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연의 사(死)사로운 생각]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서로 원수인 가문에서 태어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거듭된 오해로 인해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끝에서 줄리엣은 로미오와 도망가기 위해 죽음을 가장하고 잠시 의식을 잃는다. 이를 본 로미오는 줄리엣의 무덤 앞에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줄리엣은 이미 죽어버린 로미오를 보고 슬퍼하다 단도로 자신을 찔러 그를 따라간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16세기에 쓰인 작품이다. 당시 작품들을 살펴보면 연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존재할 때 극단적으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꽤나 많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야기에 열광했고 그들의 감정에 깊게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요즘 작품들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좌절하고 죽음을 택하기보다는 새로운 사랑을 통해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며,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올리비아 핫세와 레너드 위팅이 출연한 1968년작 로미오와 줄리엣 스틸컷. ©네이버 영화

왜 이러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20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더 깊고 뜨거운 사랑을 했기 때문일까. 사랑을 그리는 방식이 이토록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전의 많은 문학과 예술작품에서는 사랑을 상실한 그들이 죽음을 택하게 했을까? 그들이 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사랑과 만남의 기회’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주어진 기회가 많지 않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한 번의 실패로도 큰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더 이상의 기회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미래 불확실성은 당사자로 하여금 실패를 극복하기보다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끔 밀어붙이기도 한다. 사랑을 잃을 경우 다음 사랑의 기회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당시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이성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따라서 남성과 여성이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공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한 사람이 일생동안 활동하는 장소 역시 제한적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 공동체 안에서 형성된 그들의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대상을 바꿔가며 연애 혹은 사랑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공간적, 거리적 한계로 인해 당시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흔한 경험은 분명히 아니었을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당대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역시 사람들의 자유로운 연애 기회를 박탈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의 정조는 여성의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여성의 ‘연애’경험은 곧 처녀성의 상실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여성에게 부정적 낙인으로 작용했다. 한 번의 사랑이 이뤄지지 못하고 실패하였을 때, 여성은 그 뒤에 꼬리처럼 따라올 세간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떨까.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을 통해 지구 반대편 사람과 소통하는 시대다. 자연히 새로운 사랑이 계속 찾아올 가능성은 훨씬 높아졌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 뿐 아니라 공적인 장소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게 했다. 또한 도시의 발전은 사람들이 밀집되어 살도록 함으로써 그들 사이의 접촉 빈도를 높여놨다. 심지어 과학기술의 발달은 국경을 넘나든 사랑까지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이제, 자리에 앉아 인터넷 채팅 혹은 채팅 앱을 통해 익명의 상대를 대상으로 대화를 하고 만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성의 과거 연애 경험은 더 이상 다음 연애에 있어 족쇄로 작용하지도 않는다.

시대의 발전이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획기적으로 증가시켜 준 것이다. 다른 상대를 만날 기회가 늘어난 것이 곧 사랑의 깊이가 얕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회의 증가로 인해 우리는 사랑의 상실로 인한 좌절감을 경험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로미오는 원래 ‘로잘린’이라는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보다 아름다운 여인은 없다며 상사병에 끙끙 앓던 로미오는, 로잘린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단 희망을 가지고, 캐퓰릿가의 무도회에 참석한다. 바로 그곳에서 로미오는 새로운 여인, 줄리엣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통해 로잘린을 잊은 것처럼 다른 누군가를 통해 줄리엣을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그래서 섣불리 죽음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해피엔딩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있었을지 모른다. [오피니언타임스=박자연]

박자연

정답을 맞추려고도, 찾으려고도 하지 말자가 인생의 모토입니다. 다양한 죽음의 형태를 통하여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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