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40대 초반의 미술작가 권오상 씨는 사진을 활용한 입체 작품으로 주목받는 미술가의 ‘영스타’다. 인물을 비롯해 특정 대상을 부분부분 나눠 촬영한 사진들을 이어붙인 특유의 ‘사진 조각’은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조각이라면 대리석, 나무, 브론즈 소재의 육중한 작품을 떠올리지만 그의 사진조각은 재료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가볍고 이동도 수월하다.

권오상 작가의 작품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지난 연말 권씨를 만나 조각 전공자로서 사진을 활용하게 된 작업의 배경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미대 조소과에 입학한 1994월 3월 전공 수업 첫날, 작업실에서 무겁고 먼지와 쓰레기가 심한 소재를 다루다 보니 순식간에 주변이 엉망진창이 됐다고. 그때부터 혼자서도 옮기기가 수월하고 안전하며 깔끔하게 먼지가 덜 나는 작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익숙한 사진세대답게 그는 사진 인화지를 소재로 가벼운 조각을 실험했다. 내부가 텅 빈 사람 전신상 크기의 사진조각을 처음 발표한 것이 1998년 대학 3학년때. 그후 20년여 ‘데오도란트 타입’, ‘플랫’, ’뉴 스트럭쳐’, ‘릴리프’등 사진조각을 변주시켜왔다.

권씨는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조각 작업의 특성상 선후배간에 서로 돕다 보니 작업 자체뿐아니라 인간 관계도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다고 했다. 신입생 때부터 작품 사진을 찍어주며 한두 해 선배들과 친해졌고, 선배 전시를 거들다가 학생시절 일찌감치 전시에 참여하는 등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예술 분야에서 타고난 재능과 성실성도 중요하지만 권씨의 경우처럼 타인이나 다른 장르와의 만남을 통해 작품 세계를 확장시키고 예술적 성취를 이뤄낸 사례들이 적지 않다.

클래식음악의 두 스타 연주자인 피아니스트 손열음-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씨의 경우도 그랬다. 두 연주자는 국내외에서 독주자로 활발하게 연주 활동하면서 듀오 무대를 병행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첫 듀오 음반 ‘슈만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와 로망스’를 발매하며 전국 순회 연주회를 펼쳤다.

손열음과 클라라 주미 강이 지난해 11월 발매한 ‘슈만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와 로망스’ 음반 ©네이버쇼핑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였던 손씨는 10여년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시절 피아노 전공자로서 피아노와는 또 다른 바이올린에 깊이 빠져 바이올린 전공자들의 반주를 도맡았다. 어려서 음악영재로 특출난 피아노 연주 실력을 드러냈던 손씨가 반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든지, 지도교수가 전공인 피아노에 소홀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을 정도.

2010년 인디애나 콩쿠르와 센다이 콩쿠르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씨도 비슷하다. 강씨의 부모가 딸의 영어 이름을 작곡가 슈만의 아내였던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의 이름을 따서 짓기도 했지만 강씨의 피아노 사랑도 남다르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다른 악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바이올린에만 몰두하면 작곡가의 생각에 가까워질 수 없다며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할 때 피아노 악보까지 한꺼번에 보며 음악을 연구한다.

자신의 전공에 몰두하는 시간도 부족한데 다른 사람의 작업을 거든다는 것, 특히 연주 일정이 잇따른 스타 독주자라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또 다른 길이 열리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쪼개 누군가를 돕고 협업하는 가운데 예술 세계가 풍성해짐을 이들은 일깨운다. 전공 외에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집중과 몰입을 방해하는 장벽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열린 마음으로 타인에 맞추고 때로 타인을 돋보이게 받쳐주는 가운데 오히려 예술적 성취가 확장 및 진화했다.

누군가와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이 스스로를 꽃피우는 과정임을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 씨도 말했다. 정씨는 2009년 연말 성악가 연광철 씨의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 나그네’ 리사이틀 때 피아노 반주를 맡아 “평생 부모와 스승, 누나 형 아내 등 누군가를 따라 가는 팔로워(follower) 기분으로 살아왔다”고 했지만 세상은 그를 팔로워 아닌 마에스트로라 부른다. 당시 그는 “무대 위 성악가를 받쳐주거나 보듬어 안으며 밸런스를 맞추는 한편 피아노가 너무 작기만 해선 안되고 가끔 드라마틱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반주자의 역할을 말했다.

연말연시 온 나라를 강타하고 있는 지도층와 그들의 뒤엉킨 관계의 빛과 그림자를 지켜보면서 조화로운 인간관계, 바람직한 협업을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