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대중가요 독해영역➅] 최백호 <애비>
“그래 그래 그래 너무 예쁘다
새하얀 드레스에 내 딸 모습이
잘 살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애비 소원은 그것뿐이다”
-최백호 <애비>
최백호의 <애비>는 결혼하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애절한 마음이 담긴 노래입니다. 저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을 일이 없는 아들놈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아버지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애비’라는 단어는 괜스레 사람 마음을 이상하게 만들어놓습니다.
얼마 전 집에서 책장을 정리하던 중에 우연히 군 복무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편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외롭고 낯설고 막막했던 훈련병에게 유일한 낙은 편지였었죠. 낯간지러운 표현과는 거리를 두는 보통의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솔직히 표현하셨습니다.
“남자인 아빠도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데, 엄마는 오죽하겠나 싶다.”
남들 다 가는 군대지만 자기 자식이 가면 또 다른 것이겠지요. 눈물까지 흘리셨다고 하니, 당시 저도 참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기어다니고 말을 시작하고, 유치원에서부터 대학 들어갈 때까지 순간순간의 여러 시간들… 아빠가 이 세상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시간들이었건만, 그래도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한국사회에서 부모의 생각에 반기를 드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은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자상한 아빠였고,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배울 점이 많은 어른이자 귀감이 되는 인생 선배였습니다.
4년 전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상을 치른 후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는 제게 “너는 좋겠다. 엄마 아빠 다 있어서”라고 말하셨습니다.
제게는 늘 어른으로만 인식됐던 아버지의 아이 같은 말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버지의 눈물도 할아버지 장례식 때 처음 봤습니다. 손자로서 할아버지를 다시는 못 뵌다는 상심보다 아버지의 슬픔을 지켜보는 게 솔직히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장 아장 걸음마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자라 내 곁을 떠난다니
강처럼 흘러버린 그 세월들이
이 애비 가슴속엔 남아있구나”
-최백호 <애비>
‘강처럼 흘러버린 세월들’이 비단 아버지 가슴속에만 남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국문학자 박동규 교수는 수십 년 전 자신의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대학에 다니는 나를 데리고 구두를 사러 갔을 때 나는 발에 맞는 구두를 이것저것 뒤져서 겨우 골랐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앞장선 아버지의 구두가 눈에 띄었다. 뒤축이 절반은 무너지고 덜컥거리며 발뒤꿈치가 보일 만큼 헐렁거리는 낡은 아버지의 구두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박동규 교수가 “아버지 구두도 낡았는데요” 하자 그의 아버지는 웃으며 아들에게 말합니다.
“나이 먹은 이의 구두는 잘 닳지 않는다.”
‘나이 먹은 이의 구두’를 신으며 아들의 손을 꽉 잡아줬던 이 아버지는 박목월 시인입니다. (박목월·박동규 <아버지와 아들> 中)
아버지의 구두를 자세히 본 기억이 있나요? 언제 구매한 건지, 얼마나 낡았는지 대강이나마 짐작이 되시나요? 부끄럽게도 저는 전혀 감이 안 옵니다.
훈련병에게 보낸 아버지의 편지는 아래와 같이 끝이 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시간 많이 가지자꾸나. 똑똑하고 반듯한 내 아들이…너무 보고 싶구나. 아빠.”
부족하기만 한 저를 “똑똑하고 반듯한 내 아들”이라고 과분하게 표현해주시는 사랑하는 아버지께 구두를 선물로 사드리려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신발장으로 고개를 돌려 봅시다.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석혜탁
대학 졸업 후 방송사에 기자로 합격. 지금은 모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대학 연극부 시절의 대사를 아직도 온존히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낭만주의자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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