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앞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야 할 새해이지만 희망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대통령 탄핵 심판에 따른 국정 공백 속에 정치는 제 기능을 못한 지 오래고 계속되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제 역시 회복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국제정세도 앞날을 점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7일 영국이 유럽연합(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동시에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발표했다. 오는 20일에는 어디로 튈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마침내 대통령으로 취임해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다. 트럼프의 취임은 앞으로 미국의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불확실성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이 희망을 찾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17일(현지시각) 영국이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동시에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단행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게티/포커스뉴스

미국의 정책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미국 정부의 계속성이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회를 비롯해 장관 등 자체 견제 기능을 갖춘 미 정부 시스템이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 행동을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가 취임하기 전부터 트럼프 본인과 장관 내정자 간 의견 차이가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내정자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내정자는 모두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북한을 ‘적’으로 규정했었다. 그러나 백악관 대변인으로 내정된 숀 스파이서는 이와 관련, 장관 내정자들의 의견과 관계없이 결국의 트럼프의 생각에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국무장관·국방장관이 서로 다른 발언을 쏟아낸다면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 일관성을 찾을 수 없게 될 수밖에 없다.

영국의 하드 브렉시트 발표와 트럼프의 취임은 전통적인 국제 동맹관계에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메이 영국 총리는 협상을 통해 EU와도 협력을 계속하면서 영국에 유리한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희망대로 협상이 이뤄질지 의문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EU 추가 이탈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유럽의 주요 국가이던 영국이 EU에서 탈퇴함에 따라 과거처럼 유럽 전체가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때로는 EU와 영국이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다.

여기에 트럼프는 2차대전 이후 서방의 결속에 중요 역할을 맡았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폄하하는 한편 영국의 EU 탈퇴를 훌륭한 결정이라고 추켜세우면서 EU를 탈퇴하는 나라가 추가로 나올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자 EU도 반발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의 운명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으며 올랑드 대통령도 “유럽은 앞으로도 미국과의 협력을 추구할 것이지만 전략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그마르 가브리엘 독일 경제장관은 “우리는 약하지도 않고 (미국에)뒤쳐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우려되는 국제 마찰은 비단 유럽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에 대한 지지 입장으로 아랍 국가들이 미국에 등을 돌려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것이라든지, 중동 지역에 새로운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등 트럼프의 등장은 국제관계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미국과 중국의 정면충돌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게티/포커스뉴스

하지만 가장 큰 걱정은 중국과의 갈등이 확산되면서 미중 정면충돌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전부터 중국에 높은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중국 때리기에 나섰었다. 중국의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를 둘러싼 통상 마찰과 남중국해의 섬들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항행의 자유를 내세운 미국의 대립, 대만과의 관계에서 그동안 미·중 관계의 근간이었던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계속 인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갈등, 북핵 해결에 대한 중국의 미온적 대처에 대한 미국의 불만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 등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은 아직 미국을 완전히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국력 및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에 있어 미국과의 격차를 상당히 좁힌 것으로 스스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7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비난하면서 앞으로는 미국 대신 중국이 자유무역을 지키고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중국의 자신감이 뒷받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미국과 중국 간 대결은 한동안 해결을 위한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계속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내는 것도 힘들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과 중국이 맞설 경우 한국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특히 사드 배치를 둘러싼 양국의 마찰에서 한국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치밀한 대응이 필요한데 현 국정 공백 속에 제대로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 역시 현명한 대처가 필수인데 어떤 논리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트럼프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5%의 수입관세를 일괄적으로 매길 것이라고 밝히는 등 미국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말들이 모두 현실로 이뤄질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비롯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백지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 거침없는 보호무역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 가능성과 국경 통제 강화, 노동력의 자유 이동 규제 등 세계화의 시대가 끝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해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미국의 대선 투표가 당초 예상과 다른 결과로 세계를 큰 충격 속에 빠트린 것은 오랫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내재돼 왔던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며 정치에 적극 참여한 때문이다. 이 역시 미국과 영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개헌 추진이 무산되고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 극우 정당들이 세력을 확산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서도 촛불집회를 통해 나타난 국민들의 불만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 참여 증가는 이를 통해 오래 해결되지 못했던 불만을 해소하는 긍정적 효과도 갖는다 할 수 있다.

세계화 시대가 끝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관련해서도 다국적 자본에 의한 착취 극대화,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 심화와 같은 세계화에 따른 부작용을 바로잡는 한 과정일 뿐 세계화의 흐름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 속에 이래저래 우울한 연초이지만 불확실성의 구름이 무한정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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