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집무공간인 청와대에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분야별 인재들이 상주하고 있다. 거기서 근무했거나 지금도 현직에 있는 사람 중에는 특히 육군 대장 출신이 3명이나 있다. 김장수(육사27기) 주중 대사와 김관진(육사28기) 국가안보실장, 박흥렬(육사28기) 대통령 경호실장 등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군 수뇌부를 형성했던 최고 엘리트들이다.

박 대통령을 보좌한 육군 대장 출신 김장수, 김관진, 박흥렬

김장수 대사는 육참총장과 국방장관을, 김관진 실장은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을, 박흥렬 실장은 육참총장을 각각 역임했다. 김 대사는 특히 이명박 정부 때는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가안보실장에 이어 주중 대사로 영전,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 300여명의 푸른 생명들이 진도 앞바다에 수장(水葬)되고 있을 때 그는 국가안보의 최고 사령탑인 국가안보실장의 직위에 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국민적 여론이 청와대 안보실을 겨냥해 올 때 김 실장은 “국가안보실은 재난 콘트롤 타워가 아니다”고 말했다. 두고두고 비난의 빌미가 된 이 말은 그의 안보관을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었다.

세월호 같은 대형 해난사고는 해양경찰이나 교통부 소관일 뿐 국가안보실은 오직 군사 분야만 다루는 곳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군사 일변도의 폐쇄적인 안보관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국회 청문회에서도 그는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를 증언하면서 대통령에게 ‘중대본(中對本 ·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가 보시라’고 건의한 뒤 자신은 ‘안보에만 집중했다’며 특유의 안보를 강조했다.

한 때 ‘꼿꼿 장수’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불과 2주전 자신이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 특파원들 앞에서 했던 발언을 번복했다. 당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선창(船窓)을 깨서라도 빨이 구출하라고 안보실장인 자신에게 질책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14일 국회 청문회에서 위원들의 심문이 집요하게 이어지자 ‘기억이 분명치 않다’며 한 발 물러섰다. 사실상 본인이 했던 말을 뒤집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번에 귀국한 뒤 곧바로 청와대에 가서 당시 그런 기록이 있는지 확인해 봤더니 자료가 없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를 잘 아는 한 예비역 장군은 박 대통령이 ‘선창을 깨서라도 구출하라’고 했다는 말은 아마 김 대사가 위기의 박 대통령을 구하고자 고심 끝에 생각해 낸 눈물겨운 헌사(獻辭)가 아닐까 생각된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장수, 세월호 사고 때 대통령 소재 확인하지 않은 이유 뭔가

그는 청문회에서 새누리당의 하태경 의원이 ‘세월호 사고 당시 누가 통영함을 출동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느냐’고 묻자 ‘그것은 안보실장의 보고감도 아니며 해군참모총장이 알아서 출동시키면 되는 것’이라고 답변해 비난을 받았다. 그는 “보고감이 아니라고 한 저의 말이 유가족에게 결례가 됐다는 윤소하 의원(정의당)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하고 유가족들에게 정식으로 사과도 했다.

김 대사는 또 세월호 당시 대통령의 소재를 몰라 최초 상황보고서를 청와대 본관 집무실과 관저 등 두 곳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것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고 문고리 3인방 중의 한 사람에게 전달됐다고 그는 증언했다.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의 소재를 모른다는 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군에서는 중대장 당번병도 중대장의 위치를 24시간 놓치지 않는 게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런데 육군 대장 출신인 그가 대통령의 현 위치를 몰라 두 곳으로 보고서를 보내놓고도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한다면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시스템인가.

그 때 박 대통령의 현 위치를 왜 경호실장에게 묻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경호실장은 대통령의 24시를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안보실장은 대통령의 위치를 자신의 후임 육참총장인 박흥렬 경호실장에게 확인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평소 대통령의 위치에 대해서는 깊이 알려고도 하지 말라는 특명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박근혜의 청와대에서는 그런 일이 일상화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차후 청문회에서 반드시 밝혀져야 할 문제 중의 하나다.

