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대선 전야에 한국 보수의 앞날을 걱정한다.” 이 칼럼의 주제다. 처음에 솔직히 털어놓을 게 있다. 이 주제가 궁여지책이란 점이다. 마감일 때문이다. 마감일이 다른 날이었다면 얼마든지 다른 주제로 칼럼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오피니언타임스’이 지정한 마감일은 대선 전날인 8일이다. 칼럼은 대선일 오전 온라인에 뜬다. 그리고 한나절 뒤면 결과가 나온다.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에 따라 앞당겨 치러지는 대선일에, 선거와 상관없는 독창적 칼럼을 써낼 재주는 나한테 없다. 해서 궁여지책으로 짜낸 게 앞서 말한 보수에 대한 걱정이다.

2일 열린 19대 대선후보 TV토론회에 참석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왼쪽)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포커스뉴스

필자는 진보를 자처한다. 그렇다면 진보가 보수를 걱정하는 것(그 역도 성립한다)은 쓸 데 없는 짓인가? 그렇지 않다. 만약 그렇다고 말한다면 진영논리에 갇힌 모습이다. 사회는, 그리고 역사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진보와 보수 두 가치가 조화를 이룸으로써다. 이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둘은 함께 가야 한다. 이영희 교수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

그 점에서 지난달 말 이해찬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집권하면 극우 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크게 잘못된 발언이었다. 국정농단 사태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였다지만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보수는 그렇게 사갈시할 대상이 아니라 꼭 필요한 존재다. 궤멸시키고 청산해야 할 것은 극우·수구적 사고와 정책이지 보수가 아니다.

이해가 되는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랜 세월 이 나라에는 정당을 포함해 보수다운 보수가 희소했다. 그 틈새를 파고든 극우가 버젓이 보수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해왔다. 남북분단이란 특수상황이 그런 여건을 제공했다. 그러다 보니 그가 머릿속에선 이런 ‘가짜 보수’를 생각하며 말이 헷갈렸을 수도 있다.

나는 이번 대선에서도 보수 진영에서 이와 비슷한 헷갈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내가 보수의 적자”라며 ‘보수 지지층’에게 지지를 호소해왔다. 성적표야 곧 나오겠지만, 보수표가 누구에게 얼마나 갈지는 또 하나의 중요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두 후보 간 차별성은 분명하다. 선거벽보도 홍 후보는 ‘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이란 구호를 내세웠다. 선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을 의식해 ‘문 후보 당선은 친북정권’이란 색깔론을 주요 전략으로 삼아왔다. 그런 만큼 보수 가치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이 안 보인다. 반면 유 후보는 ‘보수의 새희망 유승민’이 구호다. 그는 “낡고 부패한 보수는 소멸한다. 깨끗하고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를 만들겠다”면서 이번 대선이 왜 치러지게 됐는지를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개혁보수의 철학을 아는 정치인 같다.

정책 차이도 많다. 홍 후보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에 반대하지만 유 후보는 찬성이다. 독일식 비례대표제에도 홍 후보는 반대, 유 후보는 찬성이다. 김영란법 완화에 대해 홍 후보는 찬성, 유 후보는 반대다. 양심적 병역거부·대체복무제에 대해 홍 후보는 반대, 유 후보는 찬성이다.

자칭 보수 정치인들 가운데 누가 진짜 보수일까. ©픽사베이

나는 홍 후보가 대선에서 부각되는 것이 여러가지로 해괴한 현상이라고 본다. 그가 부상한다는 건 극언하자면 ‘촛불혁명’의 성과를 무로 돌리는 것일 수 있다. 결정적 이유로 치졸한 언론관을 들겠다. 그는 최근 “문재인 측과 해양수산부가 협력해서 대선에 맞춰서 세월호를 인양했다는 SBS 보도가 나왔는데, SBS에 겁을 줬는지 잘못된 뉴스라고 발표했다”며 “내가 집권하면 SBS 8시뉴스 싹 없애겠다”고 말했다. 종편에 대해선 “야당과 싸워 종편 만들어줬는데 내 욕이나 한다”며 “집권하면 종편 두 개는 없애버리겠다”고 했다.

이런 행태는 대선 후보 자격은 말할 것도 없고 좀 더 기본적인 자질을 의심케 했다. 첫째 그는 이성적 사유가 가능한가, 둘째 민주국가 시민의 소양이 있는가, 셋째 그는 진짜 보수주의자인가다. 모두 부정적이다.

다시 보수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걸핏하면 종북 좌빨 몰이가 일상화한 세태지만, 오늘 한국사회가 헬조선이 된 건 종북세력의 준동 탓일까? 그게 아니라 제대로 된 보수정당·세력의 부재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보수주의자라며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보다 ‘빨갱이’ ‘종북 좌파’로 모는데 익숙한 사람들 말이다. 이런 보수가 판치는 것이 작금 보수의 위기를 초래했다.

정치인들 가운데 수많은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있다. 그러나 누가 참 보수고 가짜 보수인지 가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우리에겐 예리한 감식안이 필요하다. [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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