람은 한순간에 사그러들고 만다. 탈춤 연구의 진전이 이루어지면서 ‘민중 의식의 발전에 따른 스스로의 저항’이라기보다 ‘양반층이 의도하거나 조작한 저항’이라는 시각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회마을과 탈놀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이루어진 배경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탈춤에 대한 한때의 열광은 지배계층의 허구성에 대한 풍자와 해학에 통렬한 비판정신이 담겨있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하회 별신굿 탈놀이 보존회의 홈페이지조차 “상민들은 탈놀이로 세상살이를 풍자하고 억눌린 감정을 거리낌없이 마음껏 발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분질서가 엄격했던 사회상으로 볼 때 탈놀이는 하회라는 양반마을에서 양반들의 묵인 아래 또는 경제적 지원 아래 연희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벌이는 축제’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곧 익명성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카니발을 비롯해 유럽에서 오래 전부터 벌어진 가면 축제가 바로 그런 성격이다. 카니발에는 프랑스식 표현으로 ‘광인들의 축제’(Fete des Fous)가 빠지지 않는다. 영미권에서는 ‘바보들의 축제’(Feast of Fools)라 부르는데, 이것이 더 실제 성격에 가까운 듯 하다. 이른바 ‘뒤집기 관행’이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서 보듯 신분이 다른 계층 사이에 일시적으로 허용된 일종의 ‘거꾸로 타임’이다.

인류가 가면을 쓴 흔적은 프랑스 아리에쥬 지방의 BC 1만 5000년 벽화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선사시대 가면과 변장은 그리스와 로마의 축제로 이어졌고, 계급 분화와 함께 ‘뒤집기 관행’, 곧 ‘거꾸로 타임’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세 기독교 사회에 접어들며 ‘뒤집기 관행’ 중심의 ‘가면 축제’는 퇴출될 수 밖에 없었는데, 교회가 카니발을 다시 허용한 것은 하회 탈놀이에서 보듯 피지배계층에 억눌린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부여하지 않으면 사회적 불안이 심화된다는 사실을 경험이 축적되면서 실감했기 때문이다.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한 대학교 조소과 학생들이 ‘최순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피지배층의 의지보다는 지배층의 의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된 탈놀이나 카니발은 글자 그대로 ‘바보들의 축제’다. 놀이의 주체가 피지배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배층이 조종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피지배층의 긴장을 이완시켜 정말 심각한 저항만큼은 막아보겠다고 한해 며칠정도의 ‘거꾸로 타임’은 눈감아 주는 ‘지배층이 고안한 안전장치’라는 성격이 짙다.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에서 벌어지는 촛불집회를 보면서 ‘바보들의 축제’를 떠올렸다.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퇴진을 압박한 것은 물론 평화적 시위를 만들어냈다는 뿌듯함마저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반면 청와대는 촛불집회를 국민이 ‘억눌린 감정’을 상당 부분 발산하는 계기가 됐다는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촛불집회 참여자가 늘어날수록 억눌린 감정을 발산하는 국민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역설도 성립한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촛불집회에 경찰이 어느 때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 ‘바보들의 축제’의 원리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다. 법원이 ‘시위의 성역’으로 여겨졌던 경복궁 남쪽 율곡로까지 집회 참석자들이 행진할 수 있도록 하고, 일부는 청와대 코앞에서 집회할 수 있도록 결정한 것도 매우 순수한 뜻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억눌린 국민 감정을 조금이라도 더 누그러뜨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퇴진 불가’를 공표하는 청와대 대변인의 모습을 보면서 우려했던 대로 박 대통령은 촛불집회를 ‘바보들의 축제’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새로운 정부의 조기 출범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

 문화재위원회 위원

 국립민속박물관 운영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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