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석탑 그늘에서]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밝힌 글을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성서연구가가 계시다. 필자가 불교 문화 유산에 관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써서 그런지 불교 친화적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아마도 기독교 친화적인 인간으로 ‘개조’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은가 보다. 어쨌든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나름대로 해석한 장문의 글을 보내오는데 가끔 읽을만한 것이 있다.

최근에 보내온 글은 ‘지옥은 정말 뜨거운 곳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종교적 확신과 열의에 가득찬 글은 “종교마다 약간 다른 묘사를 하지만 지옥불에 대한 교리가 없는 종교는 거의 없다”말로 서두를 장식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종교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많은 교의 교리를 일일이 알 턱이 없으니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동서양 종교를 대표하는 불교와 기독교는 분명 극락 혹은 천당과 지옥이라는 개념을 공유한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의 관음보살과 멀지 않은 혜화동성당의 성모마리아. 둘 다 조각가 최종태의 작품으로 쌍동이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독실한 천주교신자로 가톨릭 조각의 대부인 최종태는 법정 스님의 요청으로 길상사 관음보살을 조성했다. 최종태는 궁금증을 갖는 사람들에게 “땅에는 나라도, 종교도 따로따로지만 하늘로 가면 경계가 없다”고 했다. ©서동철

천당과 지옥 뿐만이 아니다. 기독교의 성모마리아와 불교의 관세음보살의 역할은 완전히 같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관세음보살을 일반적으로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것도 자비, 곧 사랑이 모성(母性)의 상징인 탓만은 아닐 것이다. 두 종교가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 받은 결과라는 것을 불교미술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넓혀갈수록 확신하게 된다.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불교의 출발과 기독교의 출발 사이에는 500년 남짓한 시차가 있다. 게다가 서양 기독교 문화의 중심지와 불교 문화의 중심지 사이에는 시간적 거리 이상의 공간적 거리가 존재한다. 아마도 이것이 불교와 기독교를 상호영향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이질적인 종교로 인식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불교는 단선적인 종교가 아니다. 불교를 상징하는 단어를 꼽아보라면 ‘깨달음’과 ‘극락’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깨달음과 극락은 하나의 종교로 묶기에는 너무나도 닮은데가 없는 개념이 아닐까 싶다. 매우 거칠게 표현하면 깨달음이 소승불교를 상징한다면, 극락은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아칸논(觀音). 일본에도 천주교 탄압의 시대가 있었다. 신자들은 단속을 피해 불교의 관음보살을 닮은 성모마리아상을 만들어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관음보살의 이미지와 성모마리아의 이미지는 이렇듯 닮은꼴이다. ©일본 나가사키 26순교자박물관

그런데 기원전 5세기 석가모니의 입멸(入滅) 이후 줄곧 불교는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근본불교, 즉 소승불교의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고, 모두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승려가 되어 깨달음을 위한 고행의 길로 갈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인 반면 깨달음을 생각조차 해본적 없이 세상을 마무리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러니 작은 수레보다 큰 수레에 모두 태우고 가자는 것이 대승불교다.

이렇듯 ‘커다란 수레’를 만들려면 새로운 교리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기독교를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불교사는 대승불교의 교리가 완성된 것을 1세기 이후로 본다. 선업(善業)을 쌓으면 극락에 간다는 정토사상, 관세음보살처럼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 보살이라는 개념도 도입됐다. 불교는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간다”고 가르치는 기독교를 벤치마킹해 “아미타불을 되뇌이면 서방정토 극락에 간다”는 교리를 완성한 게 아닌가 싶다.

근거는 이렇다. 불상을 비롯한 불교미술의 시원(始源)을 이야기할 때 언급할 수 밖에 없는 지명이 간다라다. 인도 서북부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와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 일대를 가리킨다. 간다라는 BC 327년 그리스의 고대왕국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됐다. 마케도니아군은 곧 물러났지만, 간다라에는 그리스인 도시가 여럿 생겨났다. 이곳에서 인도 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융합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부처의 호위무사로 변신한 그리스신화의 주인공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를 무사라기 보다는 학자풍으로 조각해 놓았다. 그리스·로마 문화와 인도의 불교 문화가 간다라에서 어떻게 융합됐는지 보여준다. ©1세기 간다라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간다라에서 물리적인 문화의 융합만 일어났을 리는 없다. 생활양식의 융합에서부터 사상·종교의 융합까지 다양한 융합이 이루어졌으리라는 것은 상식이다. 알렌산더 대왕의 동정(東征) 루트는 이미 그리스·로마와 서남 아시아를 잇는 문물 교류의 중요한 통로였다. 중동의 기독교 발상지도 당연히 이 동서교통로에 속해 있었다. 이 지역에는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유일신 개념을 가진 종교가 번성해 있었고, 각종 교리가 간다라를 거쳐 인도에도 전해졌을 것이다.

성철 스님은 생전 법문에서 “중들이 극락이니 지옥이니 하고들 있지만 모두 거짓말”이라는 ‘폭탄 발언’을 하기도 했다. 불교의 본질은 깨달음일 뿐 극락이나 지옥이라는 것은 방편가설(方便假說)이라는 것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근기(根氣)가 낮은 사람까지 배척하지 않고 끌어안고자 지어낸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성철 스님이 살아계셨다면 이런 개념을 기독교에서 끌어왔을 것이라는 필자의 설명에 “그럴 수도 있었을 거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인정한다고 불교가 기독교의 하위 종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닮은꼴 교리를 갖고 있는 기독교와 불교, 특히 대승불교는 이질적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불교가 사실상 ‘베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것이다. 지금 필자는 분명 불교와 가깝지만 기독교에도 깊은 애정과 존경을 갖고 있음을 알리고자 이 글을 쓴다. 살아있을 때 천당이냐 극락이냐를 놓고 싸우다, 죽은 뒤 같은데서 만나 서로 민망해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

 문화재위원회 위원

 전곡선사박물관 운영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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