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대중가요 독해영역➅] 최백호 <애비>

“그래 그래 그래 너무 예쁘다
새하얀 드레스에 내 딸 모습이
잘 살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애비 소원은 그것뿐이다”
-최백호 <애비>

최백호의 <애비>는 결혼하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애절한 마음이 담긴 노래입니다. 저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을 일이 없는 아들놈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아버지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애비’라는 단어는 괜스레 사람 마음을 이상하게 만들어놓습니다.

얼마 전 집에서 책장을 정리하던 중에 우연히 군 복무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편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외롭고 낯설고 막막했던 훈련병에게 유일한 낙은 편지였었죠. 낯간지러운 표현과는 거리를 두는 보통의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솔직히 표현하셨습니다.

편지 사서함 ©픽사베이

“남자인 아빠도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데, 엄마는 오죽하겠나 싶다.”

남들 다 가는 군대지만 자기 자식이 가면 또 다른 것이겠지요. 눈물까지 흘리셨다고 하니, 당시 저도 참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기어다니고 말을 시작하고, 유치원에서부터 대학 들어갈 때까지 순간순간의 여러 시간들… 아빠가 이 세상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시간들이었건만, 그래도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한국사회에서 부모의 생각에 반기를 드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은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자상한 아빠였고,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배울 점이 많은 어른이자 귀감이 되는 인생 선배였습니다.

4년 전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상을 치른 후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는 제게 “너는 좋겠다. 엄마 아빠 다 있어서”라고 말하셨습니다.

제게는 늘 어른으로만 인식됐던 아버지의 아이 같은 말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버지의 눈물도 할아버지 장례식 때 처음 봤습니다. 손자로서 할아버지를 다시는 못 뵌다는 상심보다 아버지의 슬픔을 지켜보는 게 솔직히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픽사베이

“아장 아장 걸음마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자라 내 곁을 떠난다니
강처럼 흘러버린 그 세월들이
이 애비 가슴속엔 남아있구나”
-최백호 <애비>

‘강처럼 흘러버린 세월들’이 비단 아버지 가슴속에만 남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국문학자 박동규 교수는 수십 년 전 자신의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대학에 다니는 나를 데리고 구두를 사러 갔을 때 나는 발에 맞는 구두를 이것저것 뒤져서 겨우 골랐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앞장선 아버지의 구두가 눈에 띄었다. 뒤축이 절반은 무너지고 덜컥거리며 발뒤꿈치가 보일 만큼 헐렁거리는 낡은 아버지의 구두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박동규 교수가 “아버지 구두도 낡았는데요” 하자 그의 아버지는 웃으며 아들에게 말합니다.
“나이 먹은 이의 구두는 잘 닳지 않는다.”
‘나이 먹은 이의 구두’를 신으며 아들의 손을 꽉 잡아줬던 이 아버지는 박목월 시인입니다. (박목월·박동규 <아버지와 아들> 中)

©픽사베이

아버지의 구두를 자세히 본 기억이 있나요? 언제 구매한 건지, 얼마나 낡았는지 대강이나마 짐작이 되시나요? 부끄럽게도 저는 전혀 감이 안 옵니다.

훈련병에게 보낸 아버지의 편지는 아래와 같이 끝이 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시간 많이 가지자꾸나. 똑똑하고 반듯한 내 아들이…너무 보고 싶구나. 아빠.”

부족하기만 한 저를 “똑똑하고 반듯한 내 아들”이라고 과분하게 표현해주시는 사랑하는 아버지께 구두를 선물로 사드리려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신발장으로 고개를 돌려 봅시다.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석혜탁

 대학 졸업 후 방송사에 기자로 합격. 지금은 모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대학 연극부 시절의 대사를 아직도 온존히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낭만주의자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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