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에 의한 국정농단이라는 참담함을 안겨준 2016년도 이제 불과 열흘 남짓만을 남겨두고 있다. 원숭이 해라서 그런 것일까? 병신(丙申)년 올 한 해는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도 큰 충격을 던진 사건들이 무척 많았다. 흔히 얘기하는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더이상 실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격동과 이변의 한 해’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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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영국이 지난 6월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했다. 브렉시트는 2차대전 이후 유럽 대륙을 지배해온 통합 분위기가 막을 내리고 분열의 시대가 시작됨을 알리는 서막이 됐다. 지난해 유럽을 강타한 대규모 난민 사태와 잇딴 테러에 대한 반발은 반난민, 민족주의 정서를 고조시켰다. 이달 초에는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자신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개헌이 부결된 데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도 EU에서 탈퇴하게 될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또 네덜란드 등 몇몇 유럽 나라가 영국에 이은 추가 EU 탈퇴의 후보들로 계속 거론되고 있다.

브렉시트로 혼란에 빠진 국제사회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지난달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것이다. 정치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트럼프가 기성 엘리트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는 대이변을 연출한 것. 막말과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 성격의 트럼프가 세계 경찰 역할을 맡아온 미국의 군통수권자가 됨에 따라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데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트럼프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전화통화를 하고 ‘하나의 중국’ 정책에 꼭 억매이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해 중국과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로의 회귀’를 내세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유지해온 아시아의 질서가 전혀 새로운 새판 짜기에 따라 돌변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 나토 등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하며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이 강력 반발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간 마찰·대립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어야 하는 한국으로선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이 이달 들어 미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마침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 연준은 내년에도 3차례 정도 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을 내비치며 초저금리 시대가 이제 종언을 고했음을 알렸다. 이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는 보호무역주의와 함께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세계 경제에 더욱 먹구름을 드리우는 불안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이미 신흥시장국가들로부터 자금 이탈이 시작되는 등 세계 경제가 출렁일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포커스뉴스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이라는 두 사건의 배후에는 모두 포퓰리즘의 대두라는 공통점이 자리잡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찬성파는 난민과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는 영국민들의 불만을 파고들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영국의 EU 탈퇴를 이끌어냈다. 트럼프 역시 세계화에 따른 무역 증대의 혜택에서 배제된 백인 노동자층의 불만 폭발에 힘입어 대다수가 승리할 것으로 점쳤던 클린턴을 제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포퓰리즘의 대두는 극소수 기득권층에게만 혜택의 대부분이 집중될 뿐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실질적인 삶의 향상을 가져다주는 데 실패한 세계화에 대한 분노와 공포, 엘리트층이라 믿어왔던 기득권층에 대한 의심과 불신 때문에 가능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을 이끌어낸 수백만 촛불 민심은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돼온 잘못들을 이제는 바로잡겠다는 우리 국민의 열망이 하나로 뭉쳐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국민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 때문에 참담함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의 빛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을 부른 국제사회의 포퓰리즘은 현재 처한 역경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 하고 극심한 분열과 대립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민자 배척이나 보호무역주의는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가져올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미래 세대에 더 큰 손실을 떠넘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10여일 뒤에 맞게될 2017년에는 이러한 포퓰리즘의 물결이 잠잠해질 것인가?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불행하게도 현재로서는 그럴 희망을 갖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유럽에선 네덜란드와 프랑스, 독일 등 주요 국가들에서 줄줄이 선거가 치러질 예정인데 프랑스의 국민전선(FN),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 극우정당들이 각국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유럽에서의 선거 결과가 향후 포퓰리즘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마약사범 척결을 내세운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등 전 세계의 포퓰리즘은 오히려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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