김관진, 사드 개발한 록히드 마틴에 미국 연수비 지원받았나

김관진 현 국가안보실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천안함 폭침사건(2010. 3. 26)을 계기로 김태영(육사29기) 장관 후임으로 발탁된 자타가 공인하는 전략가로 통한다. 독일 육사 출신이기도 한 그는 박근혜 정부로 바뀐 뒤에도 장관직을 그대로 유지, 최장수 재임을 기록하다가 김장수의 뒤를 이어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되었다.

‘레이저 눈빛’으로 유명한 그는 장관시절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원점을 타격하라’고 말해 군내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김 실장이지만 최순실과의 관계망에서 볼 때는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안민석 의원(더민주)에 따르면 최순실이 지난 6월경 미국의 군수업체인 록히드 마틴사 회장과 만났는데, 김 실장이 둘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2016.11.24. TBS 라디오 방송).

그러면서 안 의원은 김 실장이 합참의장을 마치고 미국에 2년간 연수한 적이 있는데 이때 체재비 등 경비 일체를 록히드사가 지원했다고 덧붙였다. 록히드 마틴은 지난 여름 국내 최대 이슈로 떠올랐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을 개발한 세계 최대 군수업체이다.

하지만 그 후 더 이상의 속보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안 의원의 주장이 사실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는지, 게이트에 포함돼 있는 많은 문제 가운데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안 의원의 주장이 맞는다면 그 역시 국회 청문회나 특검을 비켜가지는 못할 것이다.

박흥렬, 세월호 7시간 침묵 & ‘최순실’ 무단출입 방조 속사정 뭔가

최순실과 그 일당의 경내 출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박흥렬 경호실장이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도 경호실장은 익히 알고 있어야 한다. 청와대 조리장과 전담 헤어 디자이너까지 당시를 증언하고 나선 마당에 경호실만 입을 굳게 다문 채 국회의 현장조사마저 거부하고 있다.

대장을 청와대 경호책임자로 임용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 김인종 장군(육사24기)이 처음이었다. 직급도 실장이 아닌 처장으로 차관급이었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그냥 대장에 만족하지 않고 육군참모총장 출신을 장관급 경호실장에 임명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일이다.

경호실은 대통령의 신변보호는 물론 청와대의 보안까지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이번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본 청와대의 경호, 보안 시스템은 총체적으로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경호실은 최순실과 그의 측근들을 ‘보안손님’으로 분류, 청와대를 무단출입할 수 있도록 방조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박흥렬 경호실장도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국조특위 위원들에게 ‘보안손님은 경호실 소관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이 전했다. 경호실도 집권 초기에는 출입자 신원을 규정대로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안봉근 비서관이 경호실 간부에게 거칠게 항의한 뒤부터는 문고리 3인방의 요구대로 프리 패스를 해 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번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앞으로 있을 청문회와 특검에서는 적어도 다음 몇 가지 의혹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특히 청와대 핵심 요직에 있던 3인의 대장 출신 고위 공직자들은 국민과 역사의 편에 서서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안보실장은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위치를 정말 모르고 있었는가? 이것은 그날만의 일인가, 늘 있어왔던 일인가? 최초 상황보고서가 문고리 3인방을 거쳐 최종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를 왜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일회적인 것인가, 통상적인 것인가?

세월호 7시간의 비밀을 쥐고 있는 경호실장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고, 현장 조사에도 응하지 않은 진짜 속사정은 무엇인가? 또 어떤 경위로 최순실 등 다수의 사인(私人)들을 사전에도 없는 ‘보안손님’으로 분류하게 됐고, 문고리 3인방과는 어떤 경위를 거쳐 타협하게 됐는가?

앞으로 있을 청문회와 특검 등에서 이들은 다른 민간 공직자들과는 달리 용기 있는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비록 늦었지만 진실을 밝힘으로써 정의를 세울 수도 있고, 여의치 않을 경우 직위를 걸 수도 있을 것이다. 육사시절 외웠을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는 사관생도 신조를 실천하는 용기가 보고 싶은 오늘이다. [오피니언타임스=김준범]

 김준범

 (주)대한공론 상임 고문

 전 국방부 국방홍보원 원장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