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화의 참말전송]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이별은 늘 곁에 있는 무서움”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무서움. 그것도 늘 곁에 있는 무서움. 그 엄청난 정의를 나는 이별 앞에 붙였다.

이별!
서로 갈리어 떨어짐.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이런 해석 앞 괄호 속엔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할 일로 해서’ 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전제는 당위성이다. 그렇다면 이별은 자의든 타의든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할 일’이 당연하게 벌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별이 왜 내겐 늘 곁에 있는 것 같았을까. 형제 없는 무남독녀로 태어나 대학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병약한 어머니와 단 둘이 살며 나는 늘 조마조마했었다. 어머니마저 어느 날 세상에 없다면, 그것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할 상황이 된다면, 이 세상은 나 혼자 서 있는 벌판이 되리라… 그때부터 ‘벌판’은 내가 살아내고 있는 모든 시간의 화두가 되었다.

©픽사베이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애착의 관계가 늘어날수록 점점 넓어지던 벌판의 크기. 커지는 벌판이 너무 버거워 세상을 향해 차가움과 무심함으로 무장하고, 극소수의 사람들과의 관계만 허용했던 세월을 살아온 것도 언젠가 닥치게 될 이별이 무서워서였다.

부딪치는 그 무엇 하나 없이 황량하기만 한 벌판, 당연히 메아리도 돌아오지 못하고 퍼져나가기만 하다가 이윽고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사라짐이 무서웠다. 사라짐… 모양이나 자취가 없어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도 끝내 다시는 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사라진다는 것! 이별은 내게 그런 거였다. 나를 벌판에 세우고 또 나를 사랑한 사람들을 벌판에 세우는 그 어떤 시간… 그래서 무서웠다.

벌판… 그런데, 그렇게 무서웠는데, 지금 나는 벌판에 서 있다. 그것도 사방 길이와 넓이를 환산할 수 없는 무주공산 같은 벌판 한가운데에 서 있다.

낮과 밤도 없고 천둥이나 폭우도 없으며 바람은 물론 내 숨소리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어떤 생면부지 세상이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났다.

작년 8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토록 무서워했던 이별을 그렇게 나는 기어이 맞아야 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할’ 이유를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으로 내 앞에 드러냈다. 그날 이후 내가 서 있는 벌판엔 지푸라기 하나 날아오지 않았다. 대체불가인 어떤 사람, 어떤 인연의 사라짐 앞에서 비로소 이별을 실감하는 나날은 그렇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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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는 동안 소소한 이별이야 어찌 없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얕은 관계였다 해도 나는 상대야 알든 모르든 그가 있던 시간을 최대한 선한 마음으로 보내기 위해 나름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져왔다. 조용해졌으며 조용한 만큼 홀로 아팠다. 그러면서 이별은 역시 무섭다고 이별에 대한 내 정의에 확신을 더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죽음으로 나를 떠났다. ‘늘 곁에 있는 무서움’이던 이별의 모습을 어머니는 죽음으로 내 앞에 펼쳐놨다. 곁에 있는 무서움이 아니라 무서움이란 핵 한복판에 나는 던져졌다. 중심은 적막했다. 슬픔도 그리움도 외로움조차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비로소 이별이란 것도 감정이 낳는 감상의 하나라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어머니의 죽음과 그에 따른 부재, 그렇게 두려웠던 이별의 실체 앞에서 나는 이름 지어 붙일 수 있는 어떤 감정도 사치요 허영이라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제를 깔거나 수식을 붙이면 모든 감정은 위태로워진다. ‘늘 곁에 있는 무서움’이라고 이별을 명명했던 데서 나는 오랜 세월 벌판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형(刑)을 살아왔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 이후 비로소 그 무서운 벌판에 서 보니 6개월이 지난 지금 지평선 저 끝에 서 있는 또 한 사람, 아득하게 정말 아득하게 어머니가 보인다.

©픽사베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상황들 중에 내겐 가장 무서웠던 이별. 그것도 생사를 가르는 이별!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어머니가 나를 떠났는지, 내가 어머니의 삶과 시간에서 떠나왔는지, 그것도 아니면 어머니와 내가 공모하여 서로를 떠났는지… 아니 우리는 정말 이별한 것이 맞는지, 어머니 살아계실 때는 아주 귀한 개체였던 어머니가 지금은 하루 온 종일 내 안에 서 있는데, 거리가 너무 멀다 하지만 내가 나이 들어감과 함께 그 거리는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을 텐데, 이것을 이별이라 부를 수 있는지…

결국 이별이란 만남의 휴지기라는 생각이 건져 올려진다.

이제는 이별과 이별하려 한다. 벌판의 한복판에서 나보다 먼저 당도해 서 있던 어머니를 나는 분명히 보았다. 이별은 늘 곁에 있는 무서움이 아니라 똑같은 그리움으로 벌판에서 마주볼 사람을 세우는 일!

어머니의 유해를 안고 안치소로 향하던 그 날, 식어가는 항아리를 안고 눈도 뜰 수 없었던 그날 이후, 흐르는 날수만큼 무수히 많은 어머니가 내 벌판에 나와 함께 서 있었다.

이별!
이제는 이별과 이별 할 때다! 

그날 이후
쉰도 훌쩍 넘은 나이든 딸은
살아가는지 살아지는지 알 수 없는
벌판 위 시간을
긴 초침이 되어 돌고 있다

세상의 말은 모두 자취를 감춰
눈 뜨고 눈 감을 때마다
태초의 말이었던 엄마만 부르지만

늘 허방을 딛는 차가운 내 두 귀

엄마... 하고 부르면
그래, 내 딸... 하며
내가 한 말보다 꼭 두 배는 긴 말로 대답하던 엄마

하루 종일 엄마... 엄마... 길게 많이 부르며
천년동굴처럼 온몸을 말아
엄마의 대답을 품으려 해도
이제는 흐릿한 숨소리조차 들려주지 않는다

그날 이후
서른이 된 아들을 가지고도
딸의 이름으로는 아직도 핏덩이인 나는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마지막 젖힘으로 펴
온 세상 구석구석
만 개의 엄마를 만들어 세운다

그러나
새벽이고 한낮이고 한밤중 억지 잠 속조차
더 두꺼워지는 생면부지의 세상

엄마는 어디 있는가

오늘
엄마를 찾아
용미리, 아득한 그곳에 가는 날

꼭 한 발자국 앞 하늘에
국화 꽃잎 닮은 가는 구름떼가 보인다
속도도 방향도 내 보폭을 따르는 한 떼의 바람도 분다

만 개의 엄마가 나를 맞는다

그날 이후
엄마는
용미리에 산다

-서석화 詩 <엄마의 집> 전문
*용미리: 경기도 파주 추모 공원이 있는 지명

 서석화

 시인, 소설가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 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저서- 시집 <사랑을 위한 아침><종이 슬리퍼> / 산문집 <죄가 아닌 사랑><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당신이 있던 시간> /  장편소설 <하늘 우체국>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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