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3~4년 전 TV 코미디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우리 언니, 지금 가실께요”라는 말이 한동안 화제였다. 그 코너에서 스타의 전속 스태프들이 외치던 “우리 언니 지금 가실께요”는 연예인병에 걸려 과한 대접에 익숙해진 진상 스타를 풍자하는 상징어였다. 코미디 속 ‘웃기는 유행어’ 정도로 여겼던 말투들은 이즈음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통용되고 있다.

2013년 9월1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뿜엔터테인먼트 자막. 코너 속 유행어인 ‘~하고 가실게요’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공식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개그콘서트 방송 캡처

얼마 전 극장에서 영화가 끊기고 관객들이 항의하자 관계자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상영을 도와드릴께요”였다. 영화가 빨리 상영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하는 상황에 ‘도와드린다’는 용어가 등장하자, 관객석에서 “우~”하는 야유성 외침이 터져 나왔다. TV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선 한 무리의 출연자들이 움직일 때면 “이동하실께요”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특히 식당 커피숍에서 종업원들이 친절한 표정으로 건네는 “계산 도와드릴께요”라는 말은 듣는 이를 헷갈리게 만든다. 음식 음료 값을 지불하는 상황에서 계산을 도와준다니, 그 말만 들으면 비용 일부를 부담해주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처럼 편치 않은 언어 표현은 서비스업소를 이용할 때면 수시로 접하게 된다. 고객을 왕처럼 모시겠다는 서비스 정신에 따라, 고객을 배려하고 예우하는 차원에서 쓰는 존칭과 높임말이 오히려 어색하고 부적절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상한 존칭으로 상대를 예우한다고 여기는 것도 문제이고 듣기도 거북살스럽다.

미장원, 병원서 접하는 “앉으실께요”, ’’머리 감으실께요”라는 말은 들을 때마다 편치 않다. 그저 “앉으세요”, “머리 감겨드릴께요”라고 하면 충분할텐데, 굳이 “~ㄹ께요”라는 어미가 더해지고 존칭, 주어와 목적어가 뒤엉켜 정작 앉거나 머리를 감는 사람이 누군지 헷갈리게 된다.

“누우시겠습니다”라는 표현도 그렇다. “눕혀드리겠습니다”가 아니라 “누우시겠습니다”라고 하면 도대체 누가 눕는 건지 애매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상황을 파악해 자신이 눕거나 상대가 눕기를 기다려야할 것 같다.

지난해 7월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한글이 걸어온 길’ 상설전시가 열리고 있다. ©포커스뉴스

친구는 20대 딸과 옷가게에 갔다가 50대 상점 주인이 딸에게 ‘언니’라고 부르기에 “우리 애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여요?”라고 말하며 웃었단다. 그러자 상점 주인이 “아가씨라고 부르면 기분나빠할까봐 더 대접하는 의미로 언니라고 부른다”고 답하는 걸 보고 일상의 호칭을 새삼 생각해보게 됐다고 했다. 국문학과 교수인 그 친구는 “아가씨 아주머니가 존중하는 의미의, 좋은 우리말인데 왜 상대를 낮춰 부르는 호칭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며 어색한 일상의 호칭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색한 존칭 이상 못지않게 거슬리는 말투로 그 친구는 ‘같아요’라는 표현을 지적했다. “기분이 어떠세요?”라는 물음에 “좋아요”라고 하면 될 것을 “좋은 것 같아요”라며, 겸손한 표현삼아 “같아요”를 덧붙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같아요’라며 말꼬리를 흘리는 표현은 겸손하기보다 뭔가 책임지기 싫어 내빼는 말투같다는 의견을 냈다.

‘즐거운 쇼핑 되세요’라는 유통업체의 간판 글이며, 여행객을 환송하는 ‘즐거운 여행되세요’같은 표현은 어느새 일상용어가 돼버렸다. 마치 “Have a good time”같은 영어식 표현 같다. ‘(우리 매장에서) 즐겁게 쇼핑하세요’, ‘즐겁게 여행하세요’”라는 의미인데 굳이 장보는 사람에게 ‘즐거운 쇼핑’ 되고, 여행자에게 ‘즐거운 여행’ 되라니….

편치 않은 말투와 관련해 대학생 여조카가 한마디 거들었다. 요즘 군대에서 존대의 의미를 강화한 명령어로 “~하도록 합니다”라고 말한다는데, 남학생들이 영 어색해한다는 이야기였다.

한동안 건강 검진이라든지 대형 병원 이용 때면 “옷을 갈아입으시겠습니다” 식의 고객 접대용 말투가 영 이상했다. 그러나 이즈음 전보다 듣기가 한결 수월해진 걸 보면 병원 차원에서 고객 대상의 언어교육이 강화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서비스업체들이 직원의 언어교육에 좀 더 유의해 자연스럽고 적절한 우리말이 널리 뿌리내리기 바라는 마음이다.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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