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4기의 사드발사대 관련 보고누락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의 대응 자세를 보면서 상식의 문제를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사드배치가 안보적으로, 외교적으로 얼마나 중차대한 문제인가를 생각한다면, 국방장관이나 안보실장이 대통령에게 고의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고하지 않았다 해서 감추어 질 성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보고 즉시 들통이 날 일인데 국방장관이나 안보실장이 어떻게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행여 새 대통령을 우습게 알고 보고를 안 한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통령 측의 공직관이 상식이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국방부 사람들의 실수라고 보는 것이 상식에 맞는다고 하겠습니다. 4기의 발사대에 관한 내용은 원래 작성된 보고서에 들어 있다가 지난 달 25~26일 국정기획자문회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보고에서 빠진 채 보고됐습니다.

그것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이냐, 실무자의 자의적 판단이냐가 이 문제의 핵심인데 청와대는 지난 5일 이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위승호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무리 비공개가 미군과의 합의 사항이라고 해도 대통령 보고에까지 비공개로 한 것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복안도 없는 비공개는 아니었을 겁니다. 위 실장이 추가 구두보고를 지시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위 실장도, 청와대 발표에도 이 부분을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국방부는 외부 누출 위험이 있는 문서형태보다는 구두보고가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이미 언론에서 보도된 사실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 개괄보고가 필요치 않는 전략적 심층적 보고대상으로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사태에 ‘대노’한 것은 이 사태의 또 다른 핵심입니다. 매사가 그렇듯 감정을 앞세우면 일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한민구 국방장관과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기 전에 그들을 불러 답변을 듣는 것이 상식에 맞았을 겁니다.

새 정부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업무처리 태도 또한 상식으로 이해가 안 갑니다. 그는 고자질하듯 한민구 장관에게 4기 반입 사실을 물었더니 “그런 일이 있었냐”고 모르는 듯이 대답하더라고 했습니다. 실무 장관이 모를 리가 없는 사안에 대해 그런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면 좀 더 진의를 확인한 뒤 대통령에게 한 장관의 말을 전하는 것이 상식에 맞는다고 봅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방부는 정부 부처 가운데 기밀이 가장 많은 부처입니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 국방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국방부는 ‘기자실 공보관실 화장실 출입 밖에 허용되지 않았던 출입처’였습니다. 그런 체질을 가진 국방부가 첨예한 외교문제가 되어버린 사드와 관련, 미배치 4기에 관한 내용을 기밀로 다루려고 한 것이 상식에 반한다고 할 것까진 없습니다. 그런 국방부의 과잉기밀 현상이 이 사태를 부른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두 사람이 대통령을 능멸했다며 즉각 파면하고 구속하라고 주장합니다. 일부 세력들은 이들에 대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주장은 대통령을 망치는 아첨으로 치부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이 사태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들려오는 말들에선 한국이 외교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달 31일 청와대를 방문한 더빈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를 면담한 자리에서 “사드와 관련한 나의 지시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이며, 기존의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구구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더빈 의원은 한국이 사드를 원하지 않으면 사드 예산을 쓸 곳이 미국에도 많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드 배치에 미국 의회가 제동을 걸지도 모르는 미묘한 상황입니다. 이달 말 미국을 방문 할 문 대통령에게 큰 짐이 될 게 분명합니다.

반면 중국정부는 국내문제인 보고누락 사태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하는 내정간섭적인 성명을 내놓으면서 한국 내 사드 배치를 거듭 반대했습니다. 미국과 중국 양 쪽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형국입니다.

이번 사태는 정권교체기에 신·구정권 간의 소통부재로 인한 해프닝일 수도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조용히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를 국제문제로 만들어 외교적 곤경을 자초한 것은 유감이나 이번 사태를 통해 새 정부의 외교에 대한 시각이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지면 다행이겠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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