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여섯 차례의 대선후보 TV토론이 끝났다. 토론이 끝날 때마다, 각 후보캠프는 물론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에서 득과 실을 따졌다. 실제로 TV토론으로 지지율이 놀라간 후보도 있고, 반대로 떨어진 후보도 있다. 그것이 투표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지만, TV토론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갈수록 정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우리나라 언론의 행태에서 TV토론은 그나마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선거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TV토론은 어떤 편집도 없이 여러 방송이 생중계하기 때문이다. 신문들 역시 우선 지상중계로 토론 내용을 가능한 있는 그대로 전한다. 물론 해석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이후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지만 그 ‘현장’을 이미 직접 목격한 유권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TV토론의 가장 큰 목적은 유권자들에게 후보자들의 공약을 자세히 전달하고, 서로 비교 평가하는 기회를 제공해 선택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미디어선거 시대에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공약과 자질을 직접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거리유세, 인터넷, 공보물도 있지만 그 역할이 미미하다. 거리유세는 시끄럽기만 하고, 인터넷은 노년층에게 무용지물이고, 집으로 배달되는 공보물은 뜯어보기조차 않는다.

19대 대선을 일주일 앞둔 2일 마지막 TV토론회를 앞두고 주요 정당 대선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문재인, 홍준표, 유승민, 심상정, 안철수 대선후보. ©포커스뉴스

부동층, 이성적이고 냉정하다

그래서 더욱 TV토론을 기다렸다가 열심히 본다. 누구보다 아직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못하거나, 결정했지만 바꿀 수도 있는 유권자들이. 이들을 부동층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모욕적이기도 하다. 부동(浮動)이란 둥둥 떠돌아다닌 다는 얘긴데, 여기에는 자기 판단이나 신념이 없다는 부정적 어감이 들어있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정파를 벗어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유권자들이다.

후보자들이 TV토론에서 목표로 삼고 있는 대상 역시 이들이다. 얼마나 자신의 자질과 공약을 잘 드러내 이들을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미 후보를 확고하게 결정한 유권자들은 TV토론의 내용이나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TV토론에서 만큼은 네거티브가 별 효과가 없다.

오히려 상대후보 지지층만 더 결집시켜 주고,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만 드러내는 역효과만 낼 뿐이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대선에서 이정희 통진당 후보였다. 설령, 토론과정에서 결정적인 상대의 흠이나 약점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시간과 형식의 제약으로 그것을 제대로 밝혀낼 수 없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유권자들은 주관적, 감정적인 태도에서 객관적, 이성적인 태도로 바뀐다. 특정 후보에 대한 골수 지지자가 아닌 유권자들은 최종 투표하기까지 점점 냉정하게 판단하려 한다. 그때에 맞춰 TV토론도 시작된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감정적, 자극적 논쟁이나 상대에 대한 비난보다는 후보자들이 공약과 정책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설명하고 드러내주기를 기대한다. 그렇다고 메마르고, 날카롭고, 냉정한 느낌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으로서 품격과 감성은 물론 인간적 약점까지도 솔직하게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한 시민이 19대 대선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토론의 정석, 너그러움과 솔직함

대선후보자들의 TV토론 후의 평가와 지지율 변화가 이를 증명해 준다. 이번에서도 보듯 아직 우리나라 토론문화, 특히 선거토론은 그 수준이 멀었다. 스탠딩토론, 집중토론, 자유토론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했지만 여전히 네거티브에 매달리고, 질문과 대답이 어긋나고, 자기말만 반복하면서 상대방의 얘기는 무시하는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너그러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토론이 상대를 면전에서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눈과 귀, 마음을 닫아버리고, 오로지 전투에 나서는 듯한 긴장된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런 후보자에게 다른 후보자의 말이 들릴 리 없다. 다른 후보자의 공약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나올 수 없다.

이번 TV토론에서는 누가 그랬는지 누구보다 당사자들이 먼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보고 “어린 아이들 같다”고 한 그 후보 역시 거칠고, 막무가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자신의 공약 소개로 그런 분위기를 바꾸고, 같은 정책과 관련한 상대 공약 중에서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칭찬할 것은 기꺼이 칭찬한 후보에 지지를 보낸 것이다.

부동층도 이미 알고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누가 당선이 유력하고, 누가 떨어질지. 그래서‘밴드왜건’(승자에 편승하는 투표) 현상도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지지율이 낮은,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후보자는 호소한다. “나를 찍으면 내가 대통령이 된다”고. 물론 현실성이 거의 없는 거짓말에 가깝다는 것을 유권자들이 모를 리 없다. .

그보다는 솔직한 고백이 때론 TV토론에서 힘을 발한다. 불가능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철학과 신념을 진솔하게 밝히면서 한 표를 호소하는 것. 패자에 대한 동정인‘언더독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다. 낙선자에 대한 지지가 결코‘사표(死票)’가 아닌 미래를 위한 또 다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를 찍든 한 표는 동등하다는 투표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마지막 TV토론과 반응이 그것을 보여주었다.

30%나 되는 유권자들이 판단 능력이 없어 지지후보를 아직 결정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밴드왜건이나 언더독에 쉽사리 빠지지도 않는다. TV토론에서 말만 잘한다고 넘어갈 사람들도 아니다. 선거 때마다 똥개 부르듯, 이쪽저쪽에서 오라고 손짓하는 부동층. 착각하지 마라. 그들은 냉정하다. 그리고 따뜻하다.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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