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예외 없는 법 적용, 견제와 균형으로 자정 기능 유지

취임 전 후보 시절부터 트럼프의 행보는 믿음을 주지 못했었다. 잦은 막말과 인종 차별, 여성 비하 및 미국과 오랜 적대 관계였던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 등으로 절반이 넘는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때부터 불안했었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는 이미 검증된 것으로 평가받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반발과 새 정치에 대한 기대 때문으로 풀이됐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 제임스 코미 연방정보국(FBI) 국장을 해임했다. 1주일 뒤인 16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접촉에 대해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 2월13일 사임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대한 FBI의 수사 중단을 코미 전 국장에게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직을 계속 맡아야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만 4달이 채 못된 시점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9일 제임스 코미 FBI 국장(오른쪽)을 해임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게티/포커스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승리를 거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던 민주당 지지자들은 진작부터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을 들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장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미 FBI 국장의 해임과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에 대한 FBI의 수사 중단 요구는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탄핵 요구 목소리를 확대시켰다. 문제는 민주당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공화당 내에서조차 탄핵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탄핵 주장은 일반 유권자들이나 의원들 사이에서 터져나오고 있을 뿐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집권 여당인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지난해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 간 유착 내지 내통 의혹에 대해 “완전하고도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사실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탄핵에 대한 신중한 입장은 민주당 지도부 역시 마찬가지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미 하원 원내대표는 “진실을 밝혀낼 조사가 먼저이며 탄핵은 진실이 드러난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뚜렷한 증거가 없는 한 확실치 못한 소문 등을 근거로 탄핵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을 임기 중 탄핵으로 내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50년 가까운 미 정치사에서 탄핵 움직임은 단 3번 있었을 뿐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이 확실시되던 리처드 닉슨이 자신 사퇴한 것을 제외하면 1868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과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모두 하원에서는 탄핵안이 통과됐지만 상원에서 거부돼 실제 탄핵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었다. 탄핵된 미 대통령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 탄핵 절차가 시작된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 역시 확실치 않다. 트럼프는 헌법 조문 해석을 통해서나 정치적 수단을 통해 탈출구를 찾을 가능성이 크다 할 수 있다.

©픽사베이

이런 상황에서 미 법무부는 17일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을 트럼프 선거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의 진실 여부를 조사할 특별검사로 임명했다. 뮬러의 특검 임명은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모두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뮬러 특검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재임 시이던 2001년 9·11 테러 공격 발생 직전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이던 2013년까지 무려 12년 간 FBI 국장으로 재임하면서 미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특검으로 임명되자 트럼프의 정치적 위험이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뮬러를 특검으로 임명한 로드 로젠스타인은 “미국민들이 결과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뮬러의 임명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 미국인들에 대한 감시를 강행하려는 부시 대통령의 방침에 반발해 FBI 국장직을 내걸고 이를 막아냈던 뮬러에 대한 미국민들의 신뢰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미 CNN 방송은 뮬러의 특검 임명에 대해 “미국은 결국 정의를 찾아낼 것이다. 잘못이 저질러졌든 아니든 우리는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사법 시스템에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받고 있는 뮬러가 트럼프 선거캠프의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지금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코미 전 FBI 국장이 작성했다는 트럼프 대통령 측과의 대화 내용을 담은 메모로 여겨진다. 뮬러 특검이 메모 내용이 사실이라고 판단하면 트럼프는 사법 활동을 방해했다는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워터게이트급 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와의 내통을 사실로 판단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분명한 점은 대다수의 미국민들이 뮬러의 결론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 세력이나 비난 세력 모두 뮬러의 판단을 거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을 지켜봤던 우리로서는 이처럼 전국가적으로 신뢰와 존경을 받는 특검을 배출할 수 있는 미국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이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미국에선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또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조차 ‘법에 따른 통치’ 앞에서 예외일 수 없으며 이를 통해 잘못을 바로잡는 자정 기능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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