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젊은 세대들 사이에 유행하는 ‘탕진잼’이란 신조어가 생소하고도 흥미롭다. 탕진잼은 다 써서 없앤다는 뜻의 ‘탕진’과 재미의 줄임말인 ’잼’의 합성어. ‘천원 샵’같은 저가의 생활용품점이나 문구점, 인형뽑기방에서 수중의 돈을 과감히 아낌없이 지출해 소품을 사들이며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SNS에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진 글이 떠돌아다닌다.

1인 가족, 싱글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혼술’, ‘혼밥’과 더불어 탕진잼도 신세대의 일상을 반영한다. 탕진잼은 나 자신을 위해, 스스로 의미있게 생각하는 대상에 투자하는 ‘소박한 사치’ 혹은 ‘작은 사치’의 한 흐름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탕진잼의 정의와 이를 표현한 이미지. 

탕진하듯 돈을 쓴다고 해서, 흥청망청 명품 쇼핑과 쇼핑 중독을 떠올리며 염려할 단계는 아닌 듯 싶다. 탕진이라는 용어는 부정적 느낌이지만 신조어의 주체는 값비싼 물품을 마구 사들이는 과소비파는 아니다. 별스러울 것 없는 일상소품을 사모으고 쓰면서 고달픈 사회생활이며 취업 스트레스를 푸는 수준이다.

쇼핑 품목도 고가의 명품 가방, 옷, 신발과 거리가 멀다. 탕진잼의 대표적인 품목이 저가샵의 1000~2000원대 물품부터 휴대폰 액세서리, 핸드로션, 텀블러 등 대부분 1만원대 안팎의 생활용품 수준이다. 인형뽑기라든지 캐릭터, 피규어 등 개인 취향의 수집용품도 포함돼 있다. 약간의 용돈으로 문방구를 드나들며 샤프펜, 필통 등을 수집하던 학창 시절의 돈 씀씀이와도 이어진다.

이 같은 신조어에는 시대와 더불어 변하며 큰 흐름을 이루는 세태가 적나라하게 반영돼 있다. 탕진잼의 경우 ‘티끌 모아 태산’이라며 ‘마이 홈’, ‘안정된 미래’를 위한 근검절약이 일상의 모토였던 이전과 확연히 다른 신세대의 소비 행태를 드러낸다.

‘안 쓰고 안 먹는 긴축 더 긴축’의 소비생활은 ‘이제 그만’. 오히려 자신의 취향과 기준에 따라 조금씩 쓰는 가운데 재미와 위안을 얻고 삶의 활기를 되찾는다니, 역설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녹록치 않은 현실을 견뎌내는 씁쓸한 자구책으로도 읽힌다.

탕진잼에는 충동 구매, 쇼핑 중독 같은 부정적인 소비에 대해 자책하기보다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을 누리고 자족하는 삶의 태도와 의지가 담겨 있다. 일과를 끝낸 귀가길이나 주말에 잡화점에 들려 쓸모있는 소품을 자신의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나름의 취향을 발휘해 소비를 취미나 오락처럼 즐긴다니 말이다.

한편으로 이전 세대와 달리 ‘티끌을 아무리 모아도 몫돈을 만들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이 투영된, 서글픈 일상이기도 하다.

탕진잼과 같은 일상의 작은 사치는 ‘욜로’(You Only Live Once)의 한 흐름이다. ©픽사베이

빠듯한 지갑을 열며 소품이지만 최고급을 이용하며 ‘작은 사치’를 누리는 ‘스몰 럭셔리’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불경기 때 대부분의 소비가 감소해도 소품인 립스틱의 매출은 증가하는 ‘립스틱 효과’가 그렇듯, 소비자들이 적은 비용의 최고급 소품과 더불어 자신을 차별화하고 기분 전환을 꾀한다는 의미.

‘스몰 럭셔리’도 탕진잼처럼 자동차, 옷, 핸드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비싼 식품, 화장품 등이 그 대상이다. 덩지 큰 고가품은 아니지만 수시로 사용하는 생활용품 하나라도 고르고 골라 즐기는 신세대의 성향과 맞물려 ‘스몰 럭셔리’가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다. 이즈음 빙수, 케익 같은 디저트 및 커피, 차 같은 기호식품으로 시판중인 프리미엄상품의 생산 유통업체들이 ‘스몰 럭셔리’ 마케팅을 펴고 있다.

젊은 해외여행자들사이에 이탈리아제 M치약이 이탈리아 여행의 주요 쇼핑 목록으로 손꼽힌다기에 “해외서 치약 쇼핑까지?”라고 놀란 적이 있다. ‘치약계의 샤넬’로 불리는 M치약은 현지서 냉장고용 자석보다 저렴하면서 고급스런 디자인으로 인기 높은 기념품이자 선물용품이라고 했다.

치약이라면 평소 대형마트서 장을 보며 그때그때 특가 판매하는 상품을 구입하는 평범한 소비자로선 명품 치약이라는 용어부터 낯설었다. 그러나 이즈음 국내서도 특수 성분을 내세운 1만~2만원대 프리미엄치약들이 선보인다니, 생필품으로 명품치약이 대중화하고 있는 이즈음의 소비 트렌드를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일상 생필품에 자신의 취향을 투영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신세대의 ‘탕진잼’이나 ‘스몰 럭셔리’는 일상속 유희와 행복을 스스로에게 일깨운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여겨진다.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